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변호사]지난 주말 극악무도한 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로 우리나라 전역이 크게 들썩였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끔찍했던 그의 범죄는 시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극도의 공분을 반영하듯 출소자의 거주지 인근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경찰은 일부 군중의 과도한 행위에 대해 엄중 대처하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주말에 형사 입건된 인원은 무려 8명이었다. 피의자들은 경찰에게 돌진하거나 경찰차에 올라타는 등의 행패를 부렸는데 그 죄목은 대개 공무집행방해를 포함하고 있다.

형법은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하는 행위를 공무집행방해죄로 규율하고 있다(제136조). ‘공집방’으로 약칭되는 이 조항의 보호법익(※어떤 법 규정이 보호하려고 하는 이익)은 공무원이 집행하는 직무이다.

단순히 공무원 지시에 불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꽤 넓게 인정되는 편이다. 또한 정당한 직무만을 보호하기 때문에 공무원의 행위가 위법할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만일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범죄한 경우에는 형법 제144조에 의해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가중처벌된다.

빌 머레이 주연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는 원치 않는 타임루프(시간 여행) 때문에 자포자기해 공무집행 방해를 일삼는 주인공 필이 나온다. 2월2일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은 필은 어차피 내일이 없으면 제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음주운전으로 우체통을 날려버린다. 이어 경찰차를 따돌리기 위해 난폭운전으로 추돌사고를 유발하는 것도 모자라 기찻길을 달리며 추격전까지 펼친다.

특수공무집행방해죄의 요건인 ‘위험한 물건’이란 원래의 용도와 무관하게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해를 가할 수 있는 물건을 말한다. 비단 흉기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하이힐 등도 포함된다. 우리 판례에 따르면 필이 차를 운전한 것 역시 ‘위험한 물건의 휴대’로 볼 수 있다. 영화 속 필의 난폭·음주운전은 도로교통법 위반죄와 재물손괴죄에 해당할 뿐 아니라 위험한 물건인 자동차로 정당한 직무 중인 경찰을 폭행·협박한 것이어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까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체포돼 유치장에서 밤을 보낸 필은 아침이 되자 다시 호텔방에서 눈을 뜬다. 필은 한동안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체념 어린 방황을 하기도 하지만, 점차 의미 있고 선한 일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얕은 꾀로는 얻지 못했던 여주인공 리타의 사랑을 얻음으로써 마침내 2월2일의 블랙홀에서 벗어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흉포한 범죄자를 철저히 응징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적인 응징은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결과로 도리어 악인을 보호하거나, 범법 행위를 규율하는 데 공권력을 투입하는 사회적 낭비만 가져올 뿐이다.

무엇보다 사적 응징을 앞세운 일부 유튜버들이 벌이는 소란은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 조회수만 노리는 왜곡된 콘텐츠가 양산되는 데에는 그 수요가 존재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극악한 범죄에 또다른 불법으로 대응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될 리도 없거니와 정의를 빙자한 쇼의 범람은 사회를 더욱 좀먹을 뿐이다.

'사랑의 블랙홀'의 주인공은 더 나은 자신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할 때 비로소 그 루프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 역시 지금처럼 잔혹한 범죄에 당면했을 때 또다른 불법의 블랙홀에 빠지는 대신, 그런 죄악이 결코 용납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변화시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야 할 것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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