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 합동인사회에서 구광모(왼쪽)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한 해동안 최소 4차례 만남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배터리 업계에서는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양사에 ‘배터리 소송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영업비밀 침해 관련 양보 없는 소송을 여전히 2년 가까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이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4개월 뒤인 지난 11일 갑작스레 SK와 LG 배터리 전쟁의 막이 내렸다. 지난달 31일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의 비공개 회동으로부터 불과 열흘 뒤였다. SK와 LG가 배터리 소송에서 극적으로 합의한 배경에 한미 정부의 중재 외에 최 회장과 구 회장의 비공개 회동 당시 논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중식당에서 이뤄진 당시 회동은 최 회장과 구 회장뿐만 아니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부터 8년 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은 박용만 회장에게 그룹 총수들이 감사를 전한 자리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과 구 회장 사이에 배터리 분쟁 합의에 대한 상당한 교감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그간 정부 중재로 양측 전문경영인이 만난 자리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총수 간 담판으로 극적인 반전 속에 전격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물론 최 회장과 구 회장이 이날 한 번의 만남으로 해법을 도출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 회장과 구 회장은 그간 다양한 공식·비공식 채널로 재계 행사에 함께 참여하며 꾸준히 친분을 쌓아왔다. 지난해 이들의 만남이 포착된 것만 하더라도 1월, 9월, 10월, 11월, 12월 등 5차례다. 특히 올해 2월, 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을 5개월 앞두고 한 달에 한 번씩 집중적으로 만난 것이다.

결국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ITC 판결 거부권 시한(11일·미국시간)까지 다가오면서 분쟁 해결을 위한 정무적 접촉을 늘려온 양사의 총수들은 직접 나서 담판을 지었다.

지난해 ‘맏형’ 최 회장의 주도로 진행된 4대그룹 총수 회동에서도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은 테이블 석상에 주요 화두로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총수들이 협력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대그룹 총수의 회동을 기점으로 업계에 등장했던 ‘K-배터리 동맹’ 기대 심리가 한층 구체화될지 주목된다. SK와 LG가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모든 쟁송을 종료하고 앞으로 10년 동안 추가적인 쟁송도 하지 않기로 하면서, 한국산 배터리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배터리 분쟁 종식 합의문을 통해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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