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에 한걸음 다가섰다. 열흘간의 미국 출장길에서 “‘초격차’를 넘어 ‘남들이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하며 ‘뉴삼성 선언’의 밑그림을 제시하면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보라”던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광폭 경영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23일(현지시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부지를 텍사스주 테일러시로 확정했다. 지난 5월 170억 달러 규모의 신규 공장 투자계획을 발표한 지 6개월 만이다.

회사 측은 총수의 부재 속에 부지 최종 선정을 망설여 왔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 복귀 3개월 만에 고민을 해결했다. 시스템반도체 1등을 향한 큰 발걸음은 수성보다는 ‘도전’에 방점이 찍힌 ‘뉴삼성’ 비전 그대로다.

테일러시에 세워지는 신규 라인은 2022년 상반기에 착공해 2024년 하반기를 목표로 가동될 예정이다. 건설·설비 등 예상 투자 규모는 17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다. 미증유(未曾有) 도전의 시간이 시작된 셈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글로벌 1위를 향한 도전은 2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지난 2019년 이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다.

그는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면서 “굳은 의지와 열정, 끈기를 갖고 도전해 꼭 해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 부회장의 올해 첫 행보도 시스템반도체 상황을 점검하며 시작됐다. 1월4일 삼성전자 평택 2공장의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해 반도체부문 사장단과 중장기 전략을 살폈다. 시스템반도체에 필수적인 반도체 설비 확보에 직접 나선 것이다.

당시 그는 “새로운 삼성으로 도약하자. 함께 하면 미래를 활짝 열 수 있다”면서 “삼성전자와 협력회사, 학계, 연구기관이 협력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신화를 만들자”고 독려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차세대 반도체의 핵심 설비인 EUV(Extreme Ultra Violet) 장비 생산업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CTO 등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양측은 △7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장비 공급계획 및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 △AI 등 미래 반도체 위한 차세대 제조기술 개발협력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시장 전망 및 포스트 코로나19 대응 위한 미래 반도체 기술 전략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재확산과 글로벌 무역환경 급변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할 방침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선 안 된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와 결단에 따른 행보다. 이 부회장은 2020년 5월 ‘평택 EUV 파운드리 라인’ 구축 결정 당시 DS부문 경영진들에게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지난 8월에는 ‘240조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메모리 절대우위 유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도약 기반 마련’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투자액을 기존 133조원에서 171조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의 직·간접 일자리를 포함한 고용 창출 효과가 1만여명으로 추산되면서 ‘4만명 고용’ 약속도 탄력을 받은 상태다.

이 부회장은 이번 대규모 투자를 계기로 초대형 인수합병(M&A)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파운드리와 융복합이 가능한 기술을 가진 회사를 타깃으로 삼아 초격차 경쟁력 확보에 나설 것이란 얘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온다.

이번 출장길에서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을 만나 이동통신·가상현실·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같은 미래 성장 사업을 논의한 것이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재계 관계자는 25일 “이건희 회장 1주기(10월25일)를 넘어서면서 이 부회장이 ‘신경영’을 넘어설 ‘뉴삼성’ 기치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이라며 “다만 사법리스크가 발목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 부회장은 삼성합병 의혹 재판에 거의 매주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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