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어린이 70명이 순회 공연하면 민족동질성 회복에 기여"
남북 두더지들이 휴전선 허무는 내용의 애니메이션도 구상 중
개성공단에 남북이 공동 참여하는 문화창작소 만들고 싶어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고학찬(67) 예술의전당 사장은 광복 70주년(2015년)을 앞두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남북 문화 교류를 통해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선 남한 어린이 35명과 북한 어린이 35명을 묶어 총 70명으로 '남북소년소녀합창단'을 구성해 한반도와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공연하는 것이다. 또 개성공단에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창작소를 설치해 두더지가 휴전선을 허무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구상도 하고 있다.

고 사장은 지난해 3월 예술의전당 사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무려 25가지의 직업을 거쳤다. 1980년대 당시 소위 잘나가던 방송사 PD 생활을 관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예식장 사장, 바텐더, 의류 제작· 판매상 등 15년 동안 생고생(?)을 자처한 그다. 그런 그가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문화 교류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프로젝트다. 12일 고 사장을 예술의전당에서 만나 꿈을 들어봤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아직도 나는 꿈을 꾼다, 남북 문화 교류로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

"나이 70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그런 제게도 아직 꿈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문화 쪽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치·군사적 통일보다는 문화 통일을 이뤄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내년에 '남북한 소년소녀합창단'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해외의 빈소년합창단이나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을 보면서 구상한 것입니다. 우리 남북한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 6개월만 연습한다면 그들을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어린이들이 서울,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주요 도시와 전 세계에서 공연한다면 통일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 정부와 북측의 동의를 얻는 게 쉽지 않을 것이므로 처음에는 북한, 중국 등 아시아의 어린이들을 모아 아시아 평화합창단을 꾸린 뒤 남북한 합창단으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이 광복 70주년이니 남북한 어린이 35명씩 총 70명으로 구성하면 더욱 뜻깊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조금 더 혁신적이었다. 개성공단에 문화창작소를 만들어 남북한 합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보자는 것이다. 남북한이 힘을 합친다면 미국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 '월트디즈니'를 능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북한이 그림 그리기에 능하다는 것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계에서는 북한 인력을 쓰고 있어요. 콘텐츠 아이디어가 많은 남한과 작화 실력이 남다른 북한이 힘을 모은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개성공단을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곳으로 만들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그곳이 남북한 합작 문화산업의 산실이 된다면 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고 사장은 남북한 합작 애니메이션에 담을 내용도 구상하고 있다. 한 사진전에 갔다가 철조망을 앞두고 노루 두 마리가 서로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휴전선이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도 '이산가족'으로 만들었으므로 동물의 시점에서 휴전선에 얽힌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보고 싶다고 했다.

"네 발 달린 동물 중 휴전선을 오갈 수 있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아마 두더지가 유일할 겁니다. 그래서 두더지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에요. 철조망이 세워진 후 동물들이 가족을 만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두더지들이 이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남쪽과 북쪽에 있는 두더지들이 '인간들 몰래 우리끼리 통로를 만들어보자'는 계획 아래 땅속 길을 만드는 겁니다. 남쪽 두더지들은 북쪽으로 올라가고, 북쪽 두더지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철조망 아래에서 만나는 게 목표죠. 그러다 두더지 한 마리가 지뢰를 잘못 건드려 땅속 길이 무너져 내리는데, 이 때문에 철조망이 쓰러지면서 모든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남북한을 오고갈 수 있다는 얘기예요. 시나리오는 초고로 완성한 상태인데, 반드시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1호'로 만들고 싶네요."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노래 잘하던 소년, 최초로 연극영화과 출신 PD가 되다

제주 용두암 바닷가 인근의 초등학교를 나온 고 사장은 "어린 시절 할 게 노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6·25전쟁의 폐허 속 교실도 온전치 않은 곳에서 어린 그는 바닷가를 마주보며 노래를 불렀다. 목청이 좋아 선생님들도 그에게 노래를 시키고 처벌을 면해줄 정도였다. 글쓰기도 곧잘 했다. 이승만정부 당시 '대통령을 주제로 한 시'와 같은 과제가 전국 초등학교에 내려오곤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그의 남다른 작문 실력을 보고 같은 반 50명의 시를 전부 쓰게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매일 가수가 됐고, 시인이 됐다.

"그때도 동네 어른들은 '우리 학찬이는 커서 가수가 될 것'이라며 심심하면 노래를 시킬 정도였습니다. 중학교도 음악·문학 특기 장학생으로 갔지만, 대학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택했어요. 당시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취업할 수 있는 곳은 방송국이 거의 유일했습니다. 한양대·동국대·중앙대를 통틀어 연영과 출신 PD는 없던 상황이었죠. 그랬는데 제가 TBC 방송사 공채 시험에 합격하면서 최초의 연영과 출신 PD가 된 겁니다. "

라디오 드라마국에 배치된 고 사장은 '아이디어 뱅크'로 자리잡았다. 'SF'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그 시절, SF 드라마를 제안하고 방송사 최초로 음향효과를 사용하기도 했다. 최초의 어린이 SF드라마 '손오공'과 서수남·하청일 듀오가 주연한 라디오 뮤지컬 '유쾌한 샐러리맨'은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린다. 이 같은 성과로 TV 분야로 옮겨진 그는 TBC '좋았군 좋았어'를 통해 MBC '웃으면 복이와요'의 아성에 도전했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미국 행을 택한다.

"치기 어린 젊은 날이었죠. LA에서 바텐더를 하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뉴욕으로 건너갔는데, 당시 원룸에서 다섯 식구가 살 정도로 고생하기도 했죠. 15년 미국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 사회가 무척 폐쇄적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직장 하나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일기획 Q채널 국장으로 한국 생활을 다시 시작해 윤당아트홀 관장을 맡은 뒤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처음 예술의전당 사장이 됐을 때 '겨우 소극장을 운영하던 사람, 방송 생활만 했던 사람이 어떻게 이곳을 잘 이끌겠는가'란 지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예술이라는 건 만인이 향유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예술의전당을 '엘리트만 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공연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전국으로 퍼트려 모든 국민이 즐기게 하고 싶습니다."

■고학찬 사장 프로필
서울 대광고, 한양대 연극영화과- TBC 동양방송 PD- 뉴욕 KABS 편성제작 국장- ㈜제일기획 Q채널 국장- 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국장- 윤당아트홀 관장- 예술의전당 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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