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산업2부 기자.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올해 국정감사에 석유화학 기업 대표들이 증인으로 대거 출석했으나 관련 질의는 2차례에 그쳐, 사실상 기업인 망신주기 국감, ‘맹탕 국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감 출석 당일 일부 기업의 증인이 최고책임자에서 실무책임자로 변경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최고책임자 부재 때마다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던 기업이 정작 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의 답변자로 실무책임자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의 산업통상자원부 국감에는 문동준 금호석유화학 사장,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사장, 김기태 GS칼텍스 지속경영실장(사장), 이구영 한화케미칼 대표이사, 손옥동 LG화학 석유화학 사업본부장(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지난 4월 불거진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측정치 조작 문제로 국감에 불려 나왔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와 공모해 2015년부터 올해까지 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관련자 4명이 구속되고 31명이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더욱이 롯데케미칼, LG화학 등은 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측정치 조작 문제가 불거진 이후인 지난 5월에도 대기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나 거센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실제 국감 현장에서 이들 대표를 향한 의원들의 질의는 2차례에 불과했다. 전남 여수가 지역구인 이용주 의원(무소속)만 약 7분간 질의했을 뿐, 사실상 제대로 된 질의와 답변은 없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더불어민주당의 백재현 의원은 손옥동 사장에게 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측정치 조작이 아닌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이에 손 사장은 “배터리는 제 소관 사항이 아니라 잘 모른다”며 진땀을 뺐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감 당일에 일부 기업의 증인이 변경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당초 산자위는 김창범 한화케미칼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을 증인 명단에 포함시켰으나, 증인 출석 당일 오전에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김기태 사장, 이구영 대표, 손옥동 사장을 대신 부르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산자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기선 의원은 “증인을 의결한 이후에 감사 당일 증인을 철회하고 다른 분이 증인석에 나서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국회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고 꼬집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은 총수 구속 등 최고책임자 부재 때마다 “의사 결정 마비”를 슬며시 내세운다. 그런데 정작 최고책임자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최고책임자 부재 때는 최고책임자의 최종 결정권을 강조하지만, 정작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면 실무책임자를 ‘총알받이’로 세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해외 출장을 이유로 국감에 출석하지 못한다던 허세홍 사장이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혼자 골프를 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재벌 봐주기 국감”이라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맹탕 국감과 증인 바꿔치기가 수년간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한 초유의 사태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치부해버릴 것 같아 우려가 된다. 국감이 연례행사로 전락한 시대라지만,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국정 전반을 감사하는 국감의 의미마저 퇴색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둘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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