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지난 10월 8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민주주의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해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자 중 한명인 마리아 레사는 CNN 기자 출신으로 2012년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를 공동설립했다. 래플러는 필리핀 두테르테 정권의 비리와 폭력적 행태를 폭로하며 정권의 폭압에 맞서 싸워왔다.

특히 마약과의 전쟁을 앞세워 자행되는 두테르테의 인권 탄압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이 때문에 레사는 물리적 폭력과 위협마저 감내해야 했으며 투옥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레사는 정치권력의 탄압에 맞서서 언론의 자유를 몸소 수호해왔다. 노벨위원회는 이러한 레사의 활약에 관해 ‘표현의 자유를 이용해 필리핀의 권력 남용과 폭력 사용, 점점 확대되는 권위주의를 폭로했다’고 평가했다. 레사는 자신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사실(fact) 없이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소감을 밝혔다.

언론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1935년 독일의 카를 폰 오시에트키 이후 86년만의 일이다. 각종 정보와 매체가 난무하는 지금의 시대에 노벨평화상이 언론인에게 돌아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벨위원회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실에 기반한 저널리즘은 권력 남용과 거짓말, 전쟁 선동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전쟁, 갈등 방지의 중요한 선결조건’이라는 사실이 언론인에게 평화상을 수상한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몸소 언론탄압에 맞서 싸워온 언론인들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은 곧 이들을 탄압해 온 부당한 권력집단에 대한 경종이기도 할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더 포스트’는 1972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실화를 다루고 있다. 펜타곤 페이퍼란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과 관련해 여러 사실을 조작한 내용이 담긴 정부 기밀문서를 말한다. 이 영화는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으로서 정부의 언론 탄압에 맞선 캐서린 그레이엄이라는 한 여성을 조명한다.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워싱턴포스트지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고 있었으나, 남편이 죽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발행인의 자리에 오른 터였다.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여 보도를 준비하지만 불이익을 우려한 여러 인사들은 강력히 반대한다. 이미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보도금지 소송을 당하는 것을 비롯해 언론 탄압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한 채 보도를 강행하기로 결단을 내린다.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가 큰 반향을 일으키자 백악관은 갖은 협박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워싱턴포스트지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이유로 워싱턴포스트지의 손을 들어주면서 언론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함을 다시금 천명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정국이 더욱 시끄러운 요즘 언론인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던지는 엄중한 메시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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