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VC, 중소형 PEF 위협할 만큼 덩치 커져
신생사 투자 단계 전문화·업종 세분화로 경쟁력 키워

사진=한국벤처캐피탈협회
[데일리한국 견다희 기자] 벤처캐피탈(VC) 시장의 양극화·포화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신생사에 VC들은 하우스별 주특기 육성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창업투자회사(이하 창투사)는 지난 2017년 121곳에서 올해 1분기 기준 171곳으로 41.3%나 급증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 2017년부터 창투사 설립 자본금 요건을 5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대폭 낮춘 영향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신기술금융사(61곳)와 초기 투자에 집중하는 액셀러레이터까지 포함하면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운용사는 무려 308곳으로 늘어난다.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곳들까지 합하면 400여곳 안팎에 이른다.

해마다 신생사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업계에서는 스타트업보다 VC가 더 많아 돈이 있어도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위기감 섞인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업 실사를 하지 않고도 러브콜을 보내는 VC가 많다”면서 “기술력 등 차별점이 있는 유망 스타트업은 동시에 여러 VC에서 투자 제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 근거리 물류 스타트업 ‘바로고’의 800억원 규모 시리즈C 단계 투자에서도 당초 목표보다 많은 자금이 몰렸지만 다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VC업계 관계자는 “대형 VC는 초기투자 이후 후속투자를 집행하는 경우가 많아 유망한 스타트업을 선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때문에 신생 VC가 펀드를 조성하고 필드에 나와도 대형 VC보다 의사결정 속도가 늦고 후속투자 여력도 부족해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형 VC들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과 경쟁할 만큼 덩치가 커진 곳도 많다. 기관투자자들의 출자사업을 두고는 대형 VC가 중소형 PE의 몫을 위협하기도 한다.

1세대 VC인 에이티넘인베스트는 지난해 말 5500억원 규모의 ‘에이티넘성장투자조합2020’을 조성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5000억원대 펀드가 조성된 것은 처음이었다.

운용자산이 3조3000억원에 이르는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도 전년보다 투자규모를 늘려 56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집행하기도 했다.

쿠팡, 위메프 등 유니콘 기업 다수가 거쳐간 IMM인베스트먼트는 VC 뿐만 아니라 PE에서도 올해 1분기 가장 큰 규모인 8600억원 규모 블라인드펀드 ‘페트라8호’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극화가 심화되자 전문성을 키우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VC는 하우스별로 주특기를 키우는데 집중하는 추세다.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해시드’가 대표적이다. 해시드는 지난해 9월 VC인 해시드벤처스를 설립하고 같은 해 12월 ‘해시드벤처투자조합1호’를 약 1200억원 규모로 설정했다.

석달 만에 1200억원 규모 펀드를 모태펀드 출자 없이 운용사 출자금과 순수 민간자본으로 결성했다. 국내에서 조성된 첫 블록체인 투자펀드다. 이 펀드는 최근 기업공개(IPO)에 나선 크래프톤과 네이버, 카카오 등이 출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업계에서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라는 타이틀로 알려지면서 펀드 소진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결성한 1호펀드 소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올해 연말에는 2호 펀드 조성에도 나설 전망이다.

VC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시드나 시리즈A 등 초기 단계에만 집중하거나 시리즈C에서 프리(Pre)IPO 등 후기 단계 투자 전문화를 내세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면서 “투자 단계는 물론 투자 업종을 세분화 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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