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시한 자주 지키지 못해 '불법 국회' 비판…선거구 획정 문제가 대표적

IMF 경제 위기와 유사 상황…연내 노동·경제 관련 법안 처리 여부 주목

계류 법안 1만 건 넘어…'국고 잠식' 지탄 받지 않도록 입법 의무 다해야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데일리한국=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칼럼] 제19대 국회의 최후의 정기회는 12월 9일로 끝났다. 그동안 제19대 국회는 2012년 7월 임시회를 시작으로 2015년 정기회까지 4회의 정기회와 23회의 임시회를 열었다. 본회의 무단 결석자는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110명까지나 되었다. 110명의 결석자 수는 아마 역대 최다였을 것이다. 입법할 양도 많았으나 옳게 일하지 않아 법안 가결률은 35.5%에 그쳐 역대 국회에서 가장 나쁜 입법 실적을 보였다. 9일까지 총 1만7309건의 법률안을 발의해 이 가운데 6158건 처리에 그쳤다.

입법 시한 못 지켜 '불법 국회' 비판…선거구 획정 문제가 대표적

헌법과 국회법이 규정한 입법 시한까지 지키지 못하여 '불법 국회'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2월 3일 0시 45분쯤 2016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켜 헌법이 정한 시한을 지켰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시한인 2일 다음날 개회 일자를 변경하여 통과시킨 것으로 45분 지각한 위헌적인 통과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금년도 예산과 내년도 예산이 헌법이 정한 기한을 간신히 지키는 모양새를 취한 것은 헌법사항이어서 국회선진화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당은 이 헌법 규정을 무기로 야당에게 예산안의 시한 내 통과를 요구했고, 야당은 울며 겨자 먹기로 부득이 통과시킨 것이었다. 협상을 지휘했던 문재인 대표조차 예산안에는 반대 투표를 했다.

예산안 통과 즉시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야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치개혁특위 대표에게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6일에 열린 3+3회의는 23분 만에 결렬되었고, 여야 지도부는 다음 회동 일시조차 합의하지 못하였다. 국회는 국회의원선거 6개월 전까지 획정안을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는데(공직선거법 제24조) 내년 국회의원선거는 이제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12월 31일까지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까지 못하게 될 위법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국회는 국민의 위임에 따라 법률을 제정하는 기관이다. 제19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업적 쌓기' 과시를 위해 1만 5천 건이 넘는 법률안을 제안했는데, 이 가운데 국회를 통과하여 법률로 된 것은 매우 적었다. 정부는 법률안 제안권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민생법안을 제출하였으나 야당 의원의 발목잡기에 걸려 아직까지 통과되지 않은 것이 많아 경제 공황이 닥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야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법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괴물이 있어 국회의원 5분의 2에게 '입법 거부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입법 거부권을 주고 있는데, 이는 국회가 시행 가능하지 않는 재정법률이나 복지법률을 만들 경우 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고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이 제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입법의 지도자로 인정되어 법률안 거부권이 인정돼 있다. 그래서 한국 헌법에서도 대통령에게만 입법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법사위원장, 대통령·국회의장보다 막강한 '입법거부권' 행사 논란

그런데 국회의원의 5분의 2 소수에게 입법 거부권을 준다고 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 입헌주의에 위반되는 것이다. 국회는 국민이 뽑은 다수의 의원에 의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것인데, 소수의 의원에게 입법 거부권을 주는 것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헌적인 법률이다. 미국에서는 국회의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야가 나눠먹기를 하고 있어 문제이다. 특히 법제사법위원장을 야당에게 주어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률안조차 법사위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법사위에 상정하지 않거나 의장에게 심사보고하지 않아 국회의 법률안 심의권을 훼손하고 있다. 이것은 법제사법위원장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장보다도 막강한 입법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는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불법ㆍ위헌 행위이다. 이것이 국회에서 관례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국회의 위헌ㆍ무법을 폭로하는 것으로 국회를 불법기관으로 만드는 징표로 되어 있다.

국회의장은 국회의원에 의하여 선출되며 헌법상 국회의 대표자이며 의사를 정리하고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게 되어 있다(국회법 제10조). 그는 본회의의 의안상정권을 가지고 의사일정을 작성한다. 과거의 국회법에서는 의장의 본회의 안건 직권상정권을 넓게 인정하고 있었는데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이를 많이 제한하여 국회의장을 국회의 형식적 수장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국가기관 중 제2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는 것은 3권분립 원칙에도 위배될 여지가 있다. 지난번 예산안 통과 시에는 정 의장이 지도력을 발휘하여, 여야가 처리를 합의하였으나 야당이 상정을 반대한 의안을 직권상정하여 중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야당 지도부의 묵인 하에 행해진 것이다.

IMF 경제 위기와 유사…노동·경제 관련 법안 처리 여부 주목

야당이 상정을 반대한 노동관계법 등이 12월 10일에 다시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그런데 야당이 0.3% 밖에 안 되는 '귀족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여 상정을 반대하는 경우 제19대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야당이 합의 처리 약속을 어기는 경우 처리 방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밖에 없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한다면 야당의 반발이 심할 것이고, 헌법상 권한쟁의 등 소송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위기가 과거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발발 전과 유사하므로 1998년과 같이 귀족노조의 파업이나 폭력 시위가 계속될 경우 IMF 위기가 다시 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의 타당성은 충분히 인정될 것이다. 만약에 국회가 입법하지 않으면 정부가 경제 위기를 이유로 재정ㆍ경제긴급명령을 내리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사실 국회는 입법권을 가지고 있으나 입법 절차에 대해서는 많은 제약이 있다. 국회 입법권 행사의 적정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의장은 국회 상시 운영을 위하여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여 연간 국회 운영 기본 일정을 정하여야 한다(국회법 제5조의2). 결산 심사나 예산 심의를 위하여 시간이 충분히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국회 상임위원회 등이 열심히 일하면 국회 자신이 제정한 법정 시한에 맞추어 입법이나 의사처리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기분 나쁘면 회의를 보이콧하고 정당 내부 당쟁에 골몰하여 국회에 결석하곤 하여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본회의가 있는 날에는 날치기로 50건 이상의 안건을 통과시키는 것이 관례이다. 이에 국회 법사위원장은 의원들의 주 5일 국회 상주를 의무화하기 위해 소위 출석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국회의장에게 제의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학교에 출석하게 의무화되어 있는데 국회의원이 회의 출석 의무를 저버리고 국회 밖에서 방황하고 있다니 이러한 국회의원들을 국민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1만 건 넘는 계류 법안 폐기될 듯…'국회 망국론' 해소 노력해야

지금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법률안과 의결안 등은 1만 1천 건이 넘는다. 12일 10일부터 3월 20일까지 4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의하여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만약에 내년 임시국회에서 이러한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2016년 5월29일에는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에 그동안에 제출된 법률안과 기타 의안은 폐기되고 만다.(헌법 제51조 단서). 4년 간 행해진 심사자료나 의사일정이 모두 휴지화된다. 이렇게 되면 국력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의무는 다하지 않고 억대의 세비를 받으며 입법조사비 등과 8명의 보좌진의 봉급까지 챙기는 것은 국고 낭비의 극치다. 국고 잠식의 장본인인 국회의원을 300명이나 두고 그 많은 특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 주권자인 국민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제19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최고조에 달했다. 국회의원 파면권과 국회 해산권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내년 4월까지 국회의 입법 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국민들의 분노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국회의원은 남은 임기 말까지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 '국회 망국론'의 원흉으로 지탄받지 않도록 입법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프로필
서울대 법대, 뮌헨대 유학(헌법학), 서울대 법학박사- 서울대 법대 교수-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헌법연구소장- 탐라대 총장-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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