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지난 11월 치러진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불수능'을 넘어 '마그마수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게 출제됐다.

1교시 국어영역의 만점자가 불과 28명에 불과할 정도로 어렵게 출제되는 바람에 1교시부터 수험생들에게 큰 혼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적 발표 전부터 이처럼 화제를 모았던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지난 10일 그 성적이 통지됐다. 불과 일주일 전 이야기이다. 그 짧은 사이에 유튜브를 무대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유명 사립대 재학생으로 알려진 입시 유튜버 A씨가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뒤 자신의 성적이라며 공개한 수능 성적표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A씨는 자신의 삼수 경험을 바탕으로 수험공부 노하우 등을 알려주며 유명세를 얻은 유튜버이다. 논란이 된 성적표에 따르면 A씨의 성적은 한국사를 제외한 전 영역이 1등급이었다.

그러나 노출된 수험번호를 통해 조회된 성적은 2등급에서 4등급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관해 명예훼손 등의 강경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던 A씨는 결국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SNS를 모두 닫고 활동을 중단했다. A씨는 잠적 하루만에 유튜브 영상을 올려 자신이 수능 성적표를 조작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솔직하게 성적을 밝히고 싶었지만 자신에 대한 기대감에 따른 실망과 조롱이 큰 부담으로 느껴져 사실을 밝히기 두려웠고 이에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처럼 수능 성적표를 위조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입시철이 되면 인터넷에서는 수능 성적표를 위조해준다거나 백지 성적표를 판매한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렇게 위조된 성적표의 용도는 다양하다.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는 목적, 높은 성적으로 좋은 재수학원에 들어가려는 목적, 과외 시장에서 좋은 수능성적을 거둔 것처럼 보이려는 목적 등이다.

수능 성적표는 공공기관인 한국교육평가원에서 발행한 공문서에 해당하므로 이를 위조하는 것은 공문서 위조의 죄에 해당한다. 형법 제225조는 행사할 목적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문서 또는 도화를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우수한 성적으로 위조된 성적표를 이용해 과외를 구했다면 이는 사기죄까지도 문제될 수 있다. 상대방인 학부모가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라는 기망에 빠져 과외비를 지급하게 만드는 행위는 사기의 범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와 매우 유사한 내용이 영화 '기생충'에서도 그려진다. 기택의 아들인 기우(최우식)는 명문대생 친구로부터 임시로 고액 과외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N수생 처지였던 기우는 명문대생을 사칭하기로 하고 여동생 기정의 도움을 받아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한다. 여기에서 아버지 기택(송강호)의 그 유명한 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가 등장한다. 결국 기우는 계획대로 위조된 재학증명서를 들고서 면접을 무사히 통과해 박사장의 집에 과외 교사로 안착한다.

영화 속 기우와 기정은 사립 명문대의 문서를 위조했으므로 이들이 한 행위는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죄와 더불어 사기죄에 해당한다. 영화 속에서는 한창 흥미롭고 유쾌하게 그려진 이 사기 행각이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드물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 어려운 수능을 헤쳐나가도록 고도로 단련된 수험생들이지만, 이들이 사문서이든 공문서이든 문서를 위조한다는 것, 그리고 위조된 문서를 이용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새삼 배워서 깨달아야만 하는 현실이 영화 기생충의 결말만큼이나 씁쓸하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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