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산업2부 기자.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사실상 확실시되는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성패를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득실을 따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국내 항공 산업 발전을 소망하는 이들에게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기점으로 침체에 빠진 항공 산업이 도약할 수 있을지 여부가 더 중요할 것이다. 국내 항공 산업 발전을 위한 관점에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국적 2위 대형항공사(FSC) 아시아나항공이 실적 악화에 허덕이다 매각된 것은 경영 능력 부족 등 내부 문제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적 한계 탓이 크다. 아시아나항공은 중장거리 노선에서 대한항공과의 격차가 벌어진 와중에, 우후죽순으로 탄생한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저가 공세마저 겹치면서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항공업계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도 대한항공을 이길 수 없고 LCC들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는 시장 구조를 감안해, SK, GS 등 유력 대기업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아시아나항공 실적 악화의 주된 원인이 국내 항공 시장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의 항공 산업 정책 실패가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항공업계 위기를 초래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국내 항공 시장의 규모와 성장성 등을 감안하지 않은 무분별한 신규 LCC 허가가 항공업계의 출혈 경쟁을 부추겼고, 국적 2위 항공사가 매각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불매 운동에 따른 항공업계 위기 상황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항공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지방공항 중심의 수요 정체, 공급 과잉 등의 문제가 꾸준히 거론돼왔다. 항공업계에서 최근 위기 상황을 두고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항공업계의 수요 정체와 공급 과잉을 모를 리 없는 국토교통부는 올해 3월에만 3개의 신규 LCC에 국제항공운송면허를 발급해줬다. 국토부는 항공업계의 출혈 경쟁 호소에도 경쟁을 통한 소비자 편익 증가를 내세워 신규 LCC의 시장 진출을 허용했다. 신규 LCC의 시장 진출이 국적 항공사간 경쟁을 유도해 결과적으로 소비자 편익이 높아질 것이라는 논리다.

국토부의 논리는 국적 항공사들의 경쟁에만 국한하면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으나, 전 세계 항공 시장으로 경쟁 범위를 확대하면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주장이다. 미국, 중국 등이 자국 항공사 보호를 위해 각종 지원 정책을 펴고 중동 항공사들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불법 보조금으로 항공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 자국 항공사간의 경쟁을 부추기겠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항공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국적 항공사 보호를 위한 지원 정책에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히려 징벌적 과징금 부과 등 엄격한 잣대로 국적 항공사를 규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약 1년 3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진에어 대한 국토부 제재가 대표적이다. 국토부는 퇴사한 오너 일가의 ‘갑질’을 빌미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에어의 신규 사업을 제한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과의 약속” 등을 이유로 제재를 풀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진에어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진에어 직원들의 고통과 불안은 폭증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국내 항공 산업 재편의 신호탄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어 보인다. 국내 항공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아시아나항공 매각 이후 자력 생존의 경쟁력을 갖춘 국적 항공사들 위주로 산업이 재편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만 항공 산업 재편이 국내 항공 산업 발전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국적 항공사들이 각종 지원 정책과 보조금을 등에 업고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글로벌 항공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국적 항공사들이 글로벌 항공사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은 이들 기업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양사를 통합해 국가의 지원 아래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하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를 통해 우리 조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항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항공 산업 보호 정책이 그만큼 더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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