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 변호사] 생후 16개월 아기 정인이 사망 사건에 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지난 달 9일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양모 장씨를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죄 등으로 구속 기소했던 검찰은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주위적으로 살인, 예비적으로 아동학대치사로 바꾸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장씨의 행위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라고 보아 살인죄로 의율하되 만일 입증 부족으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 무죄를 받는 일이 없도록 예비적으로 아동학대치사죄로 처벌하려는 것이다.

정인이의 죽음이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이후 국민적 분노가 들끓자 정치권에서는 앞다투어 '정인이법'을 제정하겠다며 나섰다. 실제로 지난 8일 '정인이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는 뉴스가 언론을 장식했다. 이번에 제정된 '정인이법'이란 새로운 특별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아동학대처벌법과 민법을 일부 개정한 것을 지칭한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끝내 정인이를 살리지 못했던 현행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 아동학대처벌법에서 아동학대 신고 접수 시 즉각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였고, 출입 가능한 장소를 학대현장 뿐 아니라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장소'로 확대하는 등 수사의 실효성을 강화했다.

또한 민법에서는 자녀 학대를 정당화하는 규정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는 제915조의 징계권을 아예 삭제하였다. 다만 처벌 강화를 목적으로 아동학대치사의 법정형 하한을 올리자는 내용은 자칫 엄격한 증명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소 내지 유죄 선고가 어려워질 역효과를 우려해서 배제됐다.

이번에 개정된 아동학대처벌법 자체가 이른바 '칠곡 계모 학대 사건'을 계기로 2014년에 제정되었던 특별법이다. 이처럼 법 제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힘 없는 어린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라는 절대악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영화 '미쓰백'의 주인공 백상아(미쓰백)는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학대받다 끝내 버림받은 아픔을 안은 채 아무런 희망도 없이 척박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엄마의 부고를 접하고 힘들어 하던 미쓰백은 추운 밤 변변한 옷도 없이 떨고 있는 작은 소녀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 본다. 학대라는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둘이 함께 짙은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간다.

실화를 모티브로 하였다는 영화 '미쓰백'은 2015년의 인천 아동학대 사건을 연상시킨다. 아이를 굶긴 채 가둬놓고 게임만 하는 친부와 그의 동거녀, 그리고 목숨을 건 아이의 위태로운 탈출까지. 이 영화의 로케이션이 인천이라는 것도 그 사건과의 접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미쓰백이라는 인물의 존재다. 미쓰백은 학대를 받는 아동을 눈여겨보다 학대 사실을 알아냈으며, 그 학대가 아이 목숨을 위협할 만큼 잔혹하다는 사실에 아이를 분리했고, 학대를 신고했으며 가해자들을 응징했다. 그리고 조력자들을 통해 아이를 돌보았다.

아동학대가 발생할 경우 사회적으로 작동하여야 할 기능을 미쓰백이 다 해낸 것이다. 미쓰백은 법이나 다른 어떤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그저 피해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했다. 영화는 그렇게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속 아이가 환하게 웃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미쓰백이 의연히 완수해냈기 때문이다. 피학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기능의 정상적 작동 말이다.

체포된 친부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이 꼴 보고 자란 아이 인생도 별볼일이 있겠느냐"고. 그는 틀렸다. 미쓰백을 대체할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기능이 온전히 작동된다면 상처투성이 작은 아이도 반드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속에서 벚꽃보다 환히 빛나던 미쓰백과 지은이 처럼 말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