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침체국면 기회 활용…연구개발 비중 꾸준히 늘려

SK 자본력과 연구개발 시너지, 메모리반도체 2위 기업 도약

[편집자주]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며 해외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는 대체로 잘 사는 편이다. 선진국은 오랜 전통의 기업들과 새로운 시장에서 성과를 낸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경제성장과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비전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매출액이 많은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2018년 10월 청주에 위치한 M15 준공식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2003년 3월 26일 하이닉스반도체의 주가는 125원으로 추락했다. 당시 노무라증권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영업적자 전망치를 1조160억원으로 제시하고, 적정가치를 주당 190원으로 산출했다. 상장주식수 52억주, 100원대 '동전주'로 최고의 단타종목이란 오명을 안았던 하이닉스반도체는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2위, 초우량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대 하이닉스반도체는 반도체 불황의 태풍과 맞물린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절체절명의 상황이 여러번 이어졌다. 2002년 5월 임원수 30% 감원, 같은해 TFT-LCD 사업 매각, 2003년 임원 추가 감원, 2008년 임원 감원 및 임금 삭감 등 강도 높은 자구안이 시행됐다.

하이닉스반도체처럼 수차례 부침을 겪고 살아남은 기업도 드물다. 2001년 10월 채권금융기관협의회의 공동관리가 시작된 뒤 10년 넘게 이어진 하이닉스반도체의 새 주인찾기는 2012년 막을 내리게 된다. 하이닉스는 SK그룹에 인수되면서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꿨다.

2000년대 부실기업의 대명사였던 하이닉스반도체는 오늘날 SK그룹 계열사 중 실적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부터 2년 가까이 이어진 반도체 '슈퍼호황'으로 매출·영업이익·순이익에서 모두 사상 최대분기 실적을 기록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수차례 달성했다.

◇ 도시바 쫓는 후발주자서 글로벌 2위 메모리 기업으로

SK하이닉스의 전신은 1949년 설립된 국도건설이다. 1983년 2월 현대그룹이 국도건설을 인수하면서 현대전자산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자산업에 뛰어들었다.

SK하이닉스 경기 이천공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제공
현대전자는 1994년 휴대폰 '시티맨'을, 1997년에는 '현대 걸리버'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3월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바꾸면서 카오디오 사업, 모니터 사업 등을 분사시켰다. 반도체 사업에 주력하게 된 것이다. 이 때 독립한 자회사의 수는 35개에 이른다. 2001년 8월 하이닉스반도체는 현대그룹에서 분리가 된다.

오늘날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반도체 기업 중 하나다. 수출 비중이 98%에 달하고, 그룹 계열사 가운데 글로벌 비즈니스가 가장 많다.

SK하이닉스는 키몬다·도시바 등을 쫓는 후발주자에서 오늘날 기술 선도주자로 변모했다. 반도체 불경기에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를 한 것이 주효했다. 2000년대초 반도체 시장이 공급과잉으로 가격 하락이 지속될 때 하이닉스반도체는 연구개발 투자에 집중했다. 1990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불황기에 투자를 게을리한 일본 업체들은 파산하거나 경쟁에서 밀려났다.

하이닉스반도체는 2008년 매출의 10.8%, 2009년 매출의 9%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반도체 침체국면에서도 기술 및 제품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2009년 독일의 키몬다가, 2012년에는 일본 엘피다가 파산했다. 이는 오늘날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함께 D램 시장에서 과점체제를 형성하는 변화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필요하면 인수" 낸드플래시 원조 도시바까지

SK하이닉스의 연구개발(R&D) 투자비는 SK그룹 인수 직전인 2011년 8000억원에서 지난해 3조1885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R&D 총지출액은 3조1885억원이다. 2018년보다 10% 늘어난 규모로 역대 최대 지출액이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반도체 시장이 지난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도 최대 규모의 R&D 투자를 집행한 것이다. 지난해 500대 기업 가운데 SK하이닉스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11.8%로 500대 기업 중 가장 높았다.

4일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R&D 비중을 보면 그 산업의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며 "불황 속에서도 R&D 비중을 확대한다는 것은 시장이 나아질 것을 내다보고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이같은 성장은 SK그룹의 인수가 큰 전환점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가 필요한 대규모 자본을 대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SK그룹 차원에서는 내수 중심이란 한계에서 벗어나 글로벌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으니 상호 윈윈(Win-Win)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SK그룹은 통신시장 뿐 아니라 IT산업 전체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SK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 후인 2012년 6월 SK하이닉스는 이탈리아 '아이디어플래시'를 인수해 유럽 기술센터로 전환 설립했다. 또 미국 컨트롤러 업체 'LAMD(현 SK하이닉스 메모리 솔루션)'를 인수해 낸드 솔루션의 자체 역량을 강화했다.

나아가 2013년 8월 대만의 이노스터로부터 임베디드 멀티미디어카드(eMMC) 컨트롤러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2014년에는 미국 바이올린메모리의 PCIe 카드 사업부문을 인수하고,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분야 경쟁력을 강화했다. 뒤이어 '소프텍 벨라루스'의 펌웨어 사업부 또한 인수해 낸드플래시 컨트롤러 기술력을 높이게 됐다는 평가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2018년 SK하이닉스는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 등과 참여한 '한미일 연합'을 통해일본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발명한 원조기업으로, 삼성전자에 관련 기술을 제공하기도 했던 기업이다.

도시바는 현재 삼성전자에 이어 전세계 낸드플래시 부문 2위 기업이다. 도시바메모리 인수는 우리나라 기업에 역사적 사건이다.

◇ D램과 낸드플래시 기술 선도

오늘날 SK하이닉스는 전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등에서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128단 1Tb(테라비트) TLC(트리플레벨셀) 4D 낸드플래시 △게임시장을 겨냥한 1x(10나노 후반대) 4Gb(기가비트) GDDR6 DDP △플래그십폰 및 오토모티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1y(10나노 중반대) 8Gb LPDDR4E(저전력 DDR) 등을 개발 중이다.

과거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PC 수요를 채우기 위한 일부 제품의 생산능력에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모바일·데이터센터·오토모티브 등 여러 분야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경쟁력이 필요해졌다.

EUV(극자외선) 노광 공정을 비롯해 미세화 경쟁에서 승기를 잡는 것도 중요하다.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에도 수익을 방어할 수 있도록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과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0나노급 2세대 모바일 D램 판매 확대로 수익성을 개선해나간다는 방침이다. 10나노급 3세대 제품도 하반기 양산에 돌입하는 한편 GDDR6와 HBM2E 시장에도 적극 대응한다. 낸드플래시는 96단 제품의 비중 확대와 함께 2분기 중에 128단 제품의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후발주자와의 기술 격차를 통해 낸드플래시 사업은 조만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3일 2020년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4분기에는 낸드플래시 사업이 '브레이크이븐(손익분기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정문. 사진=SK하이닉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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