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명예퇴직·희망퇴직 시도 거세져… "인건비가 경영 악화 원인처럼 위장 효과"

임금피크제 실시 은행, 신입사원 늘린다는 소식 없어… "노동개혁 기본전제 재고해야"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데일리한국=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칼럼] 명예퇴직, 희망퇴직, 혹은 조기퇴직. 이름이야 무엇이든, 정년 이전에 근로자를 내쫓으려는 기업들의 시도가 거세지고 있다. 대상 근로자와 해당 산업 모두 전방위적이다. 과거 명예퇴직의 대상은 주로 정년을 5~10년가량 앞둔 이들이었다. 최근에는 사무직 근로자 전체가 표적이 되고 있다. 현재 명예퇴직은 조선과 중공업, 해운 등 경영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분야에서만 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가히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할 만하다.

거세지는 명예퇴직·희망퇴직·조기퇴직 열풍

현재의 명예퇴직 열풍은 알려진 명분처럼 경영 악화에 근거한 것일까? 정말 인건비에 손을 대야 할 정도로 우리 기업들의 매출이나 수익성이 나빠진 것일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삼성전자를 보자. 지난 1년여 임원들을 대거 내보낸 이 회사는 이번에는 1965년 이전 출생한 7~8년차 고참 부장급들을 대거 내보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2010년을 기점으로 해서 경영 환경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실적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이 회사는 여전히 한 분기에 7조원 가까이 벌어들이고 있다.

우리 주요 기업들의 수익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0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경쟁국인 일본은 슈퍼 엔고(円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환율 효과 덕에 우리 일부 기업들은 일본 경쟁 기업들을 제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 해 17조 3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주요 기업들이 ‘단군 이래 최고의 현금을 곳간에 쌓아뒀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그로부터 5년도 안 돼 경영 위기론이 등장했다. 인력 구조조정 불가피론마저 힘을 얻고 있다. 자칭 세계 일류기업이 경제 환경이나 미래에 대처하는 능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명예퇴직이 집중되고 있는 은행권만 해도 그렇다. 고령 직원과 인건비 부담에 시달려온 주요 은행들은 매년 초만 되면 주기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행들이 실시 시기를 앞당겼다. 대상자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보험과 카드 업계까지 가세했다. 초저금리 현상이 지속되면서 금융회사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주요 시중은행은 여전히 올 한 해 1조원 가까운 흑자를 기록했다.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진의 성과급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너무 어려워 사람들이라도 내보내야겠다는 엄살과는 뭔가 맞지 않는 현실이다.

정년 연장을 앞두고 우리 기업들이 서둘러 명예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13년 4월 개정된 이른바 정년연장법(정확히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에 따라 2016년부터는 3백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60세 이상 정년이 강제된다. 그 전에 정년에 근접한 근로자들을 솎아내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얄팍한 계산만으로 최근의 명예퇴직 열풍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면 기업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기업은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려 한다.

'임금피크제' 현실과 '청년 일자리 나누기' 환상

명예퇴직 열풍이 우리 사회에 제기하는 문제는 정작 정년 연장을 앞둔 꼼수 이상이다. 보다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정부는 임금피크제의 대전제로 기업들로 하여금 정년을 연장하게 했다. 정년까지 고용은 보장하되 임금을 삭감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런데 은행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종업원의 정년 연장보다는 대거 명예퇴직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임금 피크제와 정년 연장마저 하기 싫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간 거론된 임금피크제의 명분은 이 제도로 생기는 인건비 절감분으로 청년층과 일자리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광범위한 명예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한 은행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대거 늘린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여러 이유에서 경기가 좋으나 나쁘나 일자리를 줄일 궁리밖에 하지 않고 있다. 우리 기업의 수익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0년에도 주요 기업의 공채 규모는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 노동 개혁의 대전제는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분을 일자리로 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명예퇴직 일상화로 경영진 실책 교묘히 묻게 돼"

더 중요한 문제도 있다. 수시로 고참 임직원들을 거리로 내모는 명예퇴직을 통해, 기업 경영진은 자신들의 실책을 주기적으로 근로자에게 전가해왔다. 근로자가 경영 악화의 책임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것이 명예퇴직 프로그램이다. 명예퇴직이 일상화됨에 따라 경영 악화의 주범 격인 경영진은 자신들의 실책을 교묘하게 묻어둘 수 있다. 인건비 부담이 경영 악화의 근본 원인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게 됐다.

신입사원들마저 희망퇴직을 신청해 논란이 됐던 두산인프라코어를 들여다보자. 이 회사의 수익성이 올해 하반기 들어 급전직하한 것은 2007년 미국 중장비 회사 밥캣 인수 탓이다. 49억달러(약 5조원)나 들여, 이 가운데 무려 80%를 빚으로 조달해 사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금융비용이 수익성 악화의 주범이다. 돌이켜보면 시기나 금액 모두 최악이었다. 당시 인수나 자금조달을 두고 우리 기업의 쾌거라고 자부했던 경영진의 실착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희망퇴직을 실시해 7백여명의 직원들을 내쫓으면서 경영진이 당시 판단 착오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마저 없다.

요즘 경영이 급격히 악화된 많은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경영 환경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 착오와 잘못된 전략적 판단이 근본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의 명예퇴직 열풍은 외부에서 보듯, 우리 기업의 경영 개선에 대한 결연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우리 기업 경영진의 역량이나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해 평가절하하게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프로필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대통령 직속 동아시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명지대 객원교수-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김방희입니다> 진행-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 생활경제연구소장(현) YTN 객원 해설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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