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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서희 변호사의 법과 영화 사이] 표절로는 닿을 수 없는 '환상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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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시간승인 2021.01.27 13:13
  • 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 변호사] 우디 앨런의 영화 ‘환상의 그대’에서는 어벤져스에서 타노스를 연기한 배우 조쉬 브롤린이 안소니 홉킨스의 사위이자, 나오미 왓츠의 남편 로이로 등장한다. 무명작가인 로이는 데뷔작 이후로 변변한 작품을 쓰지 못해서 번번이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는 신세이다.

어느 날 포커모임의 친구인 헨리의 부탁으로 그의 처녀작 소설을 읽어 본 로이는 헨리의 뛰어난 작품을 극찬하며 출판사에 헨리를 소개해주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헨리가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여러모로 곤궁에 처해있던 로이는 급기야 헨리의 소설을 훔치기로 마음먹고서 이를 자신의 작품인 척하며 출판사에 보낸다. 이후 새로 사귄 젊은 애인과 결혼하려고 샐리(나오미 왓츠)와 이혼까지 한 로이는 출판사의 뜨거운 호응으로 소설 출간을 눈앞에 두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오랜만에 나간 포커모임에서 정작 즉사한 친구는 따로 있었고 헨리는 혼수상태에서 회복 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로이. 그 동안의 달콤했던 환상에서 깨어나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의 절망적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여덟 명의 남녀를 둘러싼 로맨스를 통해 곳곳에서 블랙유머를 구사하는 이 영화는 우리들 인생에서 때론 위로가 되고 어쩔 땐 더 큰 절망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환상의 기능을 이야기한다.

무명작가에서 대박작가로 거듭나기를 꿈꾸며 죽은 친구의 작품을 통째 훔쳐낸 로이의 행위는 너무도 터무니 없어 그야말로 환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무모한 행위가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 전 소설가 김민정씨가 자신의 단편소설 ‘뿌리’가 통째로 도용돼 복수의 공모전에 출품된 결과 다섯 차례의 수상까지 이뤄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도용자는 소설의 일부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 대범하게도 소설의 본문 전체를 자신의 작품으로 가장했다. 마치 영화 속 환상에 빠진 로이 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 도용의 당사자는 노래 가사를 자작시인 것처럼 공모전에 내거나 언론사의 사진을 공모전에 출품해 수상한 경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인의 저작물(원저작물)을 일부 표절해서 창작성이 부가된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 경우 그 저작물에 대한 별도의 저작권이 새롭게 인정된다. 그 대신 도용당한 원저작물의 경우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침해가 인정돼 그에 따른 구제수단을 통해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저작권법 제22조)

반면 타인의 저작물을 표절했으나 새로운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를 새로운 저작물이 아니라 원저작물의 복제물이라고 보아 복제권 침해로 의율하게 된다.(저작권법 제16조) 소설 ‘뿌리’의 도용 사건의 경우는 창작성 부가 여부를 가릴 것도 없이 명백한 복제권 침해 행위이자, 성명표시권 침해 행위에 해당된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소설 전체를 복제했고, 소설의 저작자인 김민정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이를 도용한 손 모씨의 이름을 그 저작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복제권 침해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행위로, 이는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에 해당한다. 그래서 공모전 등에서 공모작품과 관련해 저작권 침해행위가 발견되더라도 저작자의 고소가 없으면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2020년 11월 20일 시행된 개정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서는 공익신고의 대상인 공익침해행위의 범위에 저작권법상의 형사처벌 대상 행위를 포함하게 됐다. 친고죄에 해당하는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해서도 제3자의 공익신고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저작권법 위반행위에 대한 공익신고는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얼마 전 개설한 온·오프라인 신고 창구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이 처벌을 통한 위하적 효과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저작권에 대한 건전한 인식이 환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각계의 추가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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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21/01/27 13:13:22 수정시간 : 2021/01/27 13: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