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 변호사] 리들리 스콧 감독의 '어느 멋진 순간'에서 주인공 맥스는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헨리 삼촌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만, 수년 뒤 돈만 밝히는 속물이 돼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가 프로방스로 돌아온 이유는 10년간 만나지도 않은 삼촌이 남기고 간 와이너리를 상속받기 위해서이다. 삼촌이 유언장도 없이 떠난 탓에 유일한 혈육인 맥스가 모든 재산을 받게 된 것이다. 와이너리(포도밭)를 당장 팔아 목돈을 쥘 생각이던 맥스는 "삼촌의 딸"이라며 찾아온 크리스티나에게 위협을 느낀다.

혼외자에게 곧바로 상속권을 인정하는 프랑스 상속법 때문에 맥스가 상속 순위에서 밀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맥스는 애써 크리스티나의 존재를 외면한 채 급히 와이너리를 팔아버리지만 이내 크리스티나가 진짜 삼촌의 딸이라는 사실과 함께 삼촌의 와인이 가진 뛰어난 맛 그리고 자신에게 준 삼촌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그 모든 것을 되돌리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상속받을 자격이 없는 등장인물이 회심해서 스스로 정당한 상속인에게 유산을 돌려주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과연 어떠할까?

지난 12월21일 광주가정법원에서는 고(故) 구하라씨 유가족의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민법은 피상속인(유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자녀와 배우자 없이 사망한 경우에 그 부모가 2인의 공동 상속인(유산을 받는 사람)이 되어 유산을 50대50의 비율로 동등하게 상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속제도 때문에 구씨가 9세 이후 만난 적도 없던 친모가 나타나 구씨 재산의 절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바람에 상속을 둘러싼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부양의무를 져버린 친모가 상속 자격이 있는지 가려달라는 구씨 오빠의 청구에 대해 법원은 이혼 후 구씨 남매를 홀로 양육해 온 아버지의 기여분을 반영하여 상속비율을 50대50이 아니라 60대40(부:모)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부모는 이혼하더라도 미성년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12년 동안 구씨를 홀로 양육한 것은 단순한 부양이 아니라 ‘특별한 부양’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고인을 특별히 부양한 자’가 있을 때 협의로 기여분을 상속재산에 더하도록 하고, 이러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정법원이 그 기여분을 정하게 한 민법 제1008조의2에 근거한 것이다.

현행 민법은 상속인이 피상속인이나 선순위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을 방해하는 등의 극단적인 사례에 한해 제한적으로 상속할 권리를 박탈(민법 제1004조)하고 있다.

구씨의 오빠는 친모처럼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에는 상속을 제한하는 내용의 일명 구하라법(민법 상속편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비록 친모와의 소송에는 적용되지 못하겠지만 동생의 이름으로 세상에 보다 정의롭고 유익한 법률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위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21대 국회에 1호 법안으로 발의된 상태에 있다. 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다는 기준이 모호한데다 상속제도 전체의 개편을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라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법률 검토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어느 멋진 순간'에서 헨리 삼촌이 맥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은 와이너리라는 물질적인 실체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빛나는 그 곳에서의 멋진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비록 이제는 우리 곁에 없지만, 그 어떤 영화 속 장면보다 더욱 빛나던 순간들을 우리에게 남기고 간 그녀 구하라의 그 멋진 순간들을 부디 오래오래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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