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전 수석의 <도전의 날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2007-2013>을 읽고

'성공한 대통령' 위해선 참모의 조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개방적 자세 취해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최근 회고록 <도전의 날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2007-2013/나남>을 출간한 데 대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서평을 썼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청와대 참모의 기록에 대한 정치학자의 평가를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양 측의 동의를 얻어 서평을 전문으로 게재합니다.

[데일리한국=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평] 자동차 경주인 포뮬러 원(Formula One)에서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을 운전하는 드라이버는 고독해 보인다. 고속으로 달리면서 순간순간마다 내려야 하는 선수의 판단과 선택이 경기의 승패에 결정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 포뮬러 원은 단체전이다. 핸들을 붙잡고 차량을 운전하는 드라이버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차량 안의 운전자가 볼 수 없는 전체적인 경기 상황을 살피면서 드라이버가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알려줘야 한다. 또 누군가는 긴 시간의 경기로 인해 마모된 타이어를 교체하고 소진된 기름을 주유하며 필요한 부품의 교체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 드라이버가 핏스톱(pit stop)을 하면 준비한 대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드라이버 개인의 경기로 보이기 쉽지만, 이처럼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는 단체전이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책, <도전의 날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2007-2013>을 읽으면서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가 생각이 났다. 대통령제에서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대상은 대통령 1인이며, 따라서 정책 결정에 대한 권한 및 그에 대한 책임 역시 모두 대통령 혼자서 다 갖는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대통령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동관 전 수석의 책을 읽으면 대통령의 역할은 포물러 원 경기 무대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차량을 운전하는 드라이버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포뮬러 원 경기에서 우승하는 드라이버가 그렇듯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적절할 때 좋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능한 조력자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다시 말해 이 책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대통령제는 대통령 1인의 지배가 아니라 대통령과 참모들 간의 협치(協治)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옳은 판단과 결정을 위해서는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참모들의 가감 없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진언이 필요한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수석 스스로도 ‘단체전’으로서의 대통령제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보면 단체전으로서의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좋은 인재를 고를 수 있어야 하고 또 서슴없이 진언할 수 있도록 언로를 열어놓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동관 수석 등 주변 참모들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이 수석이 대통령이나 주변의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한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대통령의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들으려 하지 않거나 대통령의 의중만 헤아리게 만들거나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분위기였다면 이 수석이 아무리 뛰어난 정무적 감각과 역량을 갖고 있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유능한 참모의 조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유능한 참모의 역할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역시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촛불 시위로 지지도가 크게 낮아졌고, 특히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조문 정국으로 한때 지지율이 20%선까지 떨어지면서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 때 ‘중도강화론’과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다. 이는 이 책에서 이 수석이 표현한 대로 “MB다움의 회복, 이명박스러움으로의 복귀를 말한다”로 설명되었다.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이 제시된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빠르게 상승했고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이 수석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있다. 이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로 어려움을 겪던 무렵에 이동관 수석은 박형준 정무수석과 함께 정치학·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들 10여명을 아침 일찍 청와대로 불러 대통령에게 조언하도록 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그 때 함께 초대된 적이 있다. 대통령은 듣기만 할 것이니 참석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라고 요청받았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가 나왔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듣기만 했다. 그 후 그 모임은 '중도실용'으로의 정책 전환을 위한 좋은 명분을 주었다.

이 책에서는 ‘실패’나 ‘정치적 어려움’을 겪었던 일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오늘날의 정치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파동’을 경험하고 나서는 “청와대나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도 언제든 국회에서 좌절될 수 있는 한국의 정치 구조상 대통령의 리더십만으로 모든 현안을 돌파할 수는 없다. 집권당 내에 대통령이 지향하는 국정 어젠다를 뒷받침할 정치세력이 확실히 뿌리내려야 하는 이유다"(129쪽)라고 적었다. 광우병 촛불 사태 이후에는 “진정한 소통은 단순히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그 생각을 이해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언어’ 못지않게 ‘어머니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117쪽)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국정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귀중한 교훈이다.

이처럼 이 책은 자신이 대통령을 모시면서 겪었던 귀중한 경험과 그로부터 깨달은 중요한 교훈을 담담하게 기술한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 대통령이 재임 중 성공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대통령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참모 간의 관계가 상호 간에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정치부 기자,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홍보수석 그리고 '스핀닥터' 역할까지의 다양한 경험이 이 책 속에 잘 녹아 있다. 오랜 기간 동아일보에서 일했던 기자로서의 ‘글발’은 이 책을 통해서도 잘 느낄 수 있다. 많은 정치인들의 책에서 보듯이 자칫 건조하거나 딱딱해지기 쉬운 개인의 정치적 경험담을 매우 흥미롭고 읽기 쉽게 잘 기술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칭찬 받은 일뿐 아니라 혼나고 욕먹었던 일까지 솔직하게 기술한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였다.

이전 정부 시기 때의 일이지만, 사실 이 책 속에 담겨진 많은 내용들은 현 정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간의 관계는 대체로 ‘단절적’이어서 이전 대통령의 정책이 그 다음 대통령 시기에는 계속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모든 대통령이 재임 중 겪게 되는 문제는 대통령마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전 수석이 이명박정부 때에 겪었던 경험은 오늘날의 청와대에도 매우 귀중한 조언과 교훈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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