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 변호사]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내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대한 우려가 계속 커져가던 가운데 실로 상상하기조차 힘들 만큼 끔찍한 혐오범죄가 발생했다.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한인여성 4명을 포함해 6명의 아시아계 여성들이 백인 남성의 총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여론에서는 이 사건을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증오범죄로 보고 있는데 반해 애틀랜타 경찰은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의 진술에 의거해 성중독에 의한 범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증오범죄 인정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공분을 샀다. 현재까지 인정된 롱의 혐의는 악의적 살인과 가중폭행죄로 알려져 있으며 증오범죄 여부는 아직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미국 연방법이 1968년 인종이나 종교 등을 이유로 폭력을 가하면 처벌할 수 있는 증오범죄법을 마련한 이후 미국의 47개 주에서 증오범죄법이 도입됐다. 조지아주에서는 2004년 너무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증오범죄법이 대법원에서 무력화됐다가 작년에 현재의 증오범죄법이 제정됐다.

조지아주의 증오범죄법은 증오범죄를 단독 범죄로 기소하도록 하지는 않으며, 기소된 혐의가 증오범죄로 인정될 경우 그 형량을 높이는 가중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배심원단이 증오범죄로 판단할 경우 최소 2년 이상의 형량이 추가되며, 최대 5000달러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 성, 성적 지향, 장애 등에 대한 혐오가 범행 동기라고 입증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애틀란타 총격사건의 피해자 8명 중 7명이 여성이고, 그 중 6명이 아시안 여성이다. 백인 남성이 특별한 사유 없이 무차별 난사로 살해한 피해자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이 범죄는 이미 인종차별과 여성혐오의 혐의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가수 에릭 남이 기고했듯이 이 범죄에 인종적 동기가 없다고 보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나마 미국의 아시아계 혐오에 분노하는 우리 국민들이지만, 우리 역시 차별과 혐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곳곳에서 혐오와 차별적 표현이 문제돼 온 터라 장애인차별금지법, 옥외광고물에 관한 법률 등 개별법에서 혐오표현을 일부 규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법령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 매체인 영화에 관해서도 혐오표현을 둘러싸고 법적인 분쟁까지 벌어진 사례가 있다. 2017년작 ‘청년경찰’에서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대림동을 경찰도 포기한 범죄 소굴로 표현하고 조선족 동포들을 범죄집단처럼 묘사했다는 이유로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1심에서는 원고들인 조선족 동포들이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조선족 동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라는 내용의 화해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법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의 부정적 묘사로 인해 원고들이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았으며, 향후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반감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혐오표현은 없는지 여부를 충분히 검토하도록 권고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3.16. 선고 2018나65271 판결)

이러한 법원 결정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는 인간을 혐오하고 차별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자유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비극적인 미국의 총격 사건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우리 현실에 눈을 돌려 스스로 혐오와 차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지를 엄격히 돌아봐야 할 때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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