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北宋), '이이제이' 로 금·요나라 상대하려다 쪼그라들어

기업이든, 정치권이든 경쟁자들 간 다툼에 안심해서 안 된다

여당, 야권 내부 경쟁 즐기다가 큰코다칠 수 있음을 알아야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칼럼] 북송(北宋) 말기 휘종(徽宗)이라는 황제가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채경, 동관, 고구 같은 어마어마한 간신들이 있었다.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108명의 도적이 의기투합하게 한 계기를 제공한 인물들이다. 채경 일당이 젊은 휘종을 등극시킨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자신들을 혹독하게 핍박했던 세력들을 일거에 정리하는 것이었다. 채경은 문화예술에만 관심을 쏟고 국정은 생각지도 않으려 하는 휘종의 성격을 이용해 반대파들이 황제의 탐미적인 취향을 문제 삼는다고 속삭이면서 그들을 몰아내 버렸다. 또 채경은 어마어마한 국방 예산을 착복했다. 송나라의 북쪽 변경에서 요(遼)나라와 여진족이 다툼을 벌이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태평성대’라며 황제를 현혹시켰다. 채경은 동관과 함께 변방 부대에 지급되어야 할 군량을 빼돌렸다. 만리장성 인근에 주둔한 송나라 군대 중에는 영양 실조를 겪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채경 일파가 방위 비리로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잠깐이었다. 요(遼)나라에 대항하던 여진족의 세력이 점점 커져서 금(金)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금 황제 아골타(阿骨打)는 자신이 천신의 후손이라고 자처하고 초원의 부족들을 규합해 몰락해가는 요나라의 영토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채경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휘종에게 군대 파견을 진언할 수밖에 없었다. 환관 동관이 20만의 군대를 이끌고 북방으로 갔다.

수 년 간 국방 분야에서 전략을 세워본 적이 없는 채경의 입장에서는 금나라의 등장 자체가 새로운 리스크였다. 자신의 당파들을 규합해 대책을 논의하던 중 어느 젊은 관료가 묘안을 이야기한다. ‘요나라와 금나라는 둘 다 오랑캐입니다. 저들끼리 싸우다가 지칠 때쯤 어부지리를 취하면 됩니다.’ 희대의 잔머리꾼이었던 채경은 이때다 싶어 휘종을 꼬드겨 금나라에 특사를 파견했다. 이른바 해상연맹(海上聯盟)이라는 것을 맺어 송이 수군으로 요나라의 동쪽 연안지대를 공격하면 금이 육군으로 쳐내려 온다는 약속을 위해서였다.

이 와중 변경에 나가 있던 동관은 채경에게 밀사를 보내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이 우리가 전쟁으로 장사를 크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금나라가 요나라와 싸우는 동안 우리는 손쉽게 연경(지금의 북경)을 접수합시다.’ 이에 공감한 채경은 요나라 정벌군의 북진(北進)을 멈추고 수도에서 출발한 물자들을 다시 빼돌려 팔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요나라 군대가 의기투합해 북송 군대를 몰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동관의 20만은 잘 단련된 북방의 이민족들에게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금나라 황제 아골타는 이 사건으로 확신했다. ‘잔머리로 이이제이(以夷制夷 : 오랑캐로서 오랑캐와 싸우게 하다) 정책을 쓰는 송나라는 머지 않아 멸망하겠구나!’

내부 역량 구축하지 않은 이이제이의 허상

요나라 군대에 포위된 동관은 금 황제 아골타가 보낸 원군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도로 돌아간 후 동관과 채경은 금과의 약속을 깨버릴 수도 있는 행동을 저질렀다.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天祚帝)를 포위하여 다 잡아놓고 그의 인도를 요구하는 금(金)나라의 청을 거절했던 것이다. 화가 난 아골타는 만리장성을 넘어 송나라의 수도까지 진격했다. 두려움을 느낀 휘종은 막대한 조공과 토지를 바친다는 조건으로 금나라와 강화(講和)를 맺고, 그제서야 채경 일파를 내쳤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이미 약점이 한참 노출된 상태에서 송나라는 금나라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126년 금나라는 송의 수도 개봉(開封)을 무력으로 함락하고 휘종(徽宗)과 그 아들 흠종(欽宗)을 만주로 납치해 갔다.

그 뒤 송나라는 영토가 한참 쪼그라들어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한 남송(南宋)왕조가 이어졌다. 그러나 뒤이은 군주였던 고종(高宗)도 휘종과 흠종처럼 금나라의 눈치를 보기는 마찬가지여서 몽고족이 금나라를 멸망시킬 때까지 기를 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내부 역량을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이 또 다른 적과 갈등하는 것을 기회로 삼겠다는 지도층의 잘못된 사고가 빚은 화였다.

이이제이 정책은 오늘날 기업이나 정치권에서도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전략이다. 특히 시장 점유율이 큰 세력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후발 주자들을 견제하고자 할 때 유용한 방법이다. 요즘 자동차 기업들은 ‘스마트 카’ 시장에서의 경쟁을 빌미로 타사의 IT 계통 협력사와 대척적 관계에 있는 조직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 이렇게 되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의 경쟁 구도를 이용하여 자동차 산업에서의 적(敵)을 공격할 수 있는 구도가 생긴다.

그러나 경쟁 판도가 명확한 자동차 산업과 달리 소프트웨어 산업은 서비스나 시스템의 유형에 따라 경쟁자들이 협력하기도 하고 공동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시장 상황이 복잡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자동차 기업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산업에서의 경쟁에 기대어 생존 전략을 구축하다 보면 위기가 올 수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IT 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시장에 직접 진출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해두어야 한다. 금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요나라를 집어삼켰던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막강한 고객 기반을 갖추고 있는 IT 기업들의 공격은 가차없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범위의 경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양한 서비스와 편익으로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이 IT 기업으로 하여금 자동차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는 방편은 되지 못하겠지만 매출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이이제이 전술'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치권 또한 이런 맥락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야권 분열이 여당에게 큰 기회가 되는 것은 틀림없지만 내부 조직의 건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호재라고 보기 힘들다. 물론 야권 내부의 갈등은 그들끼리의 가치 경쟁 또는 지분 싸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으로 누군가 뛰쳐나가 새로운 진영을 구축하는 행위는 여권의 부족함과 결핍에서 기회를 읽어 ‘제3의 사업체’를 차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야권 내부 경쟁이 좀처럼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있다가는 여당이 큰코다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송나라 휘종처럼 말이다.

내부 전략과 외부 전략 사이에 균형 잡아라

지금은 모든 산업과 필드에서 압도적 1등이라고 할 만한 이가 없다. 보다 까다롭고 다양해 진 소비자의 선호로 인해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를 구축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때 리더들은 ‘내공을 다지자’며 간언하는 참모의 목소리가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할 때, 과감하게 치고 빠지기 전략을 구사하고 그들 간의 갈등을 이용하며 세(勢)를 불러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지금은 12세기 북송 때보다 훨씬 정보가 빠르고 상대방의 행동과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의사결정자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충분히 간파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부 전략과 외부 전략 사이에 균형을 잡아라. 내실 없는 이이제이는 당신의 조직을 더 큰 위험에 빠트릴 뿐이다.

■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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