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봉준호의 영화는 기하학적 구조를 즐겨 사용한다. 그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 만들었던 '지리멸렬'에서 포착해낸 복잡한 파이프라인들 사이에서 이미 그의 기하학적 구조에 대한 의식적 사용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구조물의 수직과 사선을 이용해 기하학적 특징을 강조하는 그의 스타일은 고전 할리우드 한 때를 강타한 필름누아르의 대표적 스타일이기도 하다. 일견 필름누아르 스타일에 터잡은 듯 보이는 그 치밀한 미장센에는 계급에 대한 그의 의식 면면이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평의 드넓은 평원을 배경으로 시작되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수직의 공장 구조물들을 이정표처럼 영화 곳곳에 뚜렷이 새겨 두었던 '살인의 추억'도, 수직으로 뻗은 한강 다리의 위용을 과장되게 드러냈던 영화 '괴물'도 그 예외가 아니다. 그의 영화는 아래를 짓누르는 권위와 힘 그리고 그 충돌을 그렇게 시각적으로 드러내어왔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기생충'에서도 역시 충실하게 이어진다.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계급과 그 차이를 시각화하는 데 적절한 장치인 촘촘한 계단과 전봇대와 전깃줄, 마치 '살인의 추억'에서 소환된 듯한 터널 이미지까지, 그는 여전히 기하학적 구조를 적극 활용해 우리 사회의 계급과 갈등을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이처럼 수직, 수평, 상승, 하강, 충돌, 가로지르기를 십분 활용한 '기생충'을 두고 이동진 평론가는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유명한 한줄평을 남겼다. 그런데 이 한줄평은 영화의 화제성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엄청난 유명세를 타면서 회자되었다. ‘명징’과 ‘직조’라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의 어휘인지 아예 들어본 적조차 없다는 대중들의 원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이러한 기생충 한줄평 사건과 기사 제목상의 ‘사흘’을 네티즌 다수가 ‘4일’로 오인했던 해프닝은 우리 국민들의 문해력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우리 국민들의 문해력 문제는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단순한 기우에 불과한 정도가 전혀 아니다. 지난 9월7일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200만명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수준(수준 1: 초등 1~2학년 학습 필요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유난히 읽고 쓰기를 익히기 쉬운 문자인 한글 덕분에 문맹률 자체는 낮지만, 실제로 성인이 일상생활에서 글(정보)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필요한 문해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평생교육법에 근거해 우리나라 성인 문해력 향상을 위해 문해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평생교육법에서는 ‘문해교육’에 대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문자해득(文字解得)능력을 포함한 사회적·문화적으로 요청되는 기초생활능력 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조직화된 교육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문해력이란 단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육의 토대가 되는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단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의 총체가 곧 문해능력이다.

영화평 한 줄을 이해하는 것도, 영상언어로 구현된 영화를 이해하는 것도, 이러한 영화를 볼 수있게 하는 미디어를 활용하는 능력도 모두 문해력의 영역에 속해 있다. 문자를 통한 원활한 일상생활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와 활발히 소통하고 그 가운데 자신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 역시 자신의 ‘문해력’과 그 성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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