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 관여 인정' '정부 책임 통감', '총리 사죄', '일본 정부 예산 조치' 등은 성과

‘법적 책임’ 명시 못한 점, ‘최종· 불가역적’ 해결 확인, "소녀상 이전 노력" 등은 아쉬움

"독도·교과서 미래지향적 해결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 위해 새 출발 해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데일리한국=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칼럼] 지난 월요일 한일관계의 최대 난제였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합의가 도출되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나온 지 24년 만의 일이었다. 합의문에는 일본 측이 과거에 내놓은 아시아여성기금이나 ‘사사에’안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일본이 ‘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며, 총리가 공식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으며, ‘일본 정부의 예산 조치’로 위안부 분들을 위한 사업이 실시된다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한국 외교의 성과라고 할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못한 것, 이 합의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임을 확인한 것, ‘소녀상’의 이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 것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위안부 문제 합의 성과와 아쉬움 점

이러한 합의 내용에 대해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동안 할머니들과 한일 양국의 지원 단체가 요구해왔던 것에 비하면 모자란 것이고, 그러한 수준의 합의가 겨우 이제야 이루어졌느냐는 비판이다. 더구나 ‘법적 책임’은 확인하지 못한 채 ‘최종적 해결’의 언질을 주고 ‘소녀상’ 이전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지원 단체들에 대한 성실한 설명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둘러싼 현실적 여건과 사안의 경위를 고려하면 다른 평가도 가능하다. 특히 이 합의가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피력하며 위안부 문제에서도 후퇴하려는 듯한 아베 정부를 상대로 얻어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칙’을 강조하며 해결을 촉구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가 맺은 작지 않은 결실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합의 배경에 지난 한국 정부의 일관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영삼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제기해서 고노담화를 이끌어냈다. 김대중정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라는 문구를 처음으로 한일 간의 공동선언에 포함시켰다. 노무현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며 별도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이명박정부는 한국 외교의 부작위 문제를 질타했던 헌법재판소 결정을 받아 대일 외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그 어느 정부보다도 강력하게 촉구했다. 그 과정에서는 ‘독도 방문’이라는 강수를 두기도 했고, 그 결과 이번에 합의된 내용의 기초가 이 때 마련되었다. 그렇게 볼 때 이번 합의는 박근혜정부의 단독 작품도 책임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아시아여성기금 이후 이러한 ‘발전’이, ‘원칙’을 잃지 않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오신 할머니들과 지원단체들 그리고 연구자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일구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들은 민주화 이후 성장한 시민사회의 역량에 뒷받침된 것들이다.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역량이 위안부 문제를 통해 분출했던 것은, 위안부 문제에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의 역사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병합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한민족의 정통한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당한 사건이었고, 그 과정에서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탄압과 회유와 감언이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개인사에는 이러한 민족의 역사가 중첩된다. 할머니들은 강압과 회유와 감언에 의해 위안부가 되어 인간의 존엄을 부정당하는 고통의 개인사를 겪으셨다. 그렇기에 한국인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 개인이 당한 개인의 피해 사례로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 책임론 놓고 '법적' '도의적' 책임 논쟁 의미

우리가 ‘법적 책임’에 큰 무게를 두고, 이를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일본은 청구권 협정을 들어 이 문제가 법적으로 완료되었다는 입장을 고집하며 ‘도의적 책임’에 입각한 해결에 매달려 왔다. 결국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이토록 장기화되었던 것은 일본 국가의 ‘법적 책임’을 둘러싼 공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다가 노다 정부 말기 일본 측에서 ‘도의적’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할 방침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태도가 표명되었다. 한편 ‘법적 책임’이라는 문구를 고수하던 지원단체에서도 유연한 자세가 표명되었다.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면 법적 책임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며, 이를 기초로 사죄의 증표로서 배상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종래 주장되어 왔던 ‘법적 배상’이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회피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위안부 문제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측은 ‘도의적’이라는 말을 빼고, 한국 측은 ‘법적’이라는 말을 빼서 ‘책임’을 언급하는 것으로 겨우 타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책임’이라는 문구에 대해 해석 차이가 증폭되어 양국의 시민사회에서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양국 정부가 이번 합의를 의심하게 하는 행동을 삼간다면 이번 합의는 한일관계를 호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 한일관계는 양적 성장에서는 성숙한 관계에 들어서 있다. 정상 간의 소통이 막힌 상황에서도 한일관계가 이 정도로 유지된 것, 그리고 더 이상의 악화를 막고 관계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양국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기싸움은 50주년을 맞이한 한일관계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겪은 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독도·교과서 해법은?… 동아시아 공동체 위한 새 출발 기회로

물론 양국에는 아직도 교과서 문제와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가장 다루기 어려운 최대 현안이 타결된 것을 계기로 양국이 이들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위축되었던 양국 시민사회의 교류, 특히 문화와 인적 교류·관광 등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서 경색 국면에 들어서 있던 양국 간 경제 협력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령화·저출산과 같은 공통의 과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협력 방안도 모색될 수 있다. 기후·에너지·질병·재해·재난 등 비전통적 안보 문제와 관련한 협력도 개시될 수 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양국 간에 협력이 확대되면 이미 수습 기미가 보이는 혐한류 기류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 안보법제가 통과된 이후로는 한국에 대한 설명 부족 등으로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의 안보 협력을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양국 간에 정치적 신뢰가 쌓여가면 북핵 문제의 해결과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공세적 해양 정책 등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하며 동북아의 안정을 위한 한일 간 협력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의의 장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보통국가화' 움직임을 동아시아 안보 협력의 구상 속에 안착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시민사회의 접촉면이 확대 심화되고, 경제 및 안보 분야 등 그 동안 지체되어 왔던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이 정상 가동되어 양국관계가 중층화·다면화된다면,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풀어낸 국교 정상화 50주년의 해를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의 공동체 구축을 위한 새로운 출발의 해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프로필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외교학 석사, 도쿄대학 국제정치학박사- 도호쿠대학 법학연구과 교수-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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