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강대국만의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적 체면과 강대강 대치 버리고
지혜로운 출구찾아야"

손연기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손연기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우리 경제를 온통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현실화된 한일 양국의 갈등이 앞으로의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암운을 드리우는 형국이다.

일본은 지난 1일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반도체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사실상 경제적 선전포고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의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앞으로 한일관계가 풀리지 않는한 수출규제 대상이 더욱 확대될 소지가 크다. 이로인해 겪게 될 기업들의 고충 등 우려부터 앞서는 까닭이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감광액(리지스트)에 대한 수출 규제와 더불어 스마트폰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 규제는 우리 경제의 심장부를 노린 화살이나 마찬가지다.

원재료 세계시장에서 70~90%의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위상을 감안할 때 대체 공급처를 찾는 것 조차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아울러 우리 기업이 수입 대체 국가를 찾는 동안 주력 산업분야의 생산 공정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입대체 국가를 구하고 찾는데 얼마나 걸릴지도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와 관련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논할 수 없으며 이러한 규제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본 및 국내외 언론에서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고도의 정치게임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를 겨냥한 수출규제가 일본 자민당에 유리한 지지로 작용할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앞으로 이러한 보복 규제가 일본의 정치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삼성 반도체 신화'로 불리우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은 25년 전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를 이끌던 시기에 일본이 한국 견제를 위해 반도체 장비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망할지 모른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적이 있다. 이미 25년 전에 이러한 위험을 예견한 것이어서 다시금 기억이 새롭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주고자 대일(對日) 의존도가 높은 해당분야를 콕 집어 수출규제를 감행했다. 이같은 일본의 전략에 대해서는 치밀하다 못해 치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힘의 논리가 그대로 통하고 먹히는 곳이 바로 글로벌 시장임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간 미중 무역분쟁에 대한 뉴스를 수차례 접하면서도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한 시나리오를 예상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데 대한 되새김이나 자성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치적 갈등이 '경제적 폭력'으로 언제든 이어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같은 평범한 진실을 직접 몸으로 당하고 나서야 느낀다면 자칫 시대의 흐름에 둔감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진대제 전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는 정부로서의 체면이 있겠지만 기업은 전혀 문제가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사(生死)가 달린 일로 핵심 기술과 원료 · 소재에 대한 강력한 우위가 있는 일본 회사에 당장 달려가서 엎드려 빌어서라도 원재료를 구해 와야 한다"고 기업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한 바 있다.

한 예로 국가가 직접 나서 예산을 쏟아부어 전략적 육성에 나선다고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OS)를 대체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앞으로 무역 갈등이 예상되는 수출 의존 분야를 모두 국산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또한 국산화가 가능하다고 한들 그럴 필요는 없다. 수요공급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폭력'에 해당되는 이번 일본의 강경대응을 1930년대의 전체주의 부상으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국수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국민적 단결에 호소하는 불합리한 선동방식과 권력자의 정치일정에 따라 기획된 치밀한 방어적 국가주의 말이다. 다만, 일본의 경제보복을 국수주의적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자칫 불완전한 분석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우리는 현 시점에서 일본의 경제적 폭력을 뼈에 깊이 새겨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살아남는 지혜가 더욱 중요하다. 힘의 논리와 강대국만의 리그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괜한 정치적 체면과 강대강 대치로는 어려움만 키울 뿐이라는 사실을 재빨리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정부당국자들은 당장 일본과 미국 등지로 건너가 정치적 인맥과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해법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지금은 강대국만의 전유물인 힘의 우위를 떠나 우리의 실정에 맞는 '지혜로운 출구(EXIT)찾기'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 손연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 교수 프로필

1958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그후 미국 유타주립대(Utah State University)에서 사회학과 학사를 거쳐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석·박사(사회학) 학위를 취득했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학과장을 거쳐 한국정보문화센터에서 원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한국정보문화진흥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 원장을 연임했으며, 한국지역정보개발원(KLID) 원장도 역임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와 한국보안윤리학회장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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