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창업에 대한 사회적 열망 더욱 키워야"

"향후 디지털 혁신과정은 첨단 디지털기술 갖춘 모험기업들이 좌우할 것"

이준정 과학기술 칼럼니스트·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시비인사이트(CB Insights)의 자료에 의하면 금년 5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 기업의 수는 346개라고 한다.

유니콘이란 비상장된 민간기업 가운데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기업을 말하며, 기업공개나 공개회사에 매입 합병되면 더 이상 유니콘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나라 별로 비교하면 미국이 171개, 중국이 88개, 영국 16개, 인도 15개, 한국과 독일이 각각8개, 이스라엘, 인도네시아, 프랑스가 각 4개, 스위스 3개, 홍콩, 호주, 브라질, 콜롬비아에 각 2개씩 있다.

10년 전만 해도 벤처 즉 모험기업의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 되는 일은 아주 희귀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유니콘 기업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1년 말에 14개에서 2018년 말엔 284개가 되었다.

매년 유니콘에 편입되는 모험기업도 2011년엔 4개에서 2018년엔 79개로 급증했다.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되거나 기업합병 되지만 유니콘들이 매년 증가하는 이유는 첨단 디지털 기술로 중무장한 모험 기업들이 시장을 현물 중심의 물질경제에서 서비스 중심의 디지털경제로 빠르게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모험 기업들이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은 혁신능력에서 나온다. 혁신능력이란 시장을 지배해온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능력이다. 기술이 지수함적으로 발달하면서 첨단 신기술과 기존 기업의 보유기술 간에 기술격차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디지털 세계는 누구나 쉽게 기술을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다. 디지털 기술의 민주화는 자본이 열악한 작은 모험 기업이라 할지라도 기존 대기업들과 기술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순발력으로 차별화된 신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공유택시업체 우버(Uber)나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엔비(Airbnb)는 디지털 연결망을 활용해 대표적 자동차 업체인 BMW나 호텔체인 힐튼의 기업 가치를 넘어선 모험 기업들이다. 이들의 성공배경은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기존 기업체들과 차별화된 사업방식으로 고객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살핀 아마존은 오프라인 시장의 지역적 한계를 뚫고 글로벌 고객을 상대로 공산품을 공급해 주는 온라인시장을 구축했다.

매년 11월 11일에 온라인 할인행사를 벌여온 알리바바(Alibaba)는 지난 해 초당 23만4000건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하루 동안 308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국내 기아자동차의 연간 매출액과 비슷한 규모이다.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모험 기업들의 등장은 스마트폰으로부터 촉발된 모바일 통신혁명과 인공지능 기술혁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모험 기업들의 천국이 된 이유는 PC혁명기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애플, 구글, 인텔 등 많은 디지털 기술 대기업들의 성공 역사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산업기반이 잘 조성돼 있고, 인재가 풍성하며, 아이디어의 교류가 활발하다. 디지털 기술창업은 물리적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단지가 필요치 않고 지식재산권을 구성하는 아이디어, 응용소프트웨어 또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성공시키는데 필요한 무형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의 강점은 소규모로 창업한 기업들이 보유한 영업비밀이나 아이디어 소유권을 잘 보호해 줄 법률지원 체계나 기술창업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주는 벤처투자가들이 많다는 점이다. 모험기업의 성공사례가 늘어나면서 성공이 성공을 부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제조업의 집결지인 중국이 미국에 이어 디지털 모험기업의 천국으로 변신하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모바일 기술혁명기에 디지털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의 성공사례들은 모든 중국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중국의 창업 붐은 수많은 분석 자료들에 잘 나타나 있다. 모바일기기로 중무장한 신흥 중산층 인구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모바일 기술혁신이 촉진되었고 이들 수요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잉태되었다.

초창기엔 미국을 모방하는 기술개발에 치중했으나 점차 중국식 문화와 소비자 취향에 맞는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개발로 목표를 바꿨다. 중국식 고유기술들에 도전하는 모험들이 보다 더 사업전망이 밝다는 신뢰가 축적되면서 벤처투자 자금이 몰려들었다. 벤처투자규모가 2016년 이후론 미국을 능가할만큼 팽창하였다. 드론, 공유경제, 인공지능 분야에선 이미 세계를 선도하는 과감한 기술혁신 사례가 축적되었다.

중국의 모험 기업들은 전자상거래, 금융, 교통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쇼핑문화, 여행문화, 투자방식, 식생활, 오락생활을 완전히 탈바꿈 시키고 있다. 중국의 창업생태계를 분석한 한국은행 분석 자료에 의하면 2017년1월에서 9월까지 창업된 모험기업(법인)수는 451만개로 일평균 1.65만개 수준이다. 이들 모험 기업들의 고용 인력은 도시지역 신규 취업자(1,097만 명)의 25%인 274만 명 정도라고 한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유니콘 수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국내에도 창업열풍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임을 암시한다. 기업설립의 용이성을 평가한 세계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기업친화성 측면에서 세계5위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을 설립하는 절차나 규제가 많이 간소화 되어 있다. 정부지원자금이나 창투사들의 활동도 다양하다는 측면에서 창업의 기반은 튼튼한 편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본투글로벌(Born2Global)의 ‘대한민국 창업백서’를 보면 모험기업의 수가 2016년 3만 3289개, 2017년 3만5187개, 그리고 2018년엔 3만 7000개에 불과하다. 이를 중국과 비교하면 인구 규모 차이를 감안한다 해도 모험기업의 수가 중국의 1/5정도도 안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창업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창업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은 한국에선 상식을 벗어난 획기적인 사업방식이 시장의 이해관계망과의 심하게 충돌한다는 점이다.

법률적 창업은 쉽지만 실리콘밸리처럼 소규모 기업들의 창업아이디어가 잘 보호받는 환경이 아니고 중국처럼 모험기업의 성공으로 거부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열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험 기업들의 획기적 성공사례들이 부족해 사람들이 인식하길 한국에선 기득권 세력의 방해나 법적 제한조치를 극복할만한 획기적 아이디어나 사업 아이템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세계는 지금 모든 산업 영역이 디지털 기술로 전환되는 디지털산업혁명에 돌입했다. 지금 디지털 대기업이라고 알려져 있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점령한 사업영역은 도소매, 광고, 정보, 오락 산업분야에 머물고 있다. 이들 영역이 차지하는 GDP비중은 전체 산업의 20%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직 나머지 80%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 교육, 의료, 금융, 건설, 에너지, 부동산, 전문직서비스 영역 등이 디지털화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술혁신 기회들이 널려 있다. 이들 산업영역은 한국이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산업에선 디지털 혁신기술이 이해관계망과 충돌할 염려도 적다. 단언컨대 디지털 기술은 아직도 시작 단계일 뿐이고 무한한 상상력이 동원돼 나머지 산업들마저 모두 디지털 산업으로 탈바꿈 시키는 과정이 남아 있다. 앞으로 벌어질 디지털 혁신과정은 기존 기업들보다도 첨단 디지털 기술들로 중무장한 모험 기업들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나 중국의 모험 기업들이 미처 점령하지 못한 산업계에서 수많은 기술창업 기회가 널려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한국도 미국이나 중국에 뒤지지 않는 21세기형 디지털 혁신국가로 도약할 기회가 널려 있다.

제조업, 의료, 교육, 건설 등 한국이 강한 산업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모험 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기 위해선 기존 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자들의 창업 열풍이 필요하다. 훌륭한 창업 아이디어는 실무를 경험하면서 겪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고픈 열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경험 속에서 절감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디지털 영감을 찾아낸다면 획기적인 성공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정보통신업계가 아닌 다른 산업에만 종사하던 40~50대 중년층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디지털 소양을 함양시킬 수 있는 전문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동시에 이들 산업별 전문가들과 디지털 기술에 해박한 젊은 기술자들을 한 팀으로 묶어주는 교류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프론트 원(Front 1)’이란 새 창업지원센타를 마련해 창업 멘토링부터 아이디어 교류, 투자 자금 조달까지 한곳에서 이뤄질 수 있는 혁신창업플랫폼을 구축한다고 한다. 이곳에선 사회경험이 없는 젊은이들과 40~50대 산업 경력자들이 함께 어울려 창업에 필요한 기업경영노하우는 물론이고 인공지능 등 최첨단 디지털기술을 학습하고 교류하는 활동이 활발히 펼쳐져야 한다. 그동안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해온 산업영역에서도 디지털 혁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모험 기업들이 많이 탄생해 차세대 디지털 기술혁명을 이끌어 주길 기대한다.

■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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