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며 해외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는 대체로 잘 사는 편이다. 선진국은 오랜 전통의 기업들과 새로운 시장에서 성과를 낸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경제성장과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비전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매출액이 많은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2014년 드라마 ‘미생’은 완생(完生)을 꿈꾸는 종합상사맨의 애환을 절절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미생 이후 7년, 사막에서 난로를 팔고 북극에서 냉장고를 판다고 할 정도로 끈질긴 생존력과 뛰어난 영업력을 지닌 종합상사가 ‘상사 무용론’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종합상사는 새로운 사업을 포착하는 혜안이 뛰어난 업계다. LG상사가 지난 7월, 65년 만에 상사 간판을 떼고 ‘LX인터내셔널’로 새롭게 출발키로 한 결단에는 트레이딩을 중심으로 한 기존 역할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개척자 정신이 엿보인다. 사명 변경에 앞서 지난 3월 단행한 12년 만의 정관 변경 역시 더 이상 한 우물만 파진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격적인 비즈니스 행보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브랜드&커뮤니케이션’(Red Dot Award: Brands & Communication Design 2021) 부문 ‘본상(Winner)’을 수상한 LX인터내셔널.
◇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선 LX인터내셔널

LX인터내셔널은 1953년 ‘락희산업주식회사’로 설립된 이래 ‘반도상사’, ‘럭키금성상사’, ‘LG상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수출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내 최초로 이뤄낸 이집트 철강 플랜트 수출과 미국 프린트 OEM 수출은 LX인터내셔널이 업계에서 거둔 작지 않은 성과다.

창립 70주년을 2년 앞두고 LX인터내셔널은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섰다. 지난 5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삼촌인 구본준 회장이 계열분리하며 LG상사를 데리고 나간 것이다.

구 회장은 자신이 고문으로 일하던 LG에서 LG상사,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 MMA의 4개 회사를 들고 나와 ‘LX’를 차렸다. 이들 회사들은 지난 7월 일제히 사명에서 LG를 떼고 LX 간판을 붙여 기업 정체성을 강화했다.

과거 GS그룹, LS그룹, LIG그룹 등이 LG에서 독립한 것과 같은 행보다. LG는 선대 회장이 별세하면 장남이 그룹 경영을 이어받고, 동생들이 분리해 나가는 ‘형제 독립 경영’ 체제 전통을 이어왔다.

LX인터내셔널은 물류회사인 LX판토스를 자회사로 갖고 있다. 석탄·팜오일 등 에너지 사업, 플라스틱 수지 등 산업재 사업을 운영 중이다. 계열 분리 후엔 2차전지 소재인 니켈 사업, 디지털 플랫폼 사업, 헬스케어 사업도 하겠다고 선언했다.

LX인터내셔널은 LX판토스의 지분 51%를 가진 모회사다. 판토스의 성장은 LX인터내셔널의 실적과 직결된다.

물류센터 운영과 배송 업무를 모두 하는 LX판토스는 국내에선 유일하게 ‘도어-투-도어’ 서비스가 가능한 업체다. 보통 물류기업은 출발지 항구에서 화물을 싣고 도착지 항구까지 운송한 다음 내륙 운송은 현지 업체에 맡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판토스는 이 모든 과정을 한 번에 끝낸다.

LX판토스는 국내 물류기업 중 처음으로 ‘의약품 항공운송 품질 인증’을 획득했다. 까다로운 코로나19 백신을 운송할 자격을 가장 먼저 갖춘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의약품 물류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판토스다.

LX판토스는 화주들이 해운 운임이 급증한 데 따른 부담감을 느끼자 항공 운송과 더불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한 운송 루트도 개척하는 등 지난해 LX인터내셔널 영업이익의 83%를 기여했다.

덕분에 LX인터내셔널의 지난해 매출은 11조2826억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의 70%, 영업이익은 1598억 원으로 40%의 비중을 차지했다. LG 품에 있을 때는 LG전자나 LG화학 뒤에서 동생 역할을 했으나, LX에서는 자산이 제일 많고 실적이 가장 좋은 만큼 계열사 맏형으로서 책임이 따른다.

지난 6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12년만의 정관 변경을 통해 7개 분야를 사업목적으로 새로 추가하며 신규 사업 진출을 통한 회사 성장을 꾀한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친환경 사업 추진을 위한 폐기물 수집 및 운송·처리시설 설치 및 운영 △디지털경제 확산에 따른 전자상거래·디지털콘텐츠·플랫폼 등 개발 및 운영 △헬스케어 사업 추진을 위한 의료검사·분석 및 진단 서비스업 등이 LX인터내셔널의 새로운 돌파구다.

사업목적 추가가 당장의 이익을 회사에 가져다주는 건 아니지만, 업계 상위 기업의 사업 다각화 행보는 다른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업계 전체의 동반 성장을 도모할 나비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LX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시대의 변화를 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LX인터내셔널의 코로나19 검사소 'K랩' 내부 모습. LX인터내셔널은 K랩을 통해 65세 이상 인도네시아 교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 신성장동력은 ‘친환경’

LX인터내셔널은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갈아엎고 있다. 새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친환경’이 눈에 띈다. 석탄 트레이딩 분야 선두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과감한 사업 전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최근 투자 비용도 석탄사업 비중 축소를 대비하는 데 쓰였다. 청정연료로 알려진 디메틸에테르(DME)의 생산 기술을 보유한 벤처 기업인 바이오프랜즈에 27억 원을 투자하며, 미래 먹거리를 겨냥한 사업 방향 전환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LX인터내셔널의 포트폴리오 수정·전환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국내 주요 종합상사 가운데 석탄 사업 비중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석탄 대신 니켈 등 친환경 신사업을 키우는데 주력하는 이유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석탄 광산과 팜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전략적 거점지역, 인도네시아에 대한 신규 투자를 더욱 늘릴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석탄 광산뿐만 아니라 니켈 광산 소재지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서 12년째 운영 중인 팜농장도 여전히 유망한 친환경 사업으로 분류된다. 식품이면서 동시에 친환경 연료로도 쓰이는 팜오일은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신재생연료(바이오디젤) 혼합 의무화 정책을 펼치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팜오일 가격은 톤당 1000달러를 돌파하는 호재까지 맞물렸다.

이외 수력 발전에서의 탄소배출권 확보, 폐기물·폐배터리 처리 등을 통한 자원순환에서의 친환경 사업도 종합상사 경험이 풍부한 LX인터내셔널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아울러 스마트 물류센터 운영 등 디지털 분야와 시니어 케어·건강관리·레저·스포츠 등 웰니스(Wellness) 분야의 헬스케어 등에서도 신사업 영토 확장이 예상된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룹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등 핵심 계열사 위상이 굳건하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239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801억 원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난 호실적을 거뒀다. 특히 2분기 영업이익 1258억 원은 전년 동기대비 4배 이상 늘어난 눈부신 성과다.

윤춘성 LX인터내셔널 대표는 “과감한 도전 정신과 강한 실행력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하고, 혁신적인 사업 모델로의 전환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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