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패스트트랙이 파국 국면으로 치닫게 된 이유는"

"짬뽕인가 짜장 인가를 선택하는 자리에서 팔보채나 깐풍기를 끄집어내서"

막장 트랙된 3대 요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수처 설치 법안' '중재자 부재'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지금까지 이런 패스트트랙은 없었다. 막장 트랙인가, 분당 트랙인가. 20대 국회는 임기를 약 1년 정도 남겨둔 시점에 ‘몸싸움 국회’로 추락했다. 볼썽사납기 그지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비난을 넘어 국민들의 분노가 활화산 처럼 폭발을 거듭하고 있다.

패스트트랙은 국회선진화법의 산물이다. 법안 통과를 두고 여야가 설전을 넘어 육탄 대결을 벌이는 추태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이다. 그렇지만 패스트트랙을 놓고는 백약이 무효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은 선거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권 등 모든 법안을 망라하고 있는 패스트트랙 지정쪽에 섰다. 반대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제와 공수처 법안에 결사 저지로 맞섰다. 몸싸움을 하는 파행 속에 패스트트랙 지정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렇지만 패스트트랙 후유증은 계속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안팎으로 패스트트랙 저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독재 정권으로 규정하고 독재자 타도를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상황에 대통령 지지층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자유한국당 해산’을 올리며 맞서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7시 기준으로 ‘자유한국당’해산 청원은 164만명을 돌파했다. 국민청원제도가 생긴 이래 최다 참여자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가 있다. 같은 시각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 청원 해산은 참여자가 30만명에 육박해 가고 있다.

국회에서 두 정당의 첨예한 대결이 국민청원 공간으로 옮겨 붙은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은 공당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지목해 국회의원 자격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의 내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고 단호한 대응을 주도한 이해찬 대표를 가리켜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정쟁의 불씨가 청와대가 여론 수렴을 위해 만든 국민청원 공간을 달구고 있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책임을 모두 묻고 있는 여론조사와 사뭇 다른 청와대 국민청원 현상이 아닐수 없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달 26일 실시한 조사(전국505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5.1%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몸싸움 국회 책임’에 대해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지 물어본 결과 ‘자유한국당의 물리력 행사’가 43.8%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더불어민주당의 무리한 추진’이 33.1%로 나타났다. ‘여야 공동책임’은 16.5%, ‘바른미래당의 내부갈등’은 3.2%였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양 정당 해산 참여자 수와 비교하면 온도 차가 있는 결과다. 게다가 중도층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책임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36% vs 38.1%).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청와대 국민청원 상황을 보면 대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위원회 통과로 일단락됐지만 극한 대결은 계속되는 셈이다. 앞으로 깊어진 골을 메우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여의도 국회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패스트트랙은 운명적으로 파행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패스트트랙이 막장 트랙이 된 첫 번째 이유는 선거제다. 정당의 지지율은 주로 세가지로 구성된다. 이념 기반, 지역 기반, 세대 기반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호남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불어민주당 선호 경향이 강하다.

선거제도가 자기 지지층을 결집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국회에서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다. 자유한국당은 주로 영남, 50대 이상, 보수층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선거제가 각 정당의 주요 지지층을 결집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한 총성 없는 ‘샅바 싸움’은 불가피해 진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샅바 싸움이다.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제도만 고집하다보면 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선거제는 극단적인 동상이몽이었다. 지지층의 여론을 살핀다면 여당과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생각은 전혀 딴 판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해 11월 20~22일 실시한 조사(전국1001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3%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좋다고 보는지 아니면 좋지 않다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 전체 의견은 ‘좋다’가 42%, ‘좋지 않다’가 29%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련 긍정 응답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좋다’는 의견이 51%로 절반을 넘었다. 그렇지만 자유한국당은 다른 시각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좋지 않다’고 보는 의견이 56%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중도층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긍정 의견이 더 많았지만 절반을 넘기지는 못했다.

전체 여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긍정적이지만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생각은 반대 의견이 더 많다. 주목할 대목은 4개월 여 시간이 지난 뒤 실시된 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생각에 큰 변화가 없었다. 알앤써치가 아시아투데이의 의뢰를 받아 지난 3월 8~10일 실시한 조사(전국1103명 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0%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7.6%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인지’ 물어 본 결과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반대 의견이 55.9%로 절반이 넘는다.

찬성 응답은 27.7%였다. 지난해 11월의 조사와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다. 연동형 비례 대표제에 대한 언론 노출이 더 많아졌지만 생각의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59.3%가 찬성 의견으로 나왔다.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두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더라도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에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맞불 법안으로 국회의원수를 줄이자는 자유한국당의 주장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짬뽕인가 짜장 인가를 선택하는 자리에서 팔보채나 오향장육을 끄집어낸다면 생뚱맞다. 누구도 이 정도로 ‘몸싸움’을 할지는 몰랐다고 말할지라도 두 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했다면 이미 예고된 참사였다. 패스트트랙이 막장 트랙이 되어버린 명백한 이유다.

패스트트랙으로 국회가 난장판이 된 두 번째 결정적 이유는 공수처 설치 때문이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검찰 개혁을 강조해왔다. 임기 만 2년이 다되어 가는 시점까지 지지부진했던 개혁은 공수처 관련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경찰 출신인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의 법안까지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권력기관의 상징처럼 군림해왔던 검찰 조직의 힘을 빼는 것이다. 각종 부정, 부패, 비리가 야기되는 전선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기둥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검찰이다. 당연히 국민의 이익이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에 의해 농단당하지 않도록 불철주야 사명을 다해 나가야 하는 조직이다.

공수처 설치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의원들조차 합의를 못할 정도로 간단치 않은 내용이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 법안이 ‘옥상옥’이라며 논의 초반부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무엇일까. 문무일 총장은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는 시점에 공수처 설치 및 검경 수사권 조정 추진에 대해 매우 불편한 모습이다.

경찰에 상당한 권한을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개혁의 핵심일까.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력 조정일 뿐이지 여전히 국민들 앞에 권력기관의 힘은 사라지지 않게 된다. 권력을 나누어 조금 약해질 뿐 국민서비스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보장은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어디에도 없다. 경찰 개혁의 핵심은 정보 수집이나 사찰 등 그동안 국리민복과 전혀 상관없는 조직 운영에 대한 개선과 혁신이다.

비대한 권력기관으로 비판받아온 검찰의 권력을 나눠 갖는 것이 개혁의 핵심은 아니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정부에서 검찰이 정치권력과 결합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많은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검찰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공수처 관련 법안에 대해 국민들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패스트트랙이 막장 트랙으로 가게 되는 일정은 미리 예고된 거나 다름없었다. 현 정부 들어 공수처 법안이 수면위로 올라왔을 때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정반대다.

리얼미터가 tbs교통방송의 의뢰를 받아 지난 2017년 9월 20일 실시한 조사(전국514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3%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5%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권고안에 대해 찬성하는지 또는 반대하는지’ 물어본 결과 전체 결과는 찬성 68.7%, 반대 21.5%로 공수처 설치 권고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

찬성 의견이 높은 이유는 고위공직자들의 각종 비리 및 부패 사건을 직전 정부에서 목도한 기저현상이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 개혁을 강조해온 현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높은 대통령 지지율이 한 몫하고 있다. 물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권고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지 다시 물어본다면 제대로 알고 있을지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한편 정당 지지층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10명 중 9명에 육박할 정도로 찬성(87.7%)의견이 높다. 반대하는 응답은 고작 4.9%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63.8%가 반대 의견으로 나타났다. 반대가 압도적이다. 중도층은 71.5%가 찬성이었다.

일반 응답자들이 전체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중도층의 높은 찬성 의견은 네이밍 효과(naming effect)뿐 아니라 조사 시점의 높은 대통령 지지율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임기 1년차 공수처 설치 권고안에 대한 뜨거운 여론반응이 있었다면 더 많은 정보가 전달된 최근 시점은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변화까지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3월 26일 실시한 조사(전국502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3%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6.3%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대해 찬성하는지 또는 반대하는지’ 물어본 결과 2017년의 조사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공수처 설치 찬성 의견은 65.2%, 반대 응답은 23.8%였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반응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수처 설치 찬성 34.1%, 반대는 54.9%로 나타났다. 찬성 비율이 다소 높아졌지만 찬반 여론이 바뀌지는 않았다.

정치권의 대치 국면만큼이나 지지층 사이에서도 여론 차이는 거의 좁혀지지 않은 셈이다. 패스트트랙이 운명처럼 파행이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패스트트랙이 정치권 대충돌로 얼룩졌던 세 번째 운명적 이유는 중재자 부재였다. 국회엔 공식적인 중재자가 존재한다. 국회의장이다. 그래서 국회의장은 특정 정당 출신일지라도 일단 의장이 되면 탈당계를 제출하고 무소속이 된다. 정치적 중립과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다.

이번 패스트트랙은 시작부터 극단적 대립 국면의 연속이었다. 국회의장실로 대거 들어온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문희상 의장 홀로 대응하기에 벅찼다. 바른미래당의 사보임(원내대표가 소속 의원의 위원회 배치를 바꾸고 결정하는 행위, 최종적으로 국회의장이 결정)건에 대한 대응까지 겹치면서 문의장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병원에 입원하고 필요한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누가 또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제 3의 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극한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만한 역할은 바른미래당에 있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은 깊은 당내 내홍에 빠지면서 중재자 역할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고인이 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만년 2인자 였지만 1인자들끼리의 다툼에서 중재자 역할을 기가 막히게 잘 해낸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과 3당 합당을 감행할 때 힘을 실어주었고 YS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반대로 1997년 대통령 선거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DJ 당선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힘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중재자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초특급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번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보인 바른미래당의 모습이나 역량은 중재자를 맡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지지율은 고작 한자리라 그럴만한 힘도 없었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달 22~26일까지 실시한 조사(전국2518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2.0%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6%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약간이라도 더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바른미래당 지지율은 5.3%에 그쳤다. 중도정당을 표방해 온 바른미래당이지만 중도층에서 지지율은 7.9%였다.

손학규 대표가 퇴진 압박을 거부하며 목표로 삼은 10%대 지지율은 아직 요원하다.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민심을 보면 중립지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달 30일 실시한 조사(전국503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5%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쟁점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것에 대한 평가’를 물어본 결과 ‘패스트트랙 지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51.9%로 절반을 살짝 웃돌았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37.2%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86.8%가 긍정적으로 보았고 반대로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10명 중 8명이 넘는 82%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패스트트랙 진통과정에서 사보임 문제로 내홍에 시달렸던 바른미래당의 한계는 뚜렷했다. 중재자 역할은 고사하고 ‘내 코가 석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중재자 없는 패스트트랙의 막장 뒤끝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임기 최대 성과로 손꼽히는 것이 의료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다. 이 법안이 시행되기까지의 고생을 기억한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케어’의 성공을 위해 때로는 저돌적으로 때로는 부드럽게 상대방을 공략했다. 2010년에 승인된 법이지만 4년이 지나 2014년에 가서야 시행이 된다. 높은 지지율은 자랑하는 오바마였다면 더 강력하게 공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켜도 가능했을텐데 왜 시간을 끌었을까.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공화당의 협력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0년 오바마케어가 승인을 받기 전 공화당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이 있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이 모이는 식사자리까지 찾아가 설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공화당 의원들의 연찬회 자리까지 쫓아가 설득하고 또 설득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설명을 허락했던 공화당 인사가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인 마크 펜스다. 공화당의 반발로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상황까지 초래됐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은 멈추질 않았다.

한국에는 오바마가 왜 없는 것일까. 패스트트랙은 비록 지정으로 결정되었지만 많은 상처를 남겼다. 더 안타까운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수처 설치 법안, 중재자의 부재 속에서 이런 극단적인 파행은 안봐도 비디오였다는 사실이다. 막장드라마는 이정도면 충분하다. 더 이상 국민들의 눈 밖에 나서 '정치 무용론'이 고개를 내미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노회한 중재자였던 김종필 전 총리는 "국민이 호랑이다. 여론이 호랑이다"라고 말하며 늘 여론을 무서워하고 참고했다. 쓴 소리를 하는 원로조차 없는 현실이 더 무섭다.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컨설팅업체인 인사이트케이를 창업해 소장으로 독립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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