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접고 또 접는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지시했다. 그룹 경영이 만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접은 사업만 이번이 9번째다.

구 회장은 2018년 6월 취임과 동시에 선택과 집중을 역설해 왔다. 창립 70주년을 넘긴 LG에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경영 전략이었다.

결국 회장직에 오른지 3개월 만인 9월 서브원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부문을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너티에 매각하며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이른바 ‘돈 안 되는 사업’ 정리를 본격화한 시점은 2019년이다. 구 회장은 2월 연료전지 자회사 LG퓨얼세리스템즈 청산을 시작으로 4월 LG디스플레이 조명용 올레드 사업 철수, 7월 수처리 관리회사 하이엔텍과 환경 설계·시공 회사 LG히타치워터솔루션 매각, 9월 LG이노텍 스마트폰용 메인기판(HDI) 사업 정리, 12월 LG유플러스 전자결제사업 매각으로 줄줄이 정리했다.

이어 지난해 2월에는 LG전자·LG화학·LG상사 등이 중국 베이징 트윈타워의 지분을 매각했고, 이번 스마트폰 사업 철수로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국내 대표 가전업체인 LG가 26년간 이어온 휴대폰 사업을 완전 철수키로 한 데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적자 경영 영향이 큰 탓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최근 6년간 사업본부장을 4번 교체하는 등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강 구도를 깨기 위해 스마트폰 사업에 주력했으나,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하며 중화권 업체들과의 경쟁도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LG전자는 2015년 2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기록적인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로 누적 손실 규모만 5조원 이상을 남기는 실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6일 “적자 사업에 발이 묶인 상태에서는 미래사업의 경쟁력을 장담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물론 LG가 사업 정리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성장 동력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수전도 치열하게 벌여왔다. LG전자는 2018년 7~8월 산업용 로봇 전문기업 경영권과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회사 ZKW를 잇따라 인수했다. 또 LG화학이 같은 해 8월 미국 자동차 접착제 전문회사 유니실을 인수했고, 9월에는 LG생활건강이 일본 에바메루를 인수했다.

2019년 2월에 들어서는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했고, 같은 해 4월에는 LG화학이 미국 듀폰 솔루블OLED 기술을, LG생활건강이 미국 뉴에이본을 각각 인수했다. 지난해 2월에는 LG생활건강이 피지오겔 지역 사업권을, 올 1월에는 LG전자가 미국 데이터 분석 기업 알폰소를 각각 인수했다.

이에 따라 구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은 향후에도 LG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삼고 있는 인공지능(AI)·로봇 분야 등의 추가 인수합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전자만 하더라도 최근 3년새 마그나·룩소프트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주력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출범시켰다.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해온 MC사업본부 직원 3400여명의 고용 유지를 일찌감치 명확하게 밝힌 이유도 프라다폰 등 글로벌 히트작 제작 경험의 검증된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신성장 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LG 관계자는 “그동안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계열사별 사업역량 다지기에 집중해 왔다면, 전장 합작법인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 설립, 그룹차원의 AI 연구원 설립 및 핵심 연구인력 100명 육성 등 투자 확대와 M&A를 적극 추진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개 석상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구 회장이 최근 가장 자주 찾는 곳은 서울 마곡 LG 사이언스파크로 알려져 있다. 신기술 개발 현황 체크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구사업을 접고 신사업을 위해 기술 개발을 멈추지 않는 구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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