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호남권에서 더민주 '사면초가' 양상… 그러나 국민의당 아성 된 건 아니다

정당 지지율 60% · 대선주자 지지율 50% 넘었는지, 압도적 총선 결과가 변수

"3대 지표로 보면 특정 정당이 호남 민심 송두리째 가져갔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조국가이든 민주주의 국가이든 예외일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동의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모든 권력과 세력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북한을 예외적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영원불멸한 건 없다.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는 문제일 뿐이다. 만리장성을 쌓고 분서갱유로 만천하의 책을 불태웠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진나라 시황제도 불로장생은 공염불이었고 사실상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는가. 중국의 역사는 진 시황제 이후 더 흥미롭게 전개된다. 강남에서 발원한 항우의 용맹함은 당할 자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력을 날로 늘었고 조직은 더 강고해졌다. 역사는 불세출의 장수인 항우를 가리켜 서초패왕으로 부른다. 가는 곳마다 승리했고, 진나라의 마지막 대장군인 장한마저도 무릎꿇게 만들어 버린다. 당대 최고의 책사였던 범증뿐 아니라 장량, 진평도 항우의 본거지로 속속 모여들었다. 당대 최고의 영웅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역사는 얼마나 잔인한가. 중국 역사 최고의 명장으로 불렸던 항우였지만 결국 대업을 이루어지는 못했다. 가장 중요한 백성들의 마음을 잡지 못한 탓이다. 유방의 시작은 매우 초라하고 유약했지만 백성을 향한 그의 심성은 남달랐다. 시황제의 폭정에 신음하면서 굶주린 백성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했고 함께 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나라 창업은 서초패왕 항우가 아니라 유방 쪽으로 운동장이 기울어져 갔다. 권력 다툼에서 억울한 최후를 맞았지만 원래 항우의 맹장이었던 한신과 범증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최고의 책사인 장량과 진평도 유방의 품으로 날아가지 않았는가. 항우의 군대가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기 전 가장 뼈아프게 들었던 노래가 고향인 초나라의 노래였다. 병사들의 이탈을 부추기는 고통스런 음악이었는데, 이를 일컬어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한다.

호남에서 더민주 '사면초가'… 국민의당 '아성' 된 건 아니다

지금 호남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사면초가이다. 호남은 최근까지도 더불어민주당(전신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이자 심장 그리고 아성(牙城)이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에게 90% 정도의 표를 몰아주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지역적 지지 기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민심은 변했고 변하고 있는 중이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고 신당 창당을 발표하자 호남 민심은 요동쳤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호남에서 신당 지지율이 껑충 뛰어오르고 안철수 의원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도 수직 상승했다.

그렇다면 호남은 이제 ‘국민의당’의 아성이자 텃밭 그리고 심장이 된 것일까. 여론으로 분석한 현재의 지표로는 속단하기 이르다. 왜냐하면 호남 민심의 변화가 특정 정당의 지지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호남의 민심을 품지 못했고 호남의 정치적 요구를 민주당이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받아내지 못하면서 빚어진 일종의 정치적 참사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렇다면 호남 패권을 판가름하는 지표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지역의 압도적 영향력이다. 즉 절대적인 지지율이다. 이른바 텃밭이라고 논할 정도의 정당 지지율은 만들어져야 한다. 다음으로는 지역의 구심점이 되는 인물의 영향력이다. 지난 대선 과정과 최근의 창당 과정에서 안 의원의 호남 지지율은 주목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과거 이 지역의 패권을 거머쥐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아직도 미흡하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조직 영향력이다. 현역 의원의 구성비가 얼마나 되느냐인데 다수의 의원이 탈당을 했다고는 하지만 전남과 전북 지역까지 광주만큼 탈당 러시가 이루어지진 않고 있다. 다수당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50~60%의 지역 의석을 장악하지는 못한 셈이다.

패권 판가름 첫째 지표… 특정 정당의 지지율 60% 넘는가?

우선 정당 지지율 지표부터 살펴보자. 지난 2012년 대선 직전 민주통합당의 호남 지지율은 60%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선거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호남 민심이 민주통합당의 텃밭이자 아성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의 지역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 지역과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경우에도 선거를 앞두고는 60% 지지율을 상회하거나 육박하는 수준이 된다. 유권자의 수와 투표자의 수가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정당 지지율은 당선을 보장하는 수준이 된다.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의 이정현 의원은 한국 선거사에 한 장으로 장식될 선거 결과를 일구어냈다. 선거 결과를 분석하는 여러 시각에서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지지율 특히 곡성 지역의 지지율의 너무 낮았었다는 것이다. 완전한 지역 정치 세력의 대체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분기점이 지지율 60%라면 아직 ‘국민의당’이 텃밭이나 심장 수준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지난 5~7일 실시하고 8일 발표한 조사(전국1021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 23%, 전체 질문 내용과 관련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원회 홈페이지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20대 총선에서 지지할 정당이 어디인지’ 물어본 결과 호남 응답자들의 41%는 ‘국민의당(안철수신당)’을 선택했고 19%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1). 2배 가까이 ‘국민의당’ 지지율이 높기는 하지만 과반을 넘지는 못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조금 낮지만 영남에서는 과반 수준을 훌쩍 넘는 것과는 대조적인 ‘국민의당’ 지지율이다. 특히 세대별로 2030세대와 40대 초반에서는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치열하게 지지율 경쟁을 펼치고 있는 점도 선거 판세와 정치 환경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다. ‘국민의당’이 호남 민심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호남의 절대 강자가 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표상으론 당연시되지 않는다. 60% 지지율을 돌파하고 지역의 절대 강자가 될지, 당분간 횡보할지, 아니면 더불어민주당의 획기전인 반전으로 치열한 경합 국면이 연출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지역 구심점 될 만한 대선주자 지지율이 50%에 이르는가?

다음은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영향력이다. 호남 지역의 민심을 묶어내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각광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이끄는 인물의 개인적 영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1995년 말 새정치국민회의가 탄생했을 때 수많은 야당 인사들이 당적을 옮긴 데는 민주당 내의 뿌리 깊은 내홍 탓이기도 했지만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매력과 선거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서 아직 호남 지역에서 압도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절대 강자는 없는 상황이다. 차기 대선후보로 지역에서의 대세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과반 이상의 압도적인 호응이 필요하다. 아직은 호남에서 지지율 50% 이상을 만들어내는 인물이 없다는 점도 특정 정당이 절대 강자로 군림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이다. ‘국민의당’ 창당 계획과 더불어 안철수 의원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이 상승 국면에 있다. 그러나 호남 출신이 아닌 안 의원을 바라보는 호남의 민심은 아직 압도적이지는 않다.

리서치앤리서치가 동아일보의 의뢰를 받아 지난 연말 12월 26~28일 실시하고 신년 1일자로 보도된 조사(전국 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 신뢰수준±3.1%P 응답률 10.4%, 전체 질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원회 홈페이지와 의뢰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어본 결과 호남 지역에서 안철수 의원이 4명 중 1명 정도의 선택을 받아 24.8%로 1위였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차범위 내인 19.7%로 큰 차이가 없었고 문재인 대표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각각 15.0%와 16.7%로 1위와 현격한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그림2). 안 의원이 문 대표와의 경쟁에서는 우위에 섰을지 몰라도 호남의 차기 정권에 대한 기대를 영구히 확보한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저울질되고 있는 대권 상황에서 유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 대표를 어느 정도 멀찌감치 제치느냐가 최대의 숙제이다. 4명 중 1명 정도의 선택으로 지역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고 보기에는 섣부르다. 더불어민주당의 탈당 인사를 다수 참여시킨 ‘국민의당’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통합 부재, 혁신 미흡이라는 문제점을 노출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 모든 사소한 갈등을 압도적인 인물 영향력으로 비켜가기엔 안 의원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이 아직 역부족이다.

총선에서 압승 결과를 가져올 인재들 갖추었는가?

마지막으로 조직 영향력 지표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서 당선되는 국회의원 비율을 볼 때 감히 지역 패권이라고 할 만하다.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창피한 일이지만 엄연히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호남 지역의 30여개 의석 중에서 적어도 과반, 많게는 60% 이상의 의석은 확보해야 호남 패권을 가졌다고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광주를 중심으로 탈당 인사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 절대 다수가 이동하지도 않았다. 1988년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은 호남 총37개 지역구 중 36개를 석권했다. 1992년 민자당이라는 거대 여당과 맞선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호남에서 전북 두 곳을 제외하고 싹쓸이 승리를 거두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1996년 총선에서 전북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 총선에서도 무소속 당선지역 4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천년민주당의 승리였다. 2004년엔 전남에서 새천년민주당 5곳과 무소속 1곳을 제외하고는 호남 민심은 열린우리당을 선택해주었다(그림3). 총선이든 대선이든 심지어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호남 민심은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었지 결코 세력을 절반으로 나눈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향후 호남 패권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나름 민심의 주목을 받았지만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향후 정국도 예측불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의 관심에서 벗어난다는 세간의 평가를 극복할 특단의 노력을 보여준다면 기회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유방의 한나라 창업이 그토록 힘들었 듯 항우가 군사를 일으켜 진을 무너트리는 과정도 천리역정(千里歷程)이었다. 세력의 변화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의 경과를 요한다. 특히 호남 패권과 관련해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의 지지율이 60%를 넘어섰는지, 지역의 구심점이 될 만한 차기 대선후보의 지역 지지율이 과반 정도는 넘는 수준인지. 조직의 영향력과 관련해서는 압도적인 총선 결과를 가져올 인재들의 구성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일이다.

지표상으로 살펴본 결과 특정 정당이 호남 민심을 송두리째 다 가져갔다고 속단하기는 이른 일이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KTX열차는 광주 송정역까지 1시간 33분이면 도달한다. 이곳에서 10여분 정도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컨벤션센터에 도착할 수 있다. 누가 더 빠른 속도로 더 자주 호남 민심을 향해 달려가는지 지켜보자.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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