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용 산업부 차장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총수는 제품과 서비스를 철저히 고객과 직원 중심으로 맞추는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 사인(私人)이 아닌 공인(公人)이나 다름없어서다.

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연일 인스타그램에서 ‘멸공’(滅共)을 외쳤다.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의지가 담긴 멸공을 주창할 정도로 정 부회장은 손익을 중시하는 기업인으로서 갖기 힘든 당찬 기백을 지녔다.

헌데 우주에 가서도 물건을 팔아야 하는 비즈니스맨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사진을 내걸며 해시태그에 멸공, 방공방첩, 승공통일을 붙이는 대담함에 모골이 송연하다. 나비효과로 정치권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자, 결국 정 부회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으로 바꾸며 멸공의 주적을 북한으로 돌리긴 했지만 때늦은 보신책으로 느껴진다. 주판알을 튕기는 듯한 모습은 진로를 두고 오해를 살 만하다.

사업하는 집에서 태어난 정 부회장이 고민할 건 역시 물건 파는 일이다. 한·북·중 경제협력이 잘 풀리는 상황이 오면 신세계가 판문점을 건너고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유통망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 감자와 고구마, 바닷장어, 전통주로 품귀 현상을 빚어낸 정 부회장이 중국과 북한에서도 ‘완판남’으로 등극하지 말란 법도 없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꾸역꾸역 직장을 다니는 신세계의 모든 종사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주주들은 매일 ‘오너리스크’에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뛴다는 것이다. 멸공 논란으로 그룹 주가가 떨어지고 이마트·스타벅스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경영 위기를 개인의 잡음으로만 치부하면 득보다 실이 많아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신세계가 배출한 최고 히트 상품은 다름 아닌 바로 완판남 ‘정용진’이라는 점을 기업 경영에 잔뼈가 굵은 정 부회장이 잊어선 안 된다.

정 부회장의 멸공 타령은 신세계에서도, 집안에서도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서 기인된 듯하다. 개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도 직원들과 주주들을 극한 세상으로 내몰지는 말아야 한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경영철학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새삼 곱씹어볼 때다. 과잉은 문제를 잉태하기 마련이다. 너무 가까워지면 후유증이 생기기 쉽다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 신세계가 경영 위기에 직면하기 전에 공표한 멸공 절필 선언은 반갑다. 기업인은 가슴이 뜨거워도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멸공을 ‘돌’ 보듯 하고 이윤 극대화에 투철해야 식솔을 먹여 살릴 길이 열리는 동시에 쏟아지는 정체성 의심을 잠재우고도 남을 것이다. 멸공을 그만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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