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16일 소떼 방북 당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현대그룹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1998년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001마리 소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일은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불린다. 당시 전 세계에 생중계된 소떼 방북을 보고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은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에 필적할 만한 현대의 대북사업은 다시 이뤄질 수 있을까.

금강산 관광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대북사업은 정 명예회장의 가장 큰 유지다. 대북사업은 정 명예회장이 별세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하면 떠오르는 정통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가 남북경제협력 분위기 조성에 들어가면서 현대의 대북사업 의지는 다시 꿈틀대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일 금강산 관광 사업자인 현대의 현정은 회장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일정이 끝난 지 열흘만이다. 이를 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한국의 대북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자, 이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부가 남북협력 및 대북사업 재개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장관이 현 회장을 발 빠르게 만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정부로선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 전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만들 시기가 지금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매번 대선 국면에서의 남북 대화는 북풍(北風) 의심을 받아왔다.

두 사람의 대화는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 재개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장관은 “금강산이 열리면 이산가족 면회소 등 관련 시설들의 개보수 작업도 추진할 용의가 있다”면서 “인도적 측면에서 이산가족, 실향민 방문부터 시작해 향후 원산, 마식령 등 협력 공간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에 현 회장은 “금강산 문제를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풀어가기 위해 '남북 공동개발 구상'을 마련해 북측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정부도 신변안전, 기반시설 등 공공 인프라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건의했다.

평화의 상징이었던 금강산 관광은 한때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지만, 13년째 중단된 상태다. 지난 2008년 7월 북한군에 의한 고(故)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계기다.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운영도 지난 2016년 2월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황이다. 한때 입주기업 생산액 10억 달러를 돌파했던 개성공단은 북한 무력 도발로 인해 입주기업들이 모두 철수한 이후 황폐화됐다.

정부는 인도주의 문제와 관련된 금강산 관광 재개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개성공단 운영 재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대북제재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보리는 북한과의 모든 합작 사업을 금지하는 내용을 결의한 상태다. 이를 완화하거나 해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의가 채택돼야 한다. 하지만 5개 상임이사국 중 한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불가능하다.

금강산 관광은 매출 3조 원대의 중견그룹으로 내려앉은 현대가 재도약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 명예회장이 1989년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사업에 합의한 것도, 대북사업이 현대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연구소장은 “북한 관련 사업 독점권을 갖고 있는 현대가 1조50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자금을 대북사업에 투자했지만 회수는커녕 직접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며 금강산 관광 재개가 그룹 경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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