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부 주현태 기자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때로는 눈에 띄는 대형 철조물 보다 안 보이는 물 한 방울이 운전자를 위험에 빠뜨린다. 특히 한파가 몰아치는 12월 한겨울이라면 더욱 그렇다. 얇은 얼음층이 타이어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자극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블랙아이스(Black Ice)가 '도로 위의 암살자’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 주말 오전 동료 기자와 함께 취재일정을 마무리하고 기분좋게 차를 몰고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시 은평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자는 고갯길을 넘자마자 두 대의 차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는 것을 목격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차가 미끄러지면서 10m 이상 '끼익' 소리를 내며 밀리면서 가까스로 멈춰 섰다. 함께 차를 탄 동료가 있어 서행했으니 망정이지 과속을 했더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블랙아이스는 멀리서 보면 투명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어붙은 빙판길이므로 운전자가 맨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워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국토부·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블랙아이스 도로는 일반 도로보다는 14배, 눈길과 비교하면 6배 정도 더 미끄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철 대형 사고의 복병인 셈이다. 교통사고 치사율도 일반 교통사고 보다 1.5배 높다.

경찰청이 조사한 최근 5년간 겨울철 눈길 사고 현황에 따르면 블랙아이스 사고 사망자는 706명으로 일반 눈길 사고 사망자 186명 보다 사망률이 4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랙아이스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운전을 잘한다고 해서 블랙아이스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직접 아찔한 체험을 하고 나니 블랙아이스만 떠올려도 이제는 등에 식은 땀이 난다.

국가배상법 제5조는 도로 등 영조물(공공시설)의 설치 또는 관리 하자가 발생해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 도로관리 책임자가 배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당시 블랙아이스로 인해 추돌사고 등이 났다고 가정할 경우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결빙의 직접적 원인이 도로관리자의 책임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다. 결국 블랙아이스로 인해 사고를 당해도 파손된 차량 비용이나 치료비 등을 운전자 스스로 떠안을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다만 블랙아이스로 인한 차량 사고의 원인을 운전자의 부주의로만 몰아가는 것은 옳은 처방이 아니라고 본다. 현행법상 빙판길에서 제한 속도를 50% 감속 의무화해 ‘무조건 서행’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런 문구만으로 블랙아이스로 인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속 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서행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안전 불감증’을 야기하는 역효과를 낼수도 있다.

시속 30km로 서행하던 차도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는 것이 블랙아이스 변수다. 특히 블랙아이스가 일어난 ‘장소’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주 결빙되는 도로나 고갯길 등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도로 결빙 위험’같은 표지판을 통해서라도 운전자에게 사전경고를 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블랙아이스로 인해 지난 14일 상주·영천고속도로 상행선에서 28대, 그리고 하행선에서 22대 차량이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터지면서 7명이 숨지고 32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바 있다. 단일 교통사고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피해 규모가 컸다.

문제는 이날 발생한 두 곳의 교통사고 지점이 바로 교량 구간으로, 도로 위아래에서 바람이 불어 적은 강수량으로도 살얼음이 발생하기 쉬운 장소였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도로관리자가 지탄의 대상이 되어도 할말이 없게 된 셈이다.

정부는 운전자에게 블랙아이스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예고하고 강도높게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최근 겨울철 도로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블랙아이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결빙 취약지점을 확대하고 사전 예보 및 열선 등 시설물 설치 확대 등 종합대책을 강구중이라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상습결빙지대 열선 설치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왜 대형사고가 터진 이후에야 허겁지겁 내놓는지 묻고 싶다. "소 잃기 전에 제발 외양간 좀 고쳐달라"고 정부 당국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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