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해결책은 상장...경영권 지키며 IPO 위해 타이밍 늦추기 안간힘

(왼쪽부터)교보생명 본사, 신창재 회장/제공=교보생명
[데일리한국 박재찬 기자]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송전으로 번지면서 신창재 회장과 교보생명의 재무적투자자(FI)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교보생명 풋옵션의 본질은 단순하다. 신 회장이 2012년 약속한 IPO를 이행하거나, FI와 적정한 가격을 합의해 풋옵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2012년 총 1조2054억원에 FI가 인수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신 회장 개인이 다시 회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교보생명이 나서서 2대 주주인 FI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도 곤란한 상황이다.

결국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의 가장 유력한 탈출구는 IPO다. 신 회장과 FI는 IPO의 시기와 방법을 두고 치열한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의 FI들로 구성된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신창재 회장을 대상으로 계약이행 가처분을 지난 6일 신청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판정 이후 한 달 만이다.

어피너티는 ICC 중재 판정에서 주주간 계약상 의무 위반이 확인된 부분의 이행을 요청했으나 신 회장 측이 이를 거부해 국민연금 등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 불가피하게 가처분 신청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은 “ICC 중재 판정을 왜곡하는 무모한 법률 소송에 불과하다”며 선을 그었다.

◇ 신 회장-FI 풋옵션 분쟁의 서막

신 회장과 FI와의 악연은 지난 2012년 시작됐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PE,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된 FI는 대우인터내셔널이 내놓은 교보생명 지분 24.01%를 주당 24만5000원, 총 1조2054억원에 인수하며 신 회장의 ‘백기사’로 등장했다.

당시 신 회장과 FI는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상장(IPO)하지 못할 경우 신 회장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조건으로 주주 간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교보생명이 시장 악화 등의 이유로 약속한 IPO를 하지 못했고, 이를 3년을 지켜본 FI는 결국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그리고 풋옵션 가격 평가기관으로 참여한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를 주당 41만원으로 평가했지만, 신 회장은 주당 20만원에도 못미친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총 매매가 격차는 무려 1조원 수준이다. 신 회장과 FI는 2019년 3월 ICC 중재를 신청했다.

◇ ICC 중재 ‘완전한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지난달 7일 ICC 중재판정부는 ‘FI측이 요구한 40만9000원이라는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면서도 ‘풋옵션 계약 자체는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ICC 중재판정이 풋옵션의 가격을 정하는 자리가 아닌 점을 고려하면, FI의 풋옵션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또 ICC 중재와 별개로 교보생명은 어피너티와 안진회계법인을 검찰에 고소했다. 현재 교보생명의 기업가치 평가 조작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인원은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3명, FI 관계자 2명, 삼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1명과 소재 불분명에 따라 기소 중지된 베어링 PE 관계자 1명까지 합쳐 총 7명이다.

이번 공판의 핵심은 어피니티와 안진회계법인 사이의 부적절한 공모와 부정한 청탁, 공정가치 허위보고 여부 등이고, 오는 29일 5차 공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 신 회장은 FI와 약속을 어떻게 지킬까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의 본질은 ‘신 회장이 FI와의 약속을 어떻게 이행하느냐’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신 회장이 어떻게 FI 지분을 확보해 교보생명 경영권을 유지하느냐’다. 교보생명의 주주현황을 보면 신 회장 일가가 36%로 가장 많고 FI는 어피니티 9.05%, IMM 5.23%, 베어링 5.23%, 싱가포르투자청 4.50%를 보유해 총 24%로 2대 주주다.

교보생면 주주현황/제공=교보생명
쉽게 생각하면 신 회장이 FI의 요구대로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지만, 양측의 가격 차이가 1조원 정도 나고, FI가 2대주주인 만큼 교보생명이 나서서 지분을 매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신 회장 개인이 직접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을 유지해야 하지만 2012년도에 1조2050억원에 거래된 지분을 개인이 사들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다른 방법은 IPO다. ‘상장’은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문제는 방법과 시기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생명보험주의 가치가 최대한 높아지는 시기에 IPO를 추진해 지분을 확보하고, 경영권까지 유지하겠다는 계산이다.

FI 입장에서는 당장 IPO를 밀어붙이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시가 대비 30~50% 얹어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최근 비이자익에 관심이 높은 금융지주 입장서 교보생명이 매물로 나온다면 충분히 군침을 흘릴만하다. 하지만 이 경우 당연히 신 회장의 경영권은 위태로워진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생보업계는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된 이후에야 업황이 개선될 전망이다”라며 “교보생명은 2023년 이후에 상장을 노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진행 중인 교보생명과 FI의 민형사 소송은 일종의 ‘시간끌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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