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국산화 시작으로 140여개국 해외법인 갖춘 글로벌 기업 발돋움

美월풀 영업이익 넘어 글로벌 1위 가전기업 성장…B2B 사업 고도화는 숙제

1959년 LG전자가 출시한 국내 최초의 라디오 'A-501'. 사진=LG전자 제공
[편집자주]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며 해외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는 대체로 잘 사는 편이다. 선진국은 오랜 전통의 기업들과 새로운 시장에서 성과를 낸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경제성장과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비전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매출액이 많은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기술이 없으면 외국가서 배워오고, 그래도 안되면 외국 기술자 초빙하면 될거 아니오"

1957년 당시 락희화학(LG화학) 구인회 사장이 한 직원에게 던진 이 말은 이듬해 3월 금성사(LG전자) 설립의 시작이 됐다. LG전자의 역사는 우리나라 전자산업 60여년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LG전자(당시 금성사)가 설립된 1958년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전자제품은 외제 라디오와 소수의 수입 TV가 전부였다.

LG전자는 1959년 11월 국산 라디오인 'A-501'을 출시했다. 당시 고가였던 외국산 라디오에서 벗어나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 라디오는 1962년부터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기술 장벽이 높은 전자산업에서 LG전자를 글로벌 가전명가로 키운 것은 오랜 집념의 산물이다. 국산 라디오 개발에 자신감을 얻은 LG전자는 1960년 3월 국내 최초의 선풍기를, 1961년 7월에는 국내 최초로 자동전화기를 각각 생산했다. 이어 1964년 4월에는 국내 최초로 자동 전화교환기, 1965년 4월 냉장고, 1966년 8월 흑백TV, 1969년 2월에는 세탁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사진=LG그룹 제공
해외사업에도 일찍이 눈떴다. 1968년 미국 뉴욕에 지사를 설립해 전세계 전자산업의 흐름을 읽어나갔다. 10년뒤인 1978년 LG전자는 국내 가전업계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국내 전자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한 셈이다.

올해로 창립 62주년을 맞은 지금의 LG전자는 140여개국에 해외법인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창업 당시 300명으로 출발한 임직원 수는 현재 해외법인과 해외지사를 합쳐 7만4000여명에 이른다.

◇ 기술 선도 퍼스트무버로…美 월풀 영업이익 뛰어넘어

선진기업에 대한 추격형 사업 모델로 시작한 LG전자는 오늘날 시장을 이끄는 퍼스트무버(시장 선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백색가전 부문에서 세계의 가전업체와 견줘 확실한 우위를 확보했다. 특히 1998년 세계 최초로 세탁기에 상용화한 DD(Direct Drive) 모터를 시작으로 세탁기 기술력에선 전세계로부터 '장인정신 DNA'를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다.

LG전자의 TV 기술은 과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1966년 국내에서 흑백TV를 최초로 생산했던 LG전자는 현재 차세대 기술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전세계 TV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올해 LG전자 OLED TV는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8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CES에서 LG전자 OLED TV는 3개 부문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 최초 롤러블 디자인, 벽에 밀착되는 월페이퍼 디자인 등이 오늘날 LG전자의 혁신 기술이 담긴 제품들이다.

1966년 LG전자가 개발한 국내 최초의 흑백TV 'VD-191'과 1968년 출시된 LG전자의 국내 최초 에어컨 'GA-111'. 사진=LG전자 제공
세탁기, 냉장고 등 LG전자의 생활가전 사업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영업이익에서 100년 역사를 가진 세계 1위 미국 기업 월풀을 뛰어넘었다. 매출액 역시 뒤를 바짝 쫓았다.

생활가전 부문인 H&A(홈어플라이언스앤에어솔루션) 사업본부 영업이익은 2019년 1조9962억원을 기록해 2년 전 1조4000억원, 1년 전 1조5000억원에 이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전자제품에 대한 전세계 기술 평준화와 중국기업의 저가공세 속 선두주자 입지를 더 확고히 했다.

스타일러, 건조기 등 신(新)가전과 함께 프리미엄 가전 중심의 전략이 주효했다. LG전자의 디자인 역량 또한 프리미엄 가전에 접목돼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가전시장은 프리미엄 제품과 저가 제품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LG전자는 고수익 제품에 집중한 결과 시장에서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 스마트폰은 고전...올림픽 연기와 코로나 위기는 권봉석號 해결과제

하지만 가전사업과 성격이 다른 스마트폰 사업의 경우 LG전자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 1분기 생활가전 사업은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스마트폰 사업은 20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LG전자의 전사 영업이익을 매년 끌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LG전자는 지난해 2분기 평택 스마트폰 공장의 베트남 이전으로 원가절감을 꾀했지만 이마저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4분기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는 332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올 1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듀얼 스크린을 적용한 'G8X 씽큐' 등으로 북미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판매량도 저조한 상황이다. ODM(제조업자 개발생산)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 또한 의미있는 사업구조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 심리 위축, 전세계 공장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사업 적자폭을 최소화하는 것이 과제다. TV 사업 역시 도쿄올림픽 연기로 난관에 봉착했다.

일각에선 올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LG전자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2분기 이후엔 매분기 수익성 상승을 견인하던 신가전과 초프리미엄 제품 또한 악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피해는 가시화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3월 한정된 기간이긴 했지만 인도 노이다와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 위치한 공장을 가동 중단했다. 인도에서 코로나19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노이다 공장과 푸네 공장은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푸네 공장에서는 스마트폰도 일부 생산하고 있다.

특히 도쿄올림픽 연기가 TV 사업에 직격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올림픽은 TV 시장의 최대 특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도쿄올림픽 중계를 맡은 일본 통신사 NHK가 세계 최초로 8K 영상 생중계를 계획하면서 올해 8K TV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었다. 이미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인 유로 2020은 1년 연기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TV 제조업체에 주어지는 호재"라며 "도쿄올림픽 연기는 8K TV 판매에 악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LG전자의 8K OLED TV. 사진=LG전자 제공
6년여간의 조성진 부회장 시대가 끝나고 권봉석 사장이 경영일선에 나선 만큼 어떤 방식으로 구원투수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전자업계는 올해 코로나19 확산, 산유국들의 증산 경쟁, 미·중 무역분쟁 등 악재가 산적해있다.

자동차 전장, 태양광 사업 진전이 더디다는 점 또한 '권봉석호'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장기적으로 B2C(소비자간 거래) 비중을 줄이고 B2B(기업과기업간 거래) 비중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보고있다. 가전시장은 중국 기업 등 후발주자의 추격 속도가 빠르고, 시장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LG전자의 전장사업 매출은 △2017년 3조3386억원 △2018년 4조2876억원 △2019년 5조4654억원으로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적자는 각각 1069억원, 1198억원, 1949억원으로 불어나고 있다. 생활가전 사업은 흑자를 내지만 스마트폰 사업과 전장사업 적자가 전사 이익을 깎아먹는 구조다.

권 사장은 LG전자 사령탑에 오르자마자 경영능력이 본격 시험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권 사장은 그룹 내에서 '전략통'으로 평가받던 인물이다. 기술 전문가 출신의 조성진 부회장과 출발점이 다른 만큼 다른 형태의 리더십으로 LG전자를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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