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에는 패러다임이 있을까? 불변의 패러다임이란 없다. 현대 실학(實學)인 경영학도 실천성과 경험의 법칙을 따른다. 경영의 세계에서는 지금의 해법도 시대가 변하면 더 이상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학자나 기업가는 늘 환경의 변화를 주목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고 이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경영학은 사람을 관리하는 문제로 출발했다. 학문을 태동시킨 사람은 학자가 아닌 현장감독자 테일러(F. Taylor)였다. 생산성 향상은 그때에도 회사의 관심사였다. 그는 주먹구구식이던 철강공장의 작업방법과 임금체계를 바꿔 당시 산업계에 만연해 있던 태업과 불신을 해소했다. 표준작업량과 근로시간을 정하고 과업관리를 위한 직능별 조직과 성과급제도를 도입한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이 1911년 책으로 정리되면서 지금의 주류인 미국식 경영학이 탄생했다.

노사 양쪽을 만족시킨 임금제도의 효과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경제적 보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킨 과학적 기법은 인간성 상실이라는 문제를 드러냈다. 컨베이어벨트 조립라인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시스템인 포디즘에 대한 저항도 뒤따랐다.

성과에 비례해 임금을 지불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도 생산성은 왜 그만큼 뒤따르지 않을까? 하버드대학의 메이요(E. Mayo) 교수그룹은 5년간 산업현장에서 작업환경을 바꿔가며 다양한 실험을 했다. 사람은 경제적 유인뿐 아니라 감성이 자극될 때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회적·심리적 욕구를 중시한 인간관계론(Human Relations)의 등장했다. 1930년부터 인간관계기법들이 산업현장에서 확산됐다.

경영학 초기의 두 가지 흐름에는 근로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있다. 인간은 본래 게을러서 일하기를 싫어할까? 아니면 내재된 성취욕구 때문에 스스로 일하기를 좋아할까? 물질적 보상을 통해 근로의욕을 유발하는 과학적 관리법의 이성적 인간관이 성악설이라면, 근로자의 성취욕을 북돋아 일의 동기를 촉진하는 인간관계론의 감성적 인간관은 성선설이다. 모두 근로의욕의 원천을 규명한 결과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두 가지 해법 간의 균형은 지금도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경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군사작전을 위해 개발된 인력과 물자수송 전략과 전술기법들이 종전 이후 산업현장으로 이전되었다. 공장뿐 아니라 금융, 유통 등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신속·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해 계량적 해법이 도입되었다.

1960년대 들어 학문분야로 정착되면서 경영과학(management Science)이 등장했다. 과학적 기법이 더해지고 기업 내·외의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경영의 문제는 인문과 사회, 과학의 영역에서 해법을 구하는 학제적 방법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1990년대 시작된 인터넷의 확산은 경영패러다임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산업계는 로봇과 전자상거래로 생산과 유통의 메커니즘을 단순화시켜 변화에 순응했다. IT의 진화가 계속되면서 경영환경의 변화는 더 빨라졌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팁 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AI)시대가 마침내 열렸다. 인간의 판단력을 뛰어넘는 AI의 확장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작년 12월 우리 정부는 AI 국가전략을 마련했다. 강점 있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으로 기술·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사람 중심의 AI 실현을 위한 추진과제들을 선정했다. 새로운 환경에 대비한 노력이다. 그러나 먼저 풀어야 할 일이 있다. 한층 복잡한 경영환경에서 창발과 혁신을 가로막는 종전의 규칙을 바꾸고 규제부터 없애는 일이다.

노동시간의 상한까지 낮춘 주당 52시간 근무제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환경이 변하면 경영자는 생존을 모색하고 조직부터 챙긴다. 산업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다. 제4차 산업혁명의 진행될수록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저절로 줄어든다.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생존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알아서 할 일이다. 드러커(P. F. Drucker)의 예고가 들어맞았다. 그는 저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에서 늦어도 2020년까지 지식이 자본과 노동을 대체하는 지식사회의 탄생을 예견했다. 지금 곳곳에서 AI가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프로필
1957년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한국항공대 항공관리학과를 졸업했다. 그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거쳐 미국 메사추세츠 주립대학(UMass) 객원교수와 한국항공경영학회 초대회장, 동중앙아시아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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