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경영 전략, 과감한 투자 맞물려 MLCC 2위

원가경쟁력 확보해 TDK·다이요유덴 등 일본 기업 따돌려

삼성전자 매출 의존도 20% 미만 목표…MLCC 1위 무라타 추격

[편집자주]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며 해외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는 대체로 잘 사는 편이다. 선진국은 오랜 전통의 기업들과 새로운 시장에서 성과를 낸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경제성장과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비전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매출액이 많은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1969년 출범한 삼성전자는 전자산업 세계 1등을 거머쥐기 위해선 수직계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주요 부품 생산을 내재화하게 되면 원가경쟁력과 세트 기술력에서 앞설 수 있다. 또 오너경영 체제하에서 과감한 투자와 일사불란한 공급체계가 맞물려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삼성전기는 1973년 삼성과 일본 산요전기의 합작사인 삼성산요파츠로 출발했다. 당시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은 하이테크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산요전기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삼성산요파츠는 이후 삼성전기파츠, 삼성전자부품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후 1983년 산요가 지분을 철수하면서 1987년 삼성전기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게 된다.

삼성전기 수원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기 제공
오늘날 삼성전자의 성공은 혁신에 실패해 몰락의 길을 걷는 소니와 대비된다. 업계에선 삼성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계열사에서 자체 조달하는 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부품 기업으로 출발한 삼성전기는 1980년대에 소재 및 컴퓨터 부품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했다. 1988년 국내 최초의 초소형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개발을 시작으로, 세계 무대로 MLCC 기술력을 확장하게 된다. 1990년대에는 삼성전자의 가전을 중심으로 컬러 TV용 튜너, 인쇄회로기판, MLCC 등을 공급하며 성장했다.

특히 삼성전기는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초박형 MLCC에서 성과를 내는데 주력했다. MLCC는 TV,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 회로에 적당한 전류가 흐르도록 조절해주는 기능을 하는 부품이다. 삼성전기는 2001년 세계 최소형 MLCC(0603 사이즈) 개발 및 양산, 2003년 9월 세계 최초 초소형 MLCC(0402 사이즈)를 개발하는 등 최초 타이틀을 선점했다.

◇ 초박형 MLCC 집중, 모바일 시대에 전세 역전

MLCC는 오늘날 삼성전기 실적에서 효자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사업을 이끌어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본 기업은 삼성전기에 원자재와 설비를 공급하지 않았기에 MLCC를 직접 만들지 않는 회사에서 원자재를 구입하는 등 악전고투해야만 했다.

삼성전기의 기술력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MLCC 시장은 사실상 일본 기업의 텃밭이었다. 삼성전기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1998년 무라타의 MLCC 점유율은 46%, TDK는 21%였다. 한자릿수 점유율에 불과했던 삼성전기는 업계에서 마이너 취급을 받아야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2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찾아 MLCC 제품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기는 핵심 소재 및 설비를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MLCC 원재료인 BT파우더 생산 설비를 롯데정밀화학으로부터 인수하는 등 자체 생산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원재료 비중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다.

또 기술 난도가 높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초박형 MLCC 기술에서 앞서나갔다. 2009년 MLCC 시장에서 연간 기준 점유율 2위에 등극한 삼성전기는 휴대폰 대중화에 따른 부품 수요 증가 등의 수혜를 입고 고속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기업 입장에선 삼성전기의 점유율 확대가 보기 좋을리 없었다.

2010년 업계 3위인 일본의 다이요유덴은 그 해 하반기부터 MLCC 값을 공격적으로 낮추기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경제 불황 등으로 MLCC 수요가 줄어들고 있었다. MLCC 제조사간에 '치킨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기는 이를 절호의 찬스로 받아들였다. 삼성전기는 원재료 및 설비 내재화, 공격적인 캐파(생산능력) 확대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 2000년대 들어 고가의 팔라듐(Pd) 대신 저가의 니켈(Ni)을 내부전극으로 사용한 고용량 MLCC를 개발해 생산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었다. 결국 다이요유덴과 TDK는 삼성전기와의 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하게 된다.

삼성전기의 MLCC. 사진=삼성전기 제공
◇ 삼성전자 후광 벗어난 전자부품 최대 공급기지

삼성전기가 전자부품 최대 공급기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분야에서 1등 제품을 육성한다는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기는 이 과정에서 셋톱박스, 전해콘덴서 등에서부터 모바일 무선충전, 와이파이 모듈 사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업을 매각하거나 철수를 단행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산업 흐름에 따라 '선택과 집중' 경영에 과감히 베팅한 것이다.

삼성전기는 과거 삼성전자에 전적으로 의존한 부품사에서 오늘날 글로벌 전자부품 선도업체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전기의 매출 의존도는 34%로 전년보다 10%포인트(p) 줄어들었다. 2015년 삼성전자에 대한 비중은 60%가 넘었다.

삼성전기는 외부 고객사를 늘려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더 낮춘다는 목표다. 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 3월1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그동안 높은 삼성전자 의존도, 부진한 기술차별화, 낮은 원가경쟁력 등의 문제가 있었다"면서 "단기적으로 20% 미만까지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경 사장은 "삼성전기와 관련된 전자부품 시장 규모가 전년보다 올해 1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올해는 삼성전자 뿐 아니라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의 보급형 제품에도 고사양 카메라모듈 공급이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기의 초슬림 광학 5배줌 카메라모듈. 사진=삼성전기 제공
또 전기차 시장이 열리면서 전장용 MLCC 뿐 아니라 전장용 카메라모듈 등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장용 MLCC 점유율에서는 아직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삼성전기의 점유율이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자동차 및 산업용 MLCC의 공급부족 현상이 지속되면서 MLCC 공급가격이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삼성전기가 MLCC 최대 호황기였던 2018년 실적을 올해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평균적으로 제시한 삼성전기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추정치는 각각 9조2087억원, 1조2236억원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과 비교해 각각 12.2%, 47.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상 최대 실적을 썼던 2018년 삼성전기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8조20억원, 1조1499억원이었다.

삼성전기는 MLCC 사업을 더 강화해 일본의 무라타를 추격하는데 고삐를 죈다는 방침이다. 지난해말 기준 무라타의 MLCC 점유율은 38%, 삼성전기는 23% 가량으로 추정된다.

삼성전기의 초슬림 3단자 MLCC. 사진=삼성전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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