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시장 선도, 이후 화학사업에 눈돌려

KCFT 인수해 동박산업 진출, 또 한번 체질 바꾸기 나서

최신원 전 SKC 회장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ESG 경영은 숙제

[편집자주]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며 해외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는 대체로 잘 사는 편이다. 선진국은 오랜 전통의 기업들과 새로운 시장에서 성과를 낸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경제성장과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비전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매출액이 많은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세컨드 딥체인지에 도전하겠다."

이완재 SKC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제48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장은 "퍼스트 딥체인지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부상할 2차전지 소재사업을 중심으로 또 한번 근본적인 체질 바꾸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SKC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딥체인지'를 말할 때 모범사례로 꼽히는 기업이다. 비디오테이프, CD 제조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SKC는 2000년대 들어 화학, 필름사업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SK넥실리스 정읍공장의 모습. 회색건물이 5공장과 6공장. 사진=SKC 제공
1977년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테르(PET) 필름 개발에 성공한 SKC는 필름 산업의 대표기업이었다. 필름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1980년 비디오테이프를 세계에서 4번째로 개발하기도 했다. 한때 전세계 비디오테이프 생산량에서 점유율이 4위에 이를 만큼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비디오테이프 산업은 공급과잉으로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1980년대 1개당 10달러였던 비디오테이프 수출가격은 1995년 1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다. 당시 새로운 저장매체였던 콤팩트디스크(CD) 또한 서서히 확산되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 SKC는 비디오테이프 산업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CD 생산에 집중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CD 산업 또한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MP3와 스마트폰의 등장, USB메모리의 확산이 CD 산업을 빠르게 밀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박장석 사장이 SKC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화학사업과 디스플레이용 PET 필름 사업이 회사의 주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박 사장은 프로필렌옥사이드(PO)의 공격적인 생산 확대를 추진했다.

PO는 폴리올(Polyol), 프로필렌글리콜(Glycol) 등의 원료로 사용돼 자동차의 내장재, 냉장고 및 LNG 선박용 단열재, 건축용 자재, 합성수지, 페인트 등에 사용되는 산업용 기초 원료다. 박 사장은 PO 생산방식을 친환경 기술로 대체해 아시아 폴리우레탄 시장의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대 중반 SKC의 영업이익 중 화학사업 비중은 70~80%에 달했다.

◇ 전기차 시대, 배터리 소재 회사로 도약

SKC는 최태원 회장의 선친인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설립한 기업이다. SKC의 옛 이름은 선경화학으로 SK그룹에서 3번째로 오래됐다.

SKC는 1977년 국내 최초로 PET 필름을 개발하고,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생분해 필름을 상용화했다.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PO 제품을 상업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친환경 HPPO(hydrogen peroxide route to propylene oxide) 공법으로 PO 제품 상업화에 성공했다. HPPO 공법은 과산화수소로 PO를 만들어 물 이외에 부산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SKC 광화문 사옥. 사진=SKC 제공
특히 SKC는 2007년 솔믹스를 인수한 것을 계기로 화학, 필름, 파인세라믹 분야까지 3개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솔믹스는 반도체 장비용 세라믹 소모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SKC는 이완재 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부터 또 한번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배터리 소재 중심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SKC는 지난해 KCFT를 인수하고, SK넥실리스로 사명을 변경해 동박 분야에 새로 진출했다. 동박산업은 SKC가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까운 미래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대체하면서 배터리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13만5000톤(t)이던 자동차 배터리용 동박 수요는 2025년 74만8000t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동박은 구리를 얇은 종이처럼 만든 것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를 만드는데 필수 소재다. 동박이 얇으면 얇을수록 더 많은 음극활물질을 담을 수 있게 된다. 결국 배터리 용량은 늘어나면서 무게는 더 가벼워진다.

일반적으로 2차전지용 동박의 롤 제품은 수십㎞로 돼 있다. 이를 만들려면 2~3일 동안 찢어지지 않게 제조해야 한다. SKC는 KCFT가 보유한 극박, 장조장, 광폭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 2019년 KCFT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4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전지박을 1.4m 광폭으로 세계 최장인 30km 길이로 양산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SK넥실리스 정읍공장 전경. 사진=SKC 제공
SKC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동박사업을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이완재 사장은 지난 9월 열린 'SKC 인베스터 데이(Investor Day)'에서 2025년 기업가치 30조원 규모의 글로벌 '넘버1' 모빌리티 소재회사로 비상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가치 창출의 핵심은 동박이다.

SKC는 2025년까지 적극적인 해외 증설에 나선다. 말레이시아 5만t, 유럽 10만t, 미국 5만t 등 앞으로 동박 생산규모를 총 25만t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사장은 SKC가 글로벌 동박 시장 점유율 35% 이상의 압도적인 1위 업체로 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SKC 자회사인 SK넥실리스의 올해 1분기 전세계 동박 점유율은 22%로 1위를 차지했다(판매 기준).

또 실리콘 음극재 등 2차전지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신규 소재 사업에 본격 나선다. 최근 SKC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특허를 다수 보유한 영국의 넥시온(Nexeon)에 지분 투자를 확정했다. 기존 동박 사업과 신규 실리콘 음극재 사업간에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완재 SKC 사장이 지난 9월24일 열린 'SKC 인베스터 데이(Investor Day)'에서 파이낸셜 스토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SKC 제공
양극재 역시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사업화를 추진한다. 2025년 동박 등 2차전지 사업의 매출을 현재의 10배인 4조원 규모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 2002년 매출 1조원, 2012년 2조원 돌파

SKC가 매출액 1조원을 첫 돌파한 해는 2002년이다. 사양산업이 된 비디오테이프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하고, 리튬폴리머 전지, 유기EL소재, 폴리올레핀 등을 주력사업으로 바꾼 것이 주효했다.

10년 뒤인 2012년 SKC의 매출은 2조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3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SKC의 매출액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3조3516억원이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4000억원 후반대로 전년보다 15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제시됐다.

SKC는 2025년 이익의 80% 이상을 모빌리티 소재에서 창출하는 등 사업구조를 모빌리티 소재 중심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소재사업 매출은 2025년까지 2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친환경 소재사업도 확장하기로 했다. 기존 필름, 화학사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아울러 SKC는 온실가스 및 플라스틱 넷 제로(Net Zero)라는 장기적인 목표도 세웠다. 스마트 윈도우필름 등 탄소배출 저감 소재사업을 확장하고, 신규 사업장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한다. 생분해 소재 사업과 재활용 사업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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