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發 화폐개혁 이슈, 잊혔던 과거 이슈 재점화시켰으나,

화폐개혁의 문제점과 장점이 뒤섞이면서 향후 상당한 논란 예상돼

취지는 공감하나 현재 한국 경제여건 볼 때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여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전문가 칼럼=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화폐의 액면 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즉 화폐개혁이 오랜 침묵을 깨고 최근 캐비닛 속에서 나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지난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총재가 업무보고를 통해 화폐개혁을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오랜 시간 수장됐던 이슈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이러한 발언은 학계뿐 아니라 정치권으로도 번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의식한 듯 이 총재는 그후에 "리디노미네이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논란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한국은행 총재가 화폐개혁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재임할 당시에도 화폐개혁을 추진했다가 실패에 그친 전력이 있다. 이주열 현 총재의 '화폐개혁' 발언 이후에도 실제로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의구심을 보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같은 학습효과때문일 듯 싶다.

게다가 리디노미네이션이 언급된 시기가 다소 의심스럽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내세우며 당당히 출발한 현 정부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도록 이같은 정책을 제대로 안착시키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실시되므로 여야의 정치적 대립이 격화될 수 밖에 없고 현 정부의 실정(失政) 역시 국민의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이를 피하려는 꼼수로 정부와 여당이 화폐개혁이라는 파격적인 이슈를 꺼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기도 하다. 즉 사회적 혼란을 극대화시키며 모든 문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니냐는 시각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일부 과도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경기상황이 나쁜 현 시점에 갑자기 화폐개혁 논의가 시작된 것은 시기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화폐개혁이 우리 경제와 국민에게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 장단점을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짚어보기로 하자.

우선 화폐개혁의 장점(또는 필요성)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화폐개혁으로 환율 수치가 낮아지면 국격(國格)에 걸맞는 원화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 범세계적으로 볼 때 미화 1달러를 자국화폐로 교환하기 위해 4자리 숫자인 1000원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국가는 흔치 않다. 일본의 경우 1달러에 110엔 정도이며, 중국의 경우 1달러에 6.7 위안으로 화폐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달러로 교환하는데 무려 네자릿수 단위가 필요한 국가는 이라크, 레바논 등 몇몇 국가에 불과하다.

만약 1000: 1로 화폐개혁이 된다면 1달러가 현재의 1100원이 아니라 1.1원이 되기 때문에 달러-유로 환율에 근접하게 된다. 현재 세계경제 랭킹 12위권에 이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부합되는 원화 가치를 설정한다는 목적에 방점을 찍는다면 화폐개혁은 사실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두 번째, 화폐개혁은 현재의 원화가치가 갖는 회계적 비효율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현재의 원화가치로 표현했을 때 가장 큰 액수에 해당하는 것은 국부 및 금융자산 그리고 파생상품 거래액 등이며, 천조를 넘어 만조가 되면서 ‘경’단위로 표현해야 한다. 실제로 2017년 말 기준 한국의 국부는 1경 3817조원, 금융자산 규모는 1경 522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국내 금융회사의 장외파생상품 거래규모 역시 1경 3962조원에 이르러 이를 아라비아 숫자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만약 향후에 국부 또는 금융자산이 10,000경이 되면 ‘1 해’(亥)라고 표기해야 하는데, 해(亥)단위에 대한 정확한 규모를 체감하기도 힘들 것이며, 지나치게 높은 단위는 대외적으로도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액면 단위를 조정하는 화폐개혁은 이러한 회계적 비효율성을 줄이는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세 번 째, 화폐개혁이 실시된다면 자연스럽게 지하경제의 양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화폐단위가 변하고 신권이 발행된다면 숨어있던 지하경제의 자금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하경제의 규모를 줄이고 양성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과거부터 다각도로 진행돼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화폐개혁은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같은 장점과 달리 화폐개혁의 단점(또는, 부작용)도 크게 세가지로 파악된다.

첫째, 화폐개혁은 화폐의 실질가치는 변하지 않고 액면 단위만 변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화폐개혁을 통해 액면단위를 1000:1로 낮추게 되면 현재 1,000원이 1원이 되는 셈이다. 즉 1억원이 10만원이 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짐에 있어 착오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한 예로 8억원 짜리 아파트 가격이 80만원이 되면서 실질가치를 제대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같은 그릇된 판단에 따라 수요를 늘린다면 부동산 가격 및 물가가 오를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승용차를 구입할 때도 이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4000만원 짜리 자동차의 가격이 1000:1의 화폐개혁으로 4만원이 된다면 자동차 가격이 5000만원으로 올라도 액면단위의 변화로 인해 5만원이 되는 셈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자동차 가격이 만원 상승한 것을 화폐개혁 이전의 만원의 가치와 혼동하며 자동차 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저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비자들이 화폐개혁 이후의 만원에 대한 실제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 기회를 이용해 자동차 판매회사도 부담없이 가격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다른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결국 물가가 오르게 된다. 사람들은 향후 물가가 더욱 상승하게 될 것에 대비해 수요를 증가시키며, 그와 반대로 공급자들은 공급량을 줄이게 되고 그에 따라 물가는 더욱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일단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형성되면 실제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물가가 수백~수천배 급등하는 ‘초(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출현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자기실현 예측’(Self-Fulfilling Expectation)이라 부른다.

또 다른 예로 연봉이 5000만원인 직장인은 화폐개혁후 연봉이 5만원이 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받는 연봉에 대한 정확한 가치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개별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화폐단위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가치가 변한 것으로 착각하는 심리적인 측면이 작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화폐개혁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두 번째, 화폐개혁은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시킨다. 화폐의 액면단위가 변한다는 것은 기존의 금융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교체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예를들어 기존의 ATM기와 자판기 등은 모두 새로 교체돼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심지어 국민들이 이용하는 카페 및 음식점의 메뉴판 역시 모두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메뉴 비용(Menu cost)'이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화폐개혁은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우선 화폐개혁의 취지에 대한 찬반 여론이 각계각층에서 극명하게 갈릴 것이 명약관화하다. 또한 이미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국민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즉 화폐개혁과 같은 민감한 주제를 적절히 컨트롤하고 연착륙시킬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화폐개혁이라는 배는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산으로 갈지도 모른다. 더욱이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소득주도성장 또는 포용적 성장이라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역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국가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화폐개혁에는 장점과 단점이 섞여있는 경우도 있다. 단점에서 언급한 ATM기 및 자판기 등의 교체비용 등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오히려 장점에 속할 수도 있다. 즉 각종 기기 및 시스템의 변화는 신제품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생산과 고용을 늘려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극명히 갈리는 찬반논리 속에 화폐개혁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우선 과거에 있었던 두 번의 화폐개혁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1953년 2월 1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이 실시되었고 1962년 6월에는 10환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즉 역사적으로 총 두 차례의 화폐개혁이 실제로 이뤄진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화폐개혁 자체에 대해 지나친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당시의 상황과 현재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는 수출과 투자가 감소하고 소비가 둔화되면서 저성장 국면에 진입해 있다. 더욱이 '고용참사'라고 부를 정도로 실업이 국가적으로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美中)무역분쟁, 브렉시트(Brexit), 북한 핵 리스크 등 다양한 불확실성이 둥둥 떠다니며 한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법정근로시간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각종 갈등과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시기에 화폐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경제전반에 대한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특히 달걀 3개를 사기 위해 1000억 짐바브웨 달러를 지불 해야 했던 짐바브웨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사례와는 달리 한국은 인플레이션이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급하게 화폐개혁을 추진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짐바브웨 100조 달러

종합적으로 볼 때, 큰 파장과 혼란을 몰고 올 화폐개혁을 현시점에서 추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적절해 보인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평가된 원화 가치를 국격에 맞게 회복하고 회계적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모든게 타이밍이 있다. 특히 현시점에서 화폐개혁을 섣부르게 추진하는 것은 약 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따라서 화폐개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미래 시점으로 미루는 것이 지혜로운 판단이다. 지금은 경기진작 및 고용증대를 위해 정책당국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시점이다.

■ 조하현 연세대 교수 프로필 :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제가 사회현상 뿐 아니라 정치적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다채로운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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