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우경화, 과거사, 혐한론 등 3가지 여론을 극복해야"

"갈등해결 주체로 대통령 꼽지만, 한일 양국 지도자에 대한 상대국민의 불신 커"

문재인-아베 톱다운 방식 해법 찾아야…아베 총리,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염두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리 국민들이 일본을 보는 시각이다. 한국과 일본은 숙명적 원한 관계를 품고 사는 관계다. 아무리 양국 사이에 좋은 일이 있더라도 ‘독도’, ‘위안부’, ‘강제 징용’ 등 과거사를 언급하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36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당한 우리 국민들의 입장에서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비단 지난 세기 초 국권을 강탈당한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약 500여 년 전에는 왜구를 선두로 세워 우리 국토를 유린하고 수많은 무고한 조선인들을 섬나라 외딴 곳으로 끌고 갔던 아픈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인이 아니라면 이런 감정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한국 대표팀이 일본과 국가 대항전을 펼칠 때면 우리 국민들은 다른 국가와의 시합에서 보기 힘든 열정으로 한국 팀을 응원한다. 반드시 일본을 격파해주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한국인의 공통적 정서로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의 대다수가 해방이후 태어난 세대지만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본과는 영원히 친구가 되기 어려운 일일까. 지난해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을 시비로 일본 정부는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인 반도체에 꼭 필요한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표면적으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보복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양국 정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진 탓도 적지 않을듯 싶다.

역대 최악의 관계로 설명되는 최근의 한일 관계 악화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양국 정상의 외형적 관계 또한 최악인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일보와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공동 여론조사는 양국 정상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얼마나 악화되어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리서치가 한국일보의 의뢰를 받아 지난 5월 24~26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2.2% 자세한 사항은 보도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일본 아베 총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물어보았다.

우리 국민들은 아베 총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10명 중 9명이 넘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5.1%에 불과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더라도 아베 총리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는 그야말로 바닥 상태다. 일본 국민들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 또한 크게 차이가 아지 않는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같은 조사방법으로 일본 국민 1028명에게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는지’ 물어보았다.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넘는 75%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일본 국민들의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고작 11%에 불과했다. 한국인들의 아베에 대한 신뢰도에 비해선 그나마 높은 편이다.

한일 관계에서 양국 정상의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왜냐하면 아베 총리와 문 대통령 모두 고정 지지층을 가지고 있고 국가 최고 지도자의 감정과 판단에 영향받기 때문이다. 지난달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은 회담조차 갖지 못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의 두 정상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지만 그 뿐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과거사를 안고 있는 두 나라 정상은 불편한 심기만 잔뜩 서로에게 보이고 말았다. 정치적인 갈등은 둘째 치고 일본의 경제적 보복은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고통이다. 수출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인 부담이 된다. 삼성과 하이닉스 등 반도체 생산 회사들은 공정에 필요한 일본의 소재 의존도가 매우 높다.

단숨에 거래 선을 바꾼다거나 일본산 소재 높은 품질 수준을 다른 소재로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무역협회에서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반도체 소재 수입 현황을 파악한 자료를 보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간단치 않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결정한 리지스트는 우리나라가 91.9%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전량 의존이나 다름없다.

다른 중요한 반도체 소재인 플루오드폴리이미드는 리지스트보다 많은 93.7%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한다. 그나마 3대 규제 소재 중 에칭가스는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이 절반을 넘지 않는다.

이들 핵심 소재를 빠른 시일내 대체하지 못하고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장기화되는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도 훨씬 막대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의 답변으로 한일 관계 급랭에 따른 대응 조치 차원에서 추경안에 1200억원을 늘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총리가 그런 요청을 국회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 사드 배치 관련 갈등을 빚었을 때 중국이 본격적인 경제 보복을 단행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입은 피해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심각했다. 대기업이 흔들리는 정도라면 중소 기업과 협력 업체의 상황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우리의 반도체 생산이 지체되면 한국산 반도체를 수입해 제품을 완성하는 일본 업체까지 피해가 미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한국 때리기’에 몰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베 총리와 문 대통령의 관계는 왜 이렇게 어긋나 있는 것일까.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관계, 한일 관계 경색은 어디에 이유가 있는 것일까.

최악의 한일 관계가 되어 버린 첫 번째 이유는 ‘지지율’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2006년에서 2007년까지 만 1년 동안 수상을 역임했었다. 아베는 중의원 선거에서 내리 9번이나 당선된 정치 9단이다. 뼈대있는 정치인 집안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정치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조부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 내각에 몸담았던 기시 노부스케다. 그는 전후 일본 총리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는 일본의 외무대신을 지낸 아베 신타로다. 남동생 역시 정치인이다. 부인은 제과 제빵으로 잔뼈가 굵은 굴지의 기업인 모리나가 제과 대표의 딸이다. 이런 이력을 가진 아베 총리가 막무가내로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한 것이 아니다.

최장수 일본 총리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전쟁할 수 국가로 헌법 개정을 하는 것은 필생의 꿈이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민 여론이 중요하고 의회 역시 집권 여당이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미국과 비교하면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 선거는 헌법 개정을 위한 다음 관문이 된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다.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은 정치의 불문율이다.

중요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40%대가 위협받는 처지였다. 일본 국영방송인 NHK가 지난 2월부터 아베 총리의 지지율을 조사한 추이를 살펴보면 48%까지 상승했던 아베 내각 지지율은 선거 4주를 앞두고 돌연 42%로 주저앉았다. 30%대로 내려온다면 오는 참의원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하기 어렵다. G20 오사카 정상회의 직후 일본은 ‘한국 때리기’를 시도했다. 선거를 3주 앞두고 아베 내각 지지율은 45%로 올라갔다. ‘한국 때리기’가 약발을 받는 모양새다.

돌이켜보면 아베 총리는 고비때마다 ‘한국 때리기’를 시도해왔다. 지난 2017년 아베 총리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북해도 위에 위치한 북방 4개도서 반환 관련 협상을 벌였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아무런 실익을 가져오지 못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어김없이 ‘한국 때리기’로 이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아픔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철거해 줄 것을 요구하며 우리 정부에 무리한 요구를 시도했다. 일본 보수층들은 결집했고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바로 회복됐다. 지난해 대법원의 전범기업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을 시비로 한국을 압박해왔다. 결국 아베 총리의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역시 아베 총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에 대해 강경한 태도다. 반일 감정을 타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세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 1~5일까지 실시한 조사(전국2517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2.0%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5%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았다.

지난달 27일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긍정 평가는 46.2%였다. 부정 평가는 49.5%였다. 오차범위 내 이기는 하지만 부정이 긍정보다 높다. 그런데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발표한 1일부터 문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세다. 1일 조사에서 긍정이 부정보다 높았고 반일 감정이 격화된 3일 조사에서 긍정 평가가 53.5%나 된다.

물론 문 대통령 지지율 상승의 1차적 원인은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회동 효과다. 그렇지만 1일 이후 지속적인 상승은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대통령 지지율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대통령의 지지로 모아지는 일종의 ‘애국심 결집 현상’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연일 강경 모드다.

양국 국민들의 여론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 NHK 방송이 지난 5~7일 실시한 조사(일본 전국 3756명 유무선RDD전화조사 응답률55% 자세한 사항은 보도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아베 총리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일본 국민 45%는 ‘적절한 대응’이라는 응답으로 아베 총리에 심을 실어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응답은 9%에 그쳤다. ‘어느쪽이라 말할 수 없다’가 37%로 나타났다.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한 일본 국민들도 있지만 거의 절반가까이 적절한 대응이라고 응답한 것은 아베 총리가 여론을 등에 업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 국민들의 여론도 일본 국민에 못지않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우리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았다.

알앤써치가 아시아투데이의 의뢰를 받아 지난 5~7일 실시한 조사(전국1009명 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7.2%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찬성 의견이 66.9%로 압도적이었다. 대통령 지지층의 여론이 동조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역시 강경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일본의 꼼수에 물러서지 않는 대통령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정부가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응답이 86.9%로 절대적이다.

아베 총리나 문 대통령이나 핵심 지지층의 여론과 지지율을 감안할 때 당분간 ‘강경 모드’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두 번째 이유는 ‘과거사’ 때문이다. 가깝고도 먼나라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친구가 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과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해방 전 태어난 세대다. 일본 강점시기의 여러 가지 아픔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조야에 친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일본과 새로운 관계를 조명했다. 과거사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새로운 한일관계’를 천명했다. 과거사는 두 나라가 숙명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지만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문화 카드를 빼들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 다양한 문화 교류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복안이었다.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위태로운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그대로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한일 양국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특히 역사를 알아가는 기회를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학생 교류를 통해 서로간 인식의 차이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한일 관계는 돌파구가 없어 보인다. 과거사가 두 국가 사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다른 해결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상태다.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의 발단이 된 사건 또한 ‘과거사’와 관련 있다. 한국 대법원의 전범 기업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이미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이 문제까지 포함해 해결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일 양국 국민들의 여론은 완전히 엇갈린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은 78%가 일본 정부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책임이 해결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10명 중 8명 정도는 ‘강제 징용 배상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은 과거사에 대해 정반대 여론이 형성돼 있다. 현재의 인식이라면 과거사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인식차를 좁히기 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우리 국민들에게 큰 상처이자 아픔인 위안부 문제 관련 재협상 여부에 대해 한일 양국 국민들에게 물어 보았다. 우리 국민들은 지극히 당연하게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려 85.4%가 ‘위안부 문제 재협상’에 찬성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 국민들은 반대 의견이다. 일본 국민 10명 중 6명 가까이 재협상에 대해 부정적이다. 찬성 의견이 3명 중 1명 정도가 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정도다.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 모두 한일 국민들의 인식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소녀상 문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들에게 소녀상은 일본의 부도덕과 비윤리를 고발하는 상징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의 공동 여론조사에 의하면 ‘소녀상 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일본 국민들은 71%가 철거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10명 중 8명이 넘는 84.2%가 반대쪽에 손을 들었다.

우리 국민들의 눈에 너무 당연한 일이 일본 국민들의 눈에는 불편한 일이 되어 버린 현실이다. 독도 문제는 물어보지 않아도 양국 사이 뿌리 깊은 갈등의 소재가 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일본의 과거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우리와 다른 시각이다. 과거사에 대한 전환점을 마련하기 못하고 악화일로에 있는 현 시점에서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시도 자체가 무모한 일인지 모르겠다. 과거사 관련 양국 국민들의 엇갈리는 시각은 한국과 일본 관계를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숙명적인 대결구도가 만들어지고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이유는 일본의 ‘혐한론’이다. 혐한론은 일본 국민 중 일부가 과거 반성 없이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극우적 경향을 의미한다. 의미를 풀어보더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지만 일본 국민들은 어느새 혐한론에 침투되고 있는 상태다.

‘욘사마’로 불리며 일본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 배용준이 일본을 왕래하며 쌓았던 우정은 온데 간데 찾을 길이 없다. 양국 국민들은 정치적 갈등으로 장기간 신음하면서 양국 국민 모두 한일 관계 악화를 온 몸으로 확인하고 있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 공동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5년 간 한일 관계는 생산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우리 국민들의 일본과 관계에 대한 인식은 박근혜 정부에서 ‘나쁘다’가 80%대로 좋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 지난해 양국 국민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인식은 좋아졌다. 우리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은 60%대로 낮아졌고 ‘좋다’는 긍정 인식은 20%대 중반으로 개선됐다. 일본 국민들의 인식도 지난해 달라졌다. 한국에 대한 부정 인식은 60%대로 낮아졌고 긍정 인식은 30%대 중반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양국 인식은 동시에 나빠졌다. 특히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혐한론적인 인식은 2015년 무렵처럼 ‘나쁘다’가 83%, ‘좋다’는 13%로 악화되었다.

문제는 미래에 대한 인식이다. 과거사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인식이 악화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지고 있다. 향후 양국 관계가 어떻게 될지 물어보았다. 한국 국민들은 절반 넘는 56.5%가 지금의 관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일본 국민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국민 3명 중 2명 정도는 양국 관계가 지금 상태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좋아질 것’이라는 긍정적 의견은 고작 14%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한국을 증오하고 무시하는 ‘혐한론’이 일본 국민들 중 극소수의 생각이라고 단정하면 큰 코 다칠 일이다. 일본 국민들이 의도적으로 한국을 폄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아베 정권이 국민들을 계속 선동하고 우리의 대응이 공격적이라면 일본 국민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가해자였던 일본 국민들의 시각과 피해자였던 우리 국민들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는다.

고인이 된 김영삼 대통령은 파격적인 정치인으로 손에 꼽힌다.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23일 간 단식한 기록은 한국 정치사의 명장면으로 아직도 많은 정치인들의 가슴에 살아있다. 김 전 대통령은 학창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를 꿈꾸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면서 꿈이 현실이 되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파격적인 국정 운영을 선보였다. 군내 정치 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역사바로세우기를 단행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취임 초 지지율은 90%에 육박할 정도였다. 하지만 취임 초의 기대와 달리 임기 중반부터는 갖가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각종 인재가 뒤따랐다. 가장 큰 고난은 임기 후반부였다. 국내 정치 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주변국 외교 또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과 관계였다. 발단은 일본이 먼저였다. 1995년 11월 일본 정부의 에토 다카미 총무청 장관은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며 망언을 일삼았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며 초강수로 응수했고 일본의 반발을 불러왔다.

김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들의 마음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해주는 사이다 역할을 해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른 이야기였다. 비외교적인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한일 관계의 각종 악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일본은 1998년 1월 한일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한일 관계를 더욱 궁지로 내몰았다. 일본보다 고통이 더 큰 쪽은 한국이었다. 김 대통령 임기 말기 IMF외환위기에 내몰렸는데 일본의 금융 지원이 절실한 시기에 결국 화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은 한일 관계에 과연 봄은 올까. 양국 대통령의 지지율, 뿌리 깊은 과거사, 소리 없이 퍼진 혐한론을 본다면 역대급 관계 악화를 예견하지 못한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과거 역사로는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기는 난망해 보인다. 우리는 계속 일본에게 반성하라고 할 것이고 일본은 아직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느냐며 야속한 소리만 해 댈 것이다. 다만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빈번하게 이야기 했던 역사의 이해와 문화적 협력이 해결의 첫 단추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 공동 여론조사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 인식을 위한 교류 추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인 52%가 추진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우리 국민들은 3명 중 2명 정도가 ‘한일간 역사인식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분노만 쌓아 가면 되돌아갈 길이 없는 법이다. 장기적으로는 문화의 교류와 상호 역사 이해라는 모범 답안을 가져가면 된다. 단기적인 해법은 양국 정상의 대화와 타협에 달려 있다.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처럼 북미관계만 살펴봐도 톱다운 방식의 접근이 주는 효용성과 가치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미국 국민들의 대(對)북한 인식을 바꾸려면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 톱다운 방식의 만남이 북미 관계를 짧은 시간에 진전시켜 놓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계속해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간다면 두 나라 국민들의 감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과거사를 떠올리고 일본의 우익 행태를 본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아베 총리에게 좋은 감정으로 다가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격한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국민들에게 더 많은 호응을 받는 일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과 무작정 적대적 관계로 치달을 일은 결코 아닌듯 싶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외교가 중요한 나라다. 세계 초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빈틈없이 얽혀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최고의 외교관이어야만 한다. 이른바 숙명이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해결하는 주체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알앤써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를 받아 지난 8~9일 실시한 조사(전국1001명 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7.4%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현재 한일관계 해결의 주체가 누구인지’ 물어본 결과 ‘대통령’이 30.2%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정부’가 24.6%였다. 문재인 정부로 묶어보면 절반이 넘는 54.8%다.

국민들은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주체로 문재인 정부를 지목하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국 때리기’를 해 나가고 있는 아베 정부를 상대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 내내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 긴장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나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신출귀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던 김종필 전 총리나 박태준 전 총리였다면 과연 어떤 해법을 머릿속에 떠올렸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토대로 혹한기 같은 현재의 한일관계에 숨통을 틔워주고 온기가 돌 수 있도록 하는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컨설팅업체인 인사이트케이를 창업해 소장으로 독립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요즘은 유튜브 전문가로 통한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갖춰 정치 판세의 핵심을 잘 짚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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