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본격적인 양자 컴퓨터 시대가 개막되면
모든 영역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한차원 높은 세계를 구현해낼 것"

이준정 과학기술 칼럼니스트·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양자과학은 원자보다 미세한 세계를 해설하는 과학으로 인간이 직관적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 즉, 위치의 불확정성, 에너지의 중첩성, 입자간 상호 얽힘으로 설명된다. 이 때문에 천재 중의 천재로 꼽히는 아인슈타인 박사 마저 쉽게 인정하지 못했던 이론이 바로 양자과학이다.

그는 양자과학이 마법과 같아 합리적 판단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만약 양자과학이 맞는다면, 과학은 종지부를 찍은 셈”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양자과학의 속성을 이젠 현실로 받아들인다. 더욱이 최근엔 양자과학 대신 '양자공학'이라는 용어까지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양자현상을 공학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는 지난 2001년 "양자공학은 21세기의 핵심기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컴퓨터는 정보를 1 또는 0인 비트(Bit)로 표현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 사이에 중첩돼 존재하는 큐비트(Qbit)를 활용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잠재적 결과들로 정보를 처리한다. 양자컴퓨터는 얽힘 현상으로 인해 큐비트가 추가될 때마다 성능이 두 배가 되므로 기존기술로는 불가능한 많은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해진다.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를 증가시키면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양자컴퓨터 칩이 극초저온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초전도현상을 이용하므로 온도나 진동 등 주변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만, 작동 도중에 양자거동이 붕괴돼 컴퓨터가 멈추거나 계산의 오류가 발생하기 매우 쉽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큐비트를 증가시켜 신뢰성이 높은 양자컴퓨터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양자우위’란 양자컴퓨터가 기존의 슈퍼컴퓨터를 대체할 만큼 계산능, 활용성, 경제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양자 이점’이란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더 나은 결과를 더 값싸게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느 경우이든 양자컴퓨팅이 기존의 슈퍼컴퓨터가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풀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예를 들면 지구 전체 표면의 실시간 비디오를 기존 저장장치에서 운용하는 것은 무리지만 양자컴퓨터에서는 가능하다. 기존 컴퓨터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규모의 복잡한 분자와 물질의 거동을 시뮬레이션 하는 프로그래밍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질병에 대응한 신약을 개발할 경우도 시험관에서 수천 수백만 종의 화합물들을 모두 실험해 보지 않고 컴퓨터로 화합물 조성배합을 도출해 바로 제조해 보는 식의 접근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 원소들을 배합한 합금소재를 개발할 때 얻어질 원자들의 단위 격자구조나 전자기적 성질을 예측할 수도 있다. 동시에 오늘날 컴퓨팅 능력만으로는 근접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이나 사이버 보안기술도 중요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큐비트가 100개 정도 되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하드드라이브의 데이터 저장용량을 가볍게 능가하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양자 컴퓨터 시대가 개막되면 모든 영역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한차원 높은 세계를 구현해낼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에 비해 ‘양자우위’를 확보하려면 얼마나 많은 큐비트가 필요한지 여전히 불확실하다. 얼마나 큰 규모로 안정된 양자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하다. 구글은 최근에 53-큐비트 시카모어(Sycamore) 칩으로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우위’시대를 열게 됐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IBM은 아직은 양자컴퓨터가 우월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으며 구글의 발표가 과장되어 있다고 즉각 반박 보고서를 냈다.

또한 양자컴퓨터 전문가인 영국의 써섹스(Sussex) 대학 윈프리드 헨싱거 교수는 "구글이 달성한 업적은 학문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문제"라며, "실용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양자 컴퓨터의 우월성이 입증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양자컴퓨터는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구글의 양자컴퓨터를 실제문제에 적용하기까진 아직 먼 이야기'라는 것이 헨싱거교수의 품평인 셈이다.

한편 중국과학기술대학의 지안 웨이 팬(Jian-Wei Pan)은 ‘양자 우월성을 주장하기보다 양자컴퓨팅을 실용화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에둘러 평가했다.

양자 기술에 대한 패권전쟁은 인공지능기술만큼이나 미국과 중국의 국가 간 자존심 대결사항이 되어 있다. 양자 기술에 관련된 특허출원 동향을 살펴본 특허분석회사 Patinformatics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중국(492건)이 미국(248건), 일본(30건), 한국(45건), 유럽연합(31건)에 비해 월등히 많다. 하지만 미국은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중심으로 양자 컴퓨터 관련 특허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2016년에 도입된 제13차 5개년계획에서 양자통신과 컴퓨팅을 위한 메가 프로젝트를 국가전략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2020년엔 허베이에 세계최대 양자컴퓨터 연구시설인 국립양자정보과학연구소를 개장할 예정이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 거대기업들도 양자기술개발 연구소를 설립했다. 중국은 양자과학을 실용화 시키는 양자공학적 ‘양자혁명’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이나 서방기술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생명공학, 소재기술, 기타 전략적 기술들을 크게 도약시키고자 한다. 중국은 이미 양자암호와 통신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양자암호, 양자통신, 양자컴퓨팅의 기초 연구를 해왔으며, 양자 레이더, 센싱, 이미징, 양자계측 및 탐색 등에서 엄청난 정밀도와 감도를 실현시켰다는 보고서들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2016년 8월엔 세계 최초로 양자인공위성 미셔스(Micius 또는Mozi, 墨子)를 띄워 우주에서의 양자통신기술을 연구해 오고 있다. 중국이 주력하는 영역은 중요한 군사기술 대상이란 점에서 주목받는다. 중국은 양자공학을 통해 미국의 군사력을 뛰어넘는 미래기술을 획득한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양자공학이 기술의 우월성을 단기간 내에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마라톤 같이 거의 무제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란 점에서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기도 하다.

미국은 중국이 위성양자통신기술을 성공시킨 것에 자극받아 2017년부터 의회를 중심으로 양자정보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지원방안을 논의했고, 2018년 12월에 미국양자기반기술들의 상용화 기술개발을 가속시키는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법안을 통과시켰다.

민간 기업들의 개별적 노력과 별개로 이 법안은 정부의 역할을 규정한 것이다. 주요 골자로는 양자정보기술발전을 위한 기초연구에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사업, 양자산업의 발전을 위한 투자, 양자기술개발을 위한 기반시설투자, 국가안보 및 경제성장을 위한 양자정보기술개발, 국제간 협력사업 지원 등이다.

대용량 양자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양자컴퓨팅 연구는 국가안보에 명백하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설령 제대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를 만들 확률이 낮더라도 양자 기술의 발전은 급속히 진행될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모든 국가는 양자컴퓨팅의 미래역량을 확보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

현재도 비대칭암호화에 대한 위협은 명백하며 양자암호화로의 기술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미래기술의 선점과 리더십은 국가경제발전과 안보역량에 밀접하므로 많은 국가들이 양자정보통신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양자컴퓨팅 기술개발프로젝트를 가동하는 국가들을 연구투자자금 규모로 나열해 보면 미국과 중국에 이어 독일, 영국, 캐나다, 호주, 스위스, 일본, 프랑스, 싱가포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러시아, 네덜란드,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한국, 핀란드, 폴란드 등이 상위권에 자리매김돼 있다.

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부터 향후 5년 간 총 4454억 원을 투자해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등 핵심원천기술개발과 양자컴퓨팅 신 아키텍처, 양자알고리즘, 기반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는 ‘양자컴퓨팅 기술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1년에 100억원도 채 안 되는 자금으로 커다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양자컴퓨터는 먼 미래에나 가능한 기술이라는 일반적 평가로 인해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 것이 국내의 현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민간 기업들이 발 빠르게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팅 기술개발쪽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는 양자컴퓨팅이 21세기 기술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양자 컴퓨팅이 가져올 놀라운 세상이 어떻게 펼쳐지고 전개될지 주목된다.

■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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