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현대판 우생학은 질병 예방, 치료 또는 신체 일부특징을 바꾸기 위해 유전자 변형 시도"

"유전자 편집 아기의 탄생은 기우일 뿐...윤리적으로도 안 되지만 완벽한 기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우생학’이란 단어는 영국의 사회학자이며 통계분석전문가인 프란시스 갈턴(Francis Galton)이 도입한 개념이다. 그는 사회적 엘리트들이 갖춘 천재성, 재능, 성격 등 좋은 형질들은 선천적으로 물려받는다고 믿었다. 인간의 좋은 형질은 물론이고 나쁜 형질도 유전에 의해 형성된다는 ‘우생학’을 주창한 이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20세기 초반 서구사회에선 우생학이 과학으로 통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좋은 유전자를 갖춘 시민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능아는 3대까지 유전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월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 열등한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이 더 이상 후손을 갖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도입되기도 했다.

이 같은 법은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1896년에 맨 처음 도입했는데 간질병이 있는 사람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다. 1911 년에 미국에 설립된 인종개선재단 (Race Betterment Foundation)은 가족의 유전적 특성을 추적해 이민자, 소수민족, 가난한 자 그리고 몹쓸 질병을 가진 자는 사회적으로 부적격하다고 분류했다.

33개주에서 강제불임수술을 허용하는 법이 제정되고 미 대법원은 이 법이 헌법에 부합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942년에 이 판결이 뒤집혀지기까지 수천 명이 강제로 거세를 당했다. 스웨덴에서도 6만여 명이 불임수술을 당했다는 자료가 있다.

미국의 강제 불임수술은 나치 히틀러의 우생학 실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히틀러는 유대인이나 집시 같은 비(非) 아리아 인종을 열등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유전자가 우수한 독일인들만의 국가를 원했다. 나치 정권은 1933 년에 유전적 질병을 갖는 자손을 예방하는 법을 수립해 강제 불임수술을 실시했다.

순수한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 학살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일을 했으며, 독일인이라도 정신병이나 신체장애가 있으면 가스 또는 주사로 안락사 시켰다. 시각 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조차도 안전하지 않았으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제 2 차 세계 대전 중, 수용소 수용자들은 히틀러가 원하는 완벽한 인종을 만들 수 있는 끔찍한 의료 실험의 희생자가 됐다.

파란 눈을 만들려고 점안 약물을 실험했고, 포로에 병원균을 주입하여 관찰하거나, 마취 없이 수술실험을 했다. 홀로 코스트 때는 약 1100 만 명이 사망 한 것으로 추산된다. 히틀러가 생각하는 우수 인종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희생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치 정권의 이같은 말할 수 없는 잔혹행위 때문에 제 2차 세계 대전 후 우생학에 대한 경각심이 증가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우생학이 등장하게 된다.

인간 유전 공학으로 더 잘 알려진 현대판 우생학은 질병 예방, 질병 치료 또는 신체의 일부 특징을 바꾸기 위해 유전자를 변경시키고자 한다. 치명적 유전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자들은 DNA의 특정 부분을 삭제하고 삽입하는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이란 기술을 발명했다. 캐스9-RNA복합체는 DNA의 특정 위치를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로 마치 문서의 오타 부분을 찾아내듯이 불량 DNA 서열을 인지하도록 프로그램 할 수 있다.

원하는 위치를 발견하면 맞춤법 교정하듯이 망가진 DNA 서열을 잘 라내고 양끝을 같이 서로 연결해 붙이거나, 또는 잘라낸 자리에 건전한 DNA 조각을 삽입시켜 서열을 고칠 수 있다.

만약 질병의 원인이 되는 DNA의 돌연변이 내용이나 위치를 정확히 알면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 진다. 실제로 쥐와 같은 동물을 이용해 DNA내의 특정 유전자에 작은 변화를 가해 형질을 바꾸는 다양한 시도가 성공을 거뒀다. 인간과 유사한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질병치료 실험들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와중에 중국의 한 과학자가 선천성면역결핍증(HIV) 감염환자인 부모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시키는 실험을 성공했다고 발표해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심천 남부과학기술대학교 (Southern University of Technology and Technology) 교수인 허 지안쿠이(He Jiankui)는 7쌍의 HIV양성 환자인 부부를 대상으로 인간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해 쌍둥이 여아들을 탄생시켰는데 한명만 HIV감염에 면역능력을 가진 것으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온 세계가 경악했다.

관련 학자들은 이 실험의 부작용을 아직 알지 못하며, 인간배아를 실험할 할 만큼 유전자와 질병의 상관성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배아 편집실험은 절대로 시도되지 않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판도라의 상자가 이미 열려버렸다며 수심에 빠지기도 한다.

전 세계에 걸쳐 상업적으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해주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도 상반기를 기준으로 약 1,700만 명의 DNA가 분석되었다고 한다. 유전학자들과 데이터 과학자들은 유전데이터를 기초로 개인 맞춤 방식으로 심장병이나 유방암 등 다양한 질병의 발병 위험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유전 데이터가 많이 축적될수록 예측 가능한 질병의 종류가 많아지고 정확도 역시 높아질 것이라고 희망한다. 하지만 요즈음 행해지는 유전자 시험은 한 가지 유전자가 특정 질병의 원인이 되는 몇 가지 유전질병에 국한해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만약 앞으로 유전자 분석비용이 충분히 저렴해져서 의료보험으로 누구나 유전자 분석 데이터를 갖게 되는 시점이 오면 분석에 필요한 충분한 데이터를 갖게 되므로 유전자 데이터만 가지고도 개인별로 다양한 질병의 위험을 진단해 볼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는 심장병, 암, 결핵 등 많은 질병들은 한 가지 유전자만의 돌연변이로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질병들은 수백 또는 수천 가지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중첩돼 발생하기 때문에 유전자 편집 방식만으로는 질병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전자 분석데이터가 소중한 이유는 인종 별로 또는 지역 별로 유전자 분석을 통해 다양한 질병에 관한 다인성 위험지수(polygenic risk source)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알려진 질병에 걸릴 위험성을 미리 예측해 본다는 측면에서 매우 실효성 높은 방식이 될 수 있다.

단일 유전자결함이 원인이 된 희귀질병에 대한 유전자 시험은 단순히 '예', '아니오'로 결과를 확인 할 수 있지만, 다인성 위험지수의 분석결과는 낮은 위험도에서 높은 위험도까지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을 구성하게 된다. 결국 개개인이 각성해 건강식, 운동 등 생활방식을 바꾸는 방식으로 질병을 회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전자 분석기술은 질병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외모가 다른 아기 또는 재능이 뛰어난 아기를 디자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배아를 대상으로 그 같은 시도를 한다는 상상은 부질없어 보인다.

임상실험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실패의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에 홀로코스트 급 희생이 없이는 기술이 정립될 수 없다. 당연히 시술비용도 상상을 뛰어 넘을 수밖에 없다. 유전자 편집 아기의 탄생은 기우일 뿐이다. 윤리적으로도 안 되지만 완벽한 기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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