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가 몰락한 이유는 통합·타이밍에서 실패… 요즘 야권은 항우 상황과 유사

야권 신당이 내년 총선 때 '유방'처럼 성공하려면 5가지 전제조건 충족시켜야

호남 통합력, 이념적 차별화, 구심력 있는 인물, 전국정당, 핵심 메시지가 중요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서초 패왕인 항우는 중국 역사에서 명장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역사가들의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항우는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잡힌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 시황제의 통치 말기는 어지러운 혼란기였다. 만리장성을 쌓고 책을 불태우며 백성들을 핍박하고 고혈을 뽑는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중국을 통일한 것도 잠시, 통일 이전 작은 제후 국가였던 세력부터 시황제의 진나라를 상대로 분연히 일어섰다. 초나라의 후손인 항우는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다시 중국 전국을 통일하기에 손색이 없는 명장이었다. 진나라 최고였던 장한 장군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기판의 초나라 왕이 항우를 일컫는 것이겠는가. 비슷한 시기에 훗날 한나라의 고조가 되는 유방도 진나라 대항세력으로 등장한다. 유방의 등장과 함께 진나라 말기는 항우와 유방의 시대가 되었다. 마치 양김 시대(김영삼-김대중)와 다름없었다. 전장에 나서면 유방마저도 항우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항우의 무용담은 각종 이야기의 모티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인 패왕별희(覇王別姬)는 항우와 그의 연인이었던 우희와의 사랑과 이별을 배경으로 한다.

요즘 야권은 유방에 밀려 몰락한 항우의 상황과 유사

승승장구하던 항우의 몰락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부터 찾아온다. 유방이라고 하는 경쟁자와 전국을 다시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다. 이유는 통합과 화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 극복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데 있다. 항우가 만약 상당한 군사력과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한신, 영포와 협력하여 유방을 공격했더라면 천하는 항우의 손아귀에 쥐어졌을 것이다.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고 역사가들은 항우를 승리자로 기록했을 터이다. 열 번 중 아홉 번의 싸움에서 이기고 결정적인 단 한 번의 싸움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 되어버렸다.

항우의 막판 상황처럼 요즘 야권은 위기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깊은 내홍에 빠져 있다. 항우에게 없었던 협력과 화합 그리고 통합을 발휘한다면 새누리당에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항우 대신 유방을 찾았던 것처럼 유권자들은 새로운 선택지를 찾으려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유권자의 사랑을 회복할 기회를 놓친다면 비주류가 주도하든 그렇지 않든 유권자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 유방과 같은 새로운 세력의 탄생이 말처럼 쉬운 것일까. 유방이었기 때문에 항우에게 이겼다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유방은 항우보다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기존의 정치세력인 진나라와 그리고 초나라와도 다른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항우의 사람이었던 한신, 영포 그리고 한나라의 시대가 열리고서도 명전략가로 활약한 항우의 책사출신 진평까지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그리고 항우와의 대결 막바지에 휴전 협상을 벌인 이후에도 거침없이 전력을 재정비하여 결국 해하전투에서 항우의 죽음을 끝으로 전쟁을 끝내지 않았는가. 다른 세력에 대해서는 통합과 화합이 있었고, 일에 있어서는 전략적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항우가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모습이라면 신당은 얼마나 유방의 형상을 갖추고 있을까. 신당 출범의 여러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은 미풍에 그치고 있다.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지금의 모습으론 별 승산이 없다. 신당이 기존 정당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호남을 통합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이념적 재확립을 통해 기존 정당과 이념적으로 차별화된 모습을 가져야 한다. 유방 같은 구심력 있는 인물이 당을 이끌어야 한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형태로 나누어지지 않는 탈계파의 지역적 통합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당의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각인시킬 핵심 메시지(Key Slogan)가 확보되어야만 한다.

신당이 성공하려면 우선 호남의 통합적 영향력 확보해야

신당이 내년 총선에 성공하려면 우선 호남 통합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 신당 출범은 주로 호남 지역과 호남에 기반을 둔 정치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남 지역이 당장 정치적으로 분열되거나, 새누리당이 쪼개질 분위기는 감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신당에 대한 관심은 주로 호남 지역으로 국한된다. 우선 숫자상으로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서 호남 지역 지역구는 이 중 10% 정도인 30여석에 그친다.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견제력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절대적인 지역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호남 지역의 절대적인 영향력 확보는 불가피하다. 신당에 대한 기대가 유발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항우가 백성들의 민심을 잃었듯 지역의 맹주였던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지역 지지율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율 추이 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지난 대통령선거 직전인 2012년 12월 10~12일 실시된 조사에서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의 호남 지지율은 58%였다. 그러나 지난 10.28 재보궐 참패 이후 실시된 조사에서는 호남 지지율이 32%에 그쳤다. 무려 26%포인트의 지지율이 날아가 버렸다(그림1).

최근 조사에서 호남지역에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응답은 40%에 육박한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호남 지역 지지율을 상실했지만 신당이 완전히 이를 대체하지도 못한 상태이다. 마치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호남 지역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벌인 장면과도 흡사하다. 당시 호남 지역 유권자들은 깊은 정치적 내상을 입었고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다 표차로 참패했다. 항우가 유방과 협력했던 그 짧은 시기에 진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처럼 통합과 화합 없이는 얼마나 힘든 싸움이 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통합민주당으로 통합 세력이 되었을 때 바로 2010년 지방선거처럼 호남 필승이 가능했고 전국적인 선전이 가능하지 않았는가. 97년 대통령 선거를 일년여 앞두고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리고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맞이했던 지방선거에서조차 호남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었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으로서는 호남의 압승이 선거전쳬 성적의 필승 공식이 되어왔던 셈이다. 천정배 의원이든 박주선 의원이든 박준영 전 전남지사이든 신당의 가장 당면한 과제는 호남의 통합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 있다.

기존 정당의 '카피 정당' 되면 안돼…이념적 차별화 해야

다음으로 신당이 내년 총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당과 이념적 차별화가 가능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극심한 이념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와 집권여당을 향해서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서는 호응받지 못하는 극단적 진보성을 내려놓고 대부분의 국민 그리고 대부분 유권자들을 겨냥한 ‘중원 전략’을 주문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신당의 해법이 있다. 기존 정당의 짝퉁 정당이나 기존 정당의 2중대 또는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비롯된 급조 정당의 모습으로는 환영받기 힘들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애플 컴퓨터를 그리고 아이폰을 내놓을 때처럼 미소가 번지는 청량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 내가 기다려온 정당이야’라고 무릎을 칠 수 있는 정치 세력이라야 한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지난 6월 12~30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일대일면접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우리나라 정당 중 가깝게 느끼는 정당이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6명 이상인 62.9%는 ‘없다’고 응답했다. 어떤 정당이든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신당은 기존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고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기존 정당과 별 차이 없는 정치적 수사는 공분만 불러올 뿐이다. 기존 정당의 ‘카피 정당’ 같은 이념적인 접근도 철저히 거리를 두어야 한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조사에서 분석한 우리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층이 절반에 가까운 47.4%였다(그림2). 10년 전인 2005년과 비교하면 거의 20%포인트 늘어났다. 유권자들의 절반이 중도층이고 그들 대부분이 기존 정당에 대해 좌절하고 실망했다면 신당으로서는 반전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보수다 진보다'로 대립 갈등해온 정당들에 식상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신당이 가야할 길은 중도층 공략이다. 그들이 목말라 하는 정책과 삶을 정조준해야만 신당에도 희망이 있다.

신당의 구심력 확보하기 위해 큰 인물 있어야

총선에서 신당이 성공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구심력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아무리 신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진 환경이라고 해도 이를 주도할 인물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1997년 대선을 2년여 앞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은 인상적인 전투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영삼정부에서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등 연거푸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아무런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했다. 이러한 무기력한 모습에 많은 야당 정치인들이 개혁과 변화를 부르짖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탈당과 신당 창당에 대한 시도는 몇 차례 있었지만 정작 실천되지는 않았다. 결국 야권의 당면한 위기 극복을 주도한 인물은 외국에서 돌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제야 야권은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신당의 이름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구심력이라 함은 기존 정당을 대체할 정도의 대중적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완벽한 호남 통합 능력과 당대 최고의 대중적인 지지 기반을 가진 구심점이 되었다. 신당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구심적인 없다는 데 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유력한 후보가 있어야 유권자들은 신당의 미래에 의심이 없어진다. 현실적으로는 구심력이 있어야 기존 정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른바 비빌 언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주간한국의 의뢰를 받아 지난 9월 11~13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어본 결과 문재인 대표가 17.6%였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16.8%로 나타났다. 손학규 전 대표는 13.4%, 안철수 전 대표가 12.9%였다(그림3).

1995년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단일 구심점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손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참여하게 될 경우 또는 상징적으로라도 박지원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참여하게 될 경우 연합 구심점의 영향력은 예상을 초월한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만 놓고 본다면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대표의 참여 여부가 신당의 성공여부에 결정적일 수 있다. 당장의 경쟁력뿐 아니라 미래의 영향력, 잠재된 영향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는 정동영 전 장관(2007년 대선후보), 정세균 전 대표, 김부겸 전 의원, 박지원 의원의 참여 여부도 신당의 역동성에 차이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지역 정당' 한계 벗어나 '전국 정당' 지향해야

네 번째 신당 성공의 전제 조건은 지역적 통합성이다. 신당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 중의 하나는 호남에만 영향력을 가지는 ‘지역 정당’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신당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지역적 기반이 호남에 있고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역 정당의 명멸에 대해 이미 학습한 바 있다. 충청권을 배경으로 했던 정당인 신민주공화당이 자유민주연합을 거쳐 선진통일당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역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전국 정당으로 확장되지 못하는 한계를 확인했었다. 숫자의 정치학으로 보더라도 대부분의 의석수가 걸려 있는 수도권 영향력 없이는 전국 정당화의 희망이 요원해진다. 수도권이 어떤 지역인가. 각 지방의 인물들이 뒤섞이고 다시 결합하는 곳이다. 신당의 경로의존성이 지나치게 호남에만 치우친다면 전국 정당 성격을 지니긴 더욱 힘들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을 통한 지역적 통합은 매우 중요해진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타이틀로 영남 지역 교두보 마련에 기여해온 조경태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신당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그래서 더욱 부각된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9월 11~13일 실시한 조사에서 ‘신당 창당에 대한 반응’을 물어본 결과 충청에서 긍정적인 의견은 29.4%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TK지역과 PK지역 또한 각각 29.9%와 27.4%로 30%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호남에서는 40.6%로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으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지역 편향적인 유권자 반응으로는 전국 정당이 될 수 없다(그림4). 전국 정당으로의 이미지 변신이 되지 않으면 정당 지지율 상승은 곧바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차기 총선에서 유의미한 의석수 확보는 더욱 어려워진다.

신당의 존재 이유 보여줄 핵심 메시지 지녀야

신당이 총선에서 성공하기 위한 마지막 조건은 핵심 메시지(Key Slogan)이다. 가장 함축적으로 어떤 정당인지를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적 성격이 강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일반적인 유권자들에게는 진보적인 성격이 강하다. 전통적으로 어느 정도 이념과 노선 차이를 보이는 두 정당은 지역을 기반으로 이미 나름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별도의 설명 없이도 두 정당의 성격은 유권자들에게 전달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러나 신당은 어떤 정당인지 쉽게 정체를 알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언론에서 ‘천정배 신당’이니 ‘박주선 신당’ '박준영 신당'이니 하는 식으로 신당 주도자의 이름을 넣은 수준에 급급하다. 문국현 전 의원이 만들었던 정당은 당명조차 가물가물할 정도이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는 ‘보통 사람들의 시대’라는 핵심 메시지로 유권자를 결집시켰다. 92년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는 ‘문민시대 개막, 군사정권 종식’이었다. 얼마나 잘 이해되고 공감되는가.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준비된 경제 대통령, 수평적 정권 교체’였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은 ‘준비된 여성 경제 대통령’이었다. 경제라는 테마는 직전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지만 ‘준비된’이라는 부분과 ‘여성’이라는 대목에서 차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사례였다. 신당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마도 기존 정당에 실망하고 일상에 지쳐 축 처진 어깨를 똑바로 세워줄 수 있는 청량제 같은 말 한마디(메시지)를 기대하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퇴근하면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우리 미생(未生)들의 삶에 담아야 할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5가지 조건 충족 못하면 신당도 '유방' 아닌 '항우' 된다

항우는 유방에게 쫓겨 오강에 다다랐다. 들판을 뒤덮었던 병사들은 채 몇십 명밖엔 남지 않았다. 배를 타고 피신해서 훗날을 도모할 수도 있었지만 항우는 차마 강을 건너지 못했다. 천하를 호령했던 불세출의 영웅 항우에게 회한이 엄습해왔다. 강동 자제 8000명을 이끌고 거병했지만 유방에게 참패해 목숨을 구걸해?하는 상황에 이른 자신의 모습이 몹시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처음 군사를 일으켜 출사표를 던졌을 때는 분명 천하는 항우의 손에 놓여 있었다.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린 진 시황제의 폭정은 항우에게 분명한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서초 패왕이 되고 나서는 아직 나라의 체계도 세우지 못한 풋내기 유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인이 되어 있었다. 다 잡은 토끼였다. 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되는 승자는 항우가 아니라 유방이었다. 통합과 화합의 ‘대전략’을 무시하고 간과한 과오였다. 한신과 영포와 함께 하지 못했고, 여세를 몰아 백성들의 마음을 껴안아야 하는 혁신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위기이다. 아니 야권이 위기이다. 정부와 집권여당을 견제하고 국민들의 민생을 살펴야 할 야권이 무기력해졌다. 새로운 세력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러나 준비 없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거론한 5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신당도 이러한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새정치연합이 맞닥트렸던 위기가 찾아오지 말란 법이 없다. 새정치연합도 새로 탄생하게 될 신당도 변해야 할 때와 기회를 잡아야 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항우의 장탄식 의미는 크다. ‘내가 군사를 일으켜 8년 동안 70여차례나 싸우면서도 패하지 않았다. 모든 싸움에 이겨 천하를 호령했지만 바로 여기에서 곤경에 빠졌다.(사기의 항우본기)’ 모든 일에는 천시(天時)가 있다. 야권의 귀추가 궁금해진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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