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현 <조난자들> 발간 인터뷰…"DMZ 탈북자들의 트라우마 봐야"

'데일리한국'과 인터뷰 중인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통일학 박사. 사진=김봉진 기자 view@hankooki.com

[데일리한국 이정현 기자] 25분. 주승현씨(37·전주기전대 군사학 교수)의 인생이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이다. 북한군 심리전 방송조장이던 그는 지난 2002년 겨울밤 비무장지대(DMZ)를 내달려 탈북에 성공했다. 수년간 제3국을 전전하며 고생을 거듭하는 수 많은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분명 행운이 아닐 수 없다.

16년. 대한민국에 정착한 지 16년차인 주씨가 그동안 써온 정착 스토리는 성공에 가깝다. 소위 ‘SKY’로 불리는 연세대학교를 졸업, 대기업 입사에도 성공했고 현재는 통일학 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스펙이다.

그런 주씨가 자신을 “조난자”로 지칭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펴낸 <조난자들-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를 통해 자신을 포함한 탈북자들, 그리고 또 다른 분단의 희생자들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데일리한국은 지난 14일 상암동 사옥에서 주씨를 만나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 DMZ 탈북자의 트라우마…“JSA 탈북 오청성, 불쌍하다”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북한군 출신 오청성씨가 탈북했다. 남북 경계선을 뚫고 온 주씨도 덩달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던 주씨는 당시 보도를 “막장 드라마·국민적 관음증”으로 회고했다.

주씨는 “오청성 씨를 쏜 것은 분명 북한군이다. 그러나 그 인격을 죽인 건 우리 사회”라고 지적했다. 오씨의 신체 상태가 공개되고 최근에는 범법자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과 관련해 그는 “불쌍하다, 그 친구가 그렇게 불쌍할 수 없다”고 되뇌었다.

주씨는 자신이 이번에 펴낸 책에서도 DMZ를 통한 군 출신 탈북자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했다.

‘호출 귀순·노크 귀순’의 주인공들도 훗날 신상 공개로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감옥에 가기도 했다. 주씨는 DMZ 탈북자들의 ‘트라우마’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휴전선을 통해 한국으로 귀순한 탈북 군인 중에는 상관을 사살하고 오거나 지뢰를 밟는 등의 경험으로 트라우마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남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도 크다. 북한에서 군 탈북자는 경제적 탈북이 아닌 ‘정치형’으로 분류해 가족들에 대한 불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주씨는 “휴전선을 통한 탈북자가 나오면 비공식 용어이자 냉전시대에나 쓰이던 ‘귀순자’라는 단어가 다시 나온다”며 “반면 이들에 대한 별도의 정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탈북은 죽음의 노정”이라며 “25분만에 탈북한 나 역시 당시 느낀 죽음의 공포가 지금도 여전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데일리한국'과 인터뷰 중인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통일학 박사. 사진=김봉진 기자 view@hankooki.com

◇ 대학원 입학 소식에 용돈 쥐어주던 고(故) 황장엽

‘조난자’는 재앙을 당한 사람 또는 생존자를 일컫는다. 주씨는 오래 전부터 자신을 책 제목대로 조난자로 인식해 왔다. 다만 본인은 물론 탈북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누구라도 조난자가 될 수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주씨는 “남북 분단 상황은 그 누구라도 조난자로 만들 수 있다”며 “분단 극복과 통일이 최상의 평화이자 안보”라고 힘줘 말했다. 그동안 ‘탈북자=보수’로 여겨지던 고정관념을 깨는, 어찌보면 진보적인 주장이다.

이같은 지적에 그는 “탈북자가 특정 진영에 치우쳤다는 인식부터가 잘못됐다”며 “특히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탈북 청년들이 늘어나며 탈북자 사회의 사고도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이신행 연세대 정치학 교수의 권유로 학부생 시절에 대학원 토론 수업에 참여한 경험이 ‘민주주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

주씨가 이번 책에서 또 한명의 조난자로 기억한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도 학문을 통해 통일에 기여하는 것을 반겼다고 한다.

주씨는 생전에 황 전 비서와 교류를 하면서도 그가 이끌던 북한 인권운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공부를 해서 다른 식으로 기여하라는 (황 전 비서의) 뜻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주씨는 “(황 전 비서가) 돈을 아끼시는 분인데, 제 대학원 입학 소식을 듣더니 기뻐하며 돈을 챙겨주더라”며 “그분은 제가 공부를 해서 천천히 세상을 알아가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황 전 비서가 김대중 정권 당시 남북관계 개선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본인 스스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씨는 기억했다.

주승현 저서 <조난자들> 표지. 자료사진=연합뉴스

◇ 트럼프의 ‘탈북자 카드’ 보며 “묘한 심정”

최근 남북관계 변화는 탈북자들에게도 주요 이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 인권문제를 강조하며 탈북자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씨는 이에 “묘한 생각”이라며 헛헛한 웃음부터 지어보였다.

그는 “탈북자는 여전히 일종의 ‘카드’로 활용되는 것 같다”며 “한국 사회와 정부는 이런 때일수록 탈북자를 잘 적응시키면 된다. 기본이자 절박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주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진전된 것에 대해서도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물론 그의 주변 탈북자 중에는 승합차와 버스를 대절해 ‘김여정 잡으러 간다’는 이들도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주씨는 “북한의 방남엔 의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통일 문제는 상대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상대를 만나지도 않고 파악하겠다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며 “아는 것도 전략”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같은 연장선에서 “탈북자를 통해 북한 주민을 알 수 있다"며 "한국사회는 그동안 탈북자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며 탈북 사회에 대한 관심을 재차 촉구했다.

그 역시 연구자로서 탈북사회의 조난 상황을 적극 도운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경제통일 연구를 위해 MBA과정도 새로 시작했다. 그동안 고향 동료들의 ‘탈남’과 자살 등을 무수하게 겪은 그가 찾은 나름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주씨는 “전에는 지인들의 안 좋은 소식이 들여오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며 “히지만 이젠 전공자로 관찰자 입장에서 한발짝 떨어져 보니 오히려 면역력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탈북자 출신 전임교수를 찾기 힘든 국내 학계에서 그의 생존은 통일의 또다른 시금석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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