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산업부 기자.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절묘하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사임을 표명한 시기 말이다. 권 회장은 18일 포스코 임시 주주총회에서 돌연 포스코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창규 KT 회장이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지 하루 만이다. 황 회장은 권 회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교체설’에 시달려온 인물이다.

권 회장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당당히' 성공했다. 당시 포스코 이사회 측은 “권 회장의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며 연임 배경을 밝혔다. 권 회장은 2014년 3월 제8대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이후 계열사 66개를 정리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권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지난해 포스코는 사상 최대 실적인 4조6217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당시 권 회장의 연임을 두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입김’으로 회장직에 오른 권 회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권 회장의 경영 능력을 감안하면 연임은 납득할만한 결과라는 시각도 많았다. 그만큼 회사 구조조정과 실적 개선 등 권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업계 안팎의 평가는 후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권 회장의 교체설도 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권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단 한 차례도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해외 일정인 미국 방문과 관련해 권 회장은 지난해 6월 기자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는데, 좋은 성과가 나와야 한다”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방미 사절단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업계 안팎에서 권 회장 교체설이 지속 제기됐지만, 실제 권 회장은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뜻을 거듭 피력했다. 권 회장은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교체설과 관련해 '정도 경영'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철강업계와 재계에서는 권 회장의 중도 사퇴와 관련해 ‘청와대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 의중이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교체설을 일축해온 권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퇴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정권에서도 ‘포스코 잔혹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역대 포스코 회장 가운데 연임에 성공했던 회장(4대 김만제 회장, 5대 유상부 회장, 6대 이구택 회장, 7대 정준양 회장)은 모두 정권이 바뀌면서 교체됐다. 포스코가 청와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권 회장도 예외는 아닌 듯 싶다.

권 회장은 올해 인사에서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한 박기홍 전 포스코 사장을 포스코에너지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참여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성진 전 한경대 총장은 포스코 신임 사외이사에 올랐다. 이를 두고 권 회장이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권 회장이 친(親) 정부 성향의 인사를 중용했으나, 연임을 완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포스코는 이날 권 회장의 사임 의사 보도자료를 내면서 “포스코는 뉴욕 증시에 상장됐고, 외국인 지분이 57%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주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주식회사”라고 밝혔다. 또 권 회장의 사퇴 의사 표명과 관련해 “정치권의 압력설이나 검찰 내사설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포스코는 권 회장의 돌연 사의 표명이 “건강상의 이유”라고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권 회장의 사임을 두고 “포스코가 여전히 청와대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기업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포스코 잔혹사’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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