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행 법무법인 동안 대표변호사 "'촛불시민'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내는 ‘거침없는 실행력’을 보고 싶다"

"통일부여, 유엔안보리와 미국 바라보기 그만하고, '자기 기만' 극복해야 비로소 '벼룩의 한계'를 껑충 뛰어 넘을수 있다"

법무법인 동안 조민행 대표 변호사.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조민행 법무법인 동안 대표변호사]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와 관련, “큰 틀에서 합의됐어도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가면 곳곳에 암초가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4·27판문점선언과 6·12싱가포르선언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됐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최근들어 주춤하는 모양새다. 숨어있던 문제점이 여기저기 각론 과정에서 속속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시간 제한도, 속도 제한도 없다"며 "그저 밟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 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걸음 물러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앞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3차 평양방문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귀국하자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폼페이오장관이 진전을 이뤘다고 했지만 돼지에게 립스틱 칠하기 같은 포장”이라고 조롱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부는 5·24 제재 조치에 대해 정부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되뇌이고 있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 류경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과 관련 “(종업원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한국에 오게 됐다”며 ‘독립적 진상 규명과 조사, 책임자 규명’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초기에 정보사가 주도했고, 이후 국가정보원이 이들의 국내 입국에 개입하였다는 보도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통일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종업원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입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획탈북 주장을 일축했다. 이와 관련한 검찰 수사 역시 2개월째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신청한 방북승인에 대해 통일부 대변인은 “관계기관 협의 등을 통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지만, 승인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전했다.

반면 최근 중국은 미국과 우리 정부의 입장과 다소 차이가 난다. 중국은 이미 북한과 원산항 개발 관련 2개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부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랴오닝성 상무청의 왕언빈(王恩濱)부청장은 지난 16일 선양에서 개최된 ‘개혁개방 40년 랴오닝 신 성장 동력 구축’주제 회의에서 “대북제재로 많은 협력사업이 중단됐지만 폐기된 건 아니다”며 “정신적으로 또 행동상으로 북한과 다시 깊이 협력하기 위해 적극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중국이 북한과 경협을 조기에 추진해 북한의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 건설을 중국 기업들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신의주-평양 철도가 우리 KTX 아닌 중국 고속철 ‘까오티에’가 깔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싫다.

속전속결 식으로 전개되리라던 남북 인적교류나 경협이 왜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개성공단 재개나 5·24 조치 해제, 남북경협을 북한의 비핵화와 연동하고, 위 문제들이 유엔안보리와 미국의 대북제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벼룩을 유리병에 가두면 처음에는 밖으로 나가려고 뛰어오른다. 그러다가 아무리 뛰어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뚜껑 높이까지만 뛰어오른다. 미물인 벼룩일망정 뛰어봤자 제 머리만 아프니 어찌 계속 뛰겠는가. 그런데 병뚜껑을 열어도 이 벼룩은 뚜껑 높이까지만 뛰어오를뿐 '탈출'은 엄두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이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 버린 셈이다.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지금 대한민국 남북교류를 담당하는 통일부 등 공직자들은 혹시 언제부터인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제재라는 전가의 보도를 쥐고 있는 유엔안보리와 미국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설정한 자기 기만적 한계를 뛰어넘어 거침없이 점프하는 ‘담대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신동엽의 시에서처럼 우리는 분단 이후 지난 70년 동안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본 적이 없다.

유리병 속 벼룩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병뚜껑이었다면, 우리들 사유와 행동의 한계는 한반도에 두리우고 있는 '지붕 덮은 쇠 항아리'인 분단체제인 것은 아닐까. 판문점 남북공동선언과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의 요체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 정상이 이제 한반도 지붕을 덮은 쇠 항아리를 들어 올려 분단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4·27판문점 선언 제1조는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작품인 싱가포르 6·12 북미수뇌회담 공동성명 제3조는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정확히 재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언급한 공동선언의 내용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촛불시민'은 알렉산더 대왕처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단칼에 베어내는 정부의 ‘거침없는 실행력’을 보고 싶다.

정부는 대북제재와 관련해 미국과 유엔안보리를 설득해 제재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또한 현재 유엔 대북제재 하에서도 개성공단 재개가 어느 범위까지 가능한지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남북정상의 판문점선언 정신에 맞춰 류경식당 여종업원 처리 문제,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는 물론, 5·24조치 해제와 남북경협에 우리 정부가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나갈 것을 촉구한다.

지난 4월 우리 예술단은 ‘봄이 온다’는 주제로 평양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를 관람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종환 장관에게 다가와 올 가을에 서울에서 ‘가을이 왔다’라는 공연을 갖자고 제안했다.

가을이 오면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에서는 북측 예술단의 공연이 개최될 것이다. 한반도에 폭염이 연일 지속되고 있지만, 가을은 올 것이다.

마침내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이 우리에게 활짝 열릴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을 뛰어넘어, 거침없이 담대하게 역사 속으로 나아가자.

■ 조민행 법무법인 동안 변호사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근무했고, 사법시험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동안의 대표 변호사로 재직중이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남북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돼 남북경협과 북방경제협력이 본격화되는 날을 꿈꾸는 '실천적 이상주의자'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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