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이혜영 기자
40대 후반의 미사신도시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김모(48)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2년 전 전용면적 101㎡ 아파트 가격이 8억원 중반대였을 때 대출을 받지않고 구입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작년까지만해도 10억원을 넘지 못했지만 올 초에는 11억원까지 훌쩍 올랐다. 이후 잠시 코로나19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최근엔 12억원까지 올랐다.

김씨는 2년 전 아내가 대출을 끼고 무리해서라도 매매를 하자고 했지만, 정부대책을 믿고 집값이 내리기만 기다렸다. 작년에도 전셋값을 걱정하는 아내가 매매를 재차 권유했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투기지역을 세분화하고, 고강도 대출규제까지 예고한 정부를 믿었다. 이젠 아내하고는 부동산 얘기만 나오면 다툰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도 3년 2개월이 됐다. 이제 1년 10개월 남았다.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은 2017년 8월 ‘8·2 부동산대책’이 나왔을때만해도 국민들은 정부가 실제 집값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지난달 6·17 대책까지 정부는 수차례 고강도 부동산대책들을 내놨다.

그 사이 일시적인 냉각기로 평가되는 조정국면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은 풍선효과와 폭등을 반복하며 특히 서울의 상당수 집값은 3년 전보다 50% 이상 올랐다. '자고나면 오른다'는 말이 지난 3년동안의 부동산 시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문 대통령까지 직접 챙기면서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집값을 잡기 위한 추가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국민들은 이제 정부대책을 불신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최고의 부동산 대책은 '추가 대책'이라는 비아냥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로 신뢰를 잃은지 오래됐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 부동산규제도 많고, 코로나19로 경제도 엉망인데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과잉 유동성이다. 사상 초유 사실상 제로금리시대에 시중에 1500조원이나 되는 풍부한 자금이 넘쳐나는데 이 돈은 주식과 부동산 외에 특별히 갈 곳이 없다. 올해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마저 풀리면 시중 유동자금은 더욱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정부대책은 투기수요 차단과 법인거래 및 갭투자(전세금을 낀 주택매매) 차단에만 몰두해 있다. 여기에 강남 고가아파트 등 특정지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핀셋규제’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중저가 아파트와 비규제지역 아파트까지 동반 상승하는 풍선효과까지 불러 일으켰다.

현재 부동산시장은 퇴로가 막혀있는데 여기저기 핀셋으로 풍선을 눌러 주변만 부풀어오르게 만드는 형국이다. 주 수요층으로 급부상한 30~40대 젊은층에서는 집값을 내리겠다는 정부발표를 신뢰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규제하는 지역이 앞으로 더 오를수 있는 잠재지역으로 해석돼 갭투자와 줍줍 청약(무순위청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요즘은 서울서 청약당첨만 되면 수억원씩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로또청약도 속출하고 있다.

대출을 수억원씩 받아도 집값이 폭등하는 현실이다보니, 이들에겐 대출이 부담스럽지도 않다. 대출금액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집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출규제와 종합부동산 등 세금부과만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은 지엽적인 핀셋규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이는 서울 등 수도권 도심에 주택공급을 활성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정부는 집주인들이 집을 팔수도 없게 하고, 실수요자들이 집을 살수도 없게 하고 있다. 막힌 관을 뚫어줘야 부풀었던 덩어리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래야 전월세 시장도 원활하게 돌아가고 투기를 위한 갭투자도 줄어든다.

30년 전 과천의 한 아파트를 4000만원에 대출받고 구입한 사람이 30년이 흐른 지금 10억원이상의 시세차익을 얻는다고 해서 장기보유특별공제 한도를 줄이거나(다주택자 기준) 일괄 투기꾼으로 모는 정책으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최근 홍준표 의원이 “내 재산은 35년된 아파트 하나뿐인데 이제와서 부동산부자로 몰고 있다”며 정부여당에 비판한 심정도 수긍이 간다.

요즘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지만 지난 8일 주택건설협회가 정부와 국회에 건의한 해법이 좀 더 현실적이다. 협회는 소득 상승이 서울 주택 수요를 증가시켰지만 도심에 주택공급이 극히 제한적이고, 여기에 일부 투기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도심 공급을 확대하기보다 도심 개발을 억제해 도심 집값뿐 아니라 수도권·지방 주요 도시의 집값까지 상승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협회는 도심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집값 안정의 빠른 해법이라고 강조하면서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기조를 '도심 고밀도 개발'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협회의 건의가 지금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해 온 도시지역의 용적률을 손봐야하는 등 정책수정이 필요하고 단시간에 집값을 내리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척도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더 나아가 규제일변도의 정부대책과 서울 외곽에 대한 공급 확대로는 서울 등 도심 주택 수요 증가를 충족시킬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수급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소해 결국 집값이 안정화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효과도 별로 없는 땜질식 핏센 처방만 고집하지 말고 우리보다 앞서 집값 상승을 먼저 경험한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이 용적률 인센티브 부여를 통해 도심 주택공급 문제를 해결했던 사례를 간과해선 안된다.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최인웅 데일리한국 산업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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