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적인 회의 진행·욕설 등 수 차례 논란…‘유종의 미’ 거둬야

정치사회부 김동용 기자
[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올해 국정감사를 취재하던 중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격조있는 토론’의 산실이 돼야 할 국회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욕설이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발원지는 자유한국당 소속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을 대상으로 한 법사위 국감에서 여상규 위원장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웃기고 앉아 있네. 진짜 X신 같은게’라는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회의장 내 여야 법사위원들은 미처 듣지 못했지만, 위원장석 마이크가 켜져있던 탓에 해당 발언은 실시간 유튜브 방송을 통해 생중계로 공개되고 말았다.

이후 영상을 확인한 민주당 소속 법사위 간사인 송기헌 의원이 문제제기를 하자, 여 위원장은 처음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일단 부인했지만, 송 의원이 직접 증거 영상을 보여주자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욕설도 문제지만, 송 의원의 거듭된 요청에 마지 못해 하게 된 여 위원장의 사과는 더욱 가관이었다.

‘심한 발언·표현은 잘못됐지만,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나온 말’이었으며 ‘다른 의원들의 발언 시간을 방해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기자의 눈에는 형식적으로 사과는 했지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변명이 핵심이었고, 누구를 겨냥했는지 조차 알기 어려운, 주어도 없는 ‘남의 탓’으로 사과를 마무리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여 위원장은 지난 17일에는 자신을 포함한 한국당 의원 60여명이 피고발된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 외압을 행사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이날 대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패스트트랙 사건 고소·고발은 순수 정치 문제가 사법으로 둔갑돼있다. 정치가 사법에 개입하면 안 되듯 사법도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강변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검찰의 ‘신속한 패스트트랙 고소·고발 사건 수사’를 촉구한 직후 이어진 발언이었다.

여 위원장의 발언이 끝난 뒤, 표 의원이 “신상 발언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여 위원장은 “(내가) 신상 발언(을 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자가 누군데!”라며 갑자기 역성을 냈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 조차 여 위원장이 ‘화를 낼만한 이유'라고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장내가 잠시 술렁거렸다.

결국 표 의원의 신상 발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표 의원의 의견’이 여 위원장의 견해만 담긴 발언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앞서 다른 법사위 회의에서도 여당 소속 위원들의 발언이 끝난 뒤, 해당 주제의 결론을 본인의 주관으로 정리해버리는 여 위원장의 모습을 적지 않게 보아왔기에, 흡사 ‘독재자를 연상케 하는’ 진행 방식이 더는 놀랍지도 않았다.

과거에도 여 위원장의 고압적인 회의 진행 방식을 놓고 수 차례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9월에는 이은해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갈등을 빚었다.

여 위원장이 여당 의원의 질의와 발언권 신청을 잇따라 막자, 박 의원이 “국회의원의 발언을 너무 막는다. 당신이 판사야”라고 항의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이에 여 위원장은 흥분한 모습으로 “어디서 큰 소리야. 당신이라니”라고 받아친 뒤, 회의 분위기가 격해졌다는 이유로 정회를 선언한뒤 자리를 떴다.

토론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각자의 의견을 얘기하고 상대의 의견을 반박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밝혀 나가는 형식’이라고 표현돼 있다. 토론을 위해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사회자는 토론을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하고, 토론자의 발언 시간이나 순서 등도 공정하게 배분해 운용해야 한다.

국회법 제49조 1항에 따르면 상임위원장은 회의 진행과 회의장 질서 유지권, 개회 일시를 정할 권한을 갖는다. 회의 안건이나 위원들의 발언 시간·횟수도 정한다. ‘토론의 사회자’인 셈이다.

그간 법사위 회의 진행 과정에서 여상규 위원장의 고압적인 태도가 원인이 돼 발생했던 논란들을 떠올려 보면, 과연 여 위원장이 올바른 토론 사회자의 조건에 부합하는 상임위원장인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격렬한 토론은 건강한 정치의 초석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산실’로 불리는 영국 의회(하원)에서도 발언자의 말이 안 들릴 정도로 심한 고성과 야유가 오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질 정도의 격한 토론이 계속되거나, 정상적인 회의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토론자들의 감정이 과열될 경우에는 적절한 중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토론 사회자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특정 주제에 대해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거나, 토론자에게 고성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는 등의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여 위원장이 법사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후반기 20대 국회 임기도 내년 5월이면 종료된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지만, 여 위원장이 '품격있는 사회자’로 거듭 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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