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논의로 '반기문 대망론' 다시 수면 위로 부상

반기문-김정은 회담에서 진전된 결과 나오면 '대망론 공습' 효과 거둘 수도

2대 변수는 확고한 권력의지 있을까? 청와대·친박은 '반기문 카드' 선택할까?

유성식 시대정신 이사
[데일리한국= 유성식 시대정신 이사 칼럼]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 가장 빈번히 거론되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최근 그의 방북 계획이 확인되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던 ‘반기문 대망론’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다시 무성해지고 있다. 반 총장은 23일 미국 뉴욕에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조문소를 찾은 뒤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이른 시일 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이어 "북한에서 긍정적 신호가 와서 방북 일자를 조정 중에 있다'고 말해 반 총장이 조만간 방북할 가능성이 커졌다.

반기문 총장의 방북 논의로 '반기문 대망론' 다시 수면 위로

반 총장이 방북한다면 이같은 행보가 차기 대권 도전의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의 방북 의도와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 여부, 방북 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의 회담 성사 가능성 및 성과, 그리고 그 결과가 국내 대선 판도에 미칠 영향에 이르기까지 여야와 언론의 시선은 민감하다.

그 동안 ‘반기문 대망론’을 떠받친 것은 ‘세계 대통령’ 이라는 글로벌하면서도 참신한 이미지에 대한 여론의 호의적 반응과, 박근혜 대통령과 현재 여권의 선두 주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불편한 관계 등 두 가지였다. 본인의 능력과 여권의 권력 지형이 조응하면서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다. 반 총장이 대선 승부처인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도 선거공학적으로 플러스 요인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 방북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정한 진전을 이룬다면 그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 남북관계 장기 교착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은 미국의 북핵 문제 등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감안할 때 반 총장이 거둔 성과의 극적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방북해서 한반도 문제 진전된다면 '대망론 공습' 효과

이는 기존 대선주자들에게는 두려운 외부의 공습(空襲)이다. 대선 판의 골조가 폭격으로 무너지고, 그 안에 있던 주자들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최종 승부는 이후 지상군 싸움에서 가려지는 것이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공습의 파장이 의외로 크고 결정적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반 총장은 혹시 그때까지 대권 도전 결심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지자들과 청와대·친박의 설득 또는 압력에 의해 레이스에 뛰어드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정몽준 전 의원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하는 ‘뜻밖의 쾌거’에 고무돼 대권 도전을 결행했듯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관건은 물론 방북 성과 여부이다. 반 총장이 방북 시 김정은과 만나 북핵과 6자회담 재개, 남북관계 개선 등 현안에 대한 가시적인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통일 시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을 수 있다. 이 회담이 김정은에게 사실상 국제 외교 데뷔 무대라는 점을 중시하는 이들도 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아버지 김정일이 ‘괴팍한 은둔형 지도자’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벗었듯이 김정은도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 유연한 자세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다.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세계가 주목하는 북핵, 인권 문제 등은 북한이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슈여서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김정은이 반 총장의 방문을 북한 입장, 즉 미국의 적대 정책 중단과 평화협정 체결을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현재로선 회담의 결과와 파괴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방북이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에 연말 정국은 반 총장으로 인해 크든 적든 다시 출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반 총장이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차기 대선 레이스의 상수로서 자리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론의 주목도가 전과 달라지면서 내년부터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항상 그의 이름과 순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반 총장은 방북 변수가 아니었어도 여권의 강력한 대권 잠룡으로 여겨져 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개인적인 장점에다가 ‘대세’의 경지에 오른 주자가 아직 출현하지 못하고 있는 시장의 유동성이 더해져 그의 주가는 공식 상정 전임에도 불구하고 고가(高價)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방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반 총장은 대선 출마를 위한 자산을 상당 수준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반 총장 자신의 확고한 권력의지 유무가 1차 변수

따라서 ‘반기문 대망론’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외부의 상황 요인보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열정, 즉 본인의 권력 의지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정치 환경 변화가 그의 결심에 긍·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대선은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는 각오로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으면 견뎌내기 힘든 무대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것은 본인 마음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교관인 반 총장이 과연 대선 판에 뛰어들까. 반 총장은 외교부 주변에 “반(潘)의 반(半)만큼만 해라”는 말이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이었다. 하지만 외교와 현실정치는 거리가 먼, 서로 정 반대편에 있는 분야라고 흔히들 말한다. 실제로 정치는 구성원들의 사고와 일처리 방식, 조직 문화 등에서 외교와 아주 다르다. 그것도 사생결단의 싸움이 벌어지는 대선 판이다. 외교관의 영혼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반 총장과 대선, 일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지인들 사이에는 내년 12월 임기를 마친 반 총장이 자기 몸을 불사를 또 다른 일을 찾을 것이고, 그것이 대선 출마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반 총장은 이런 말을 들을 만큼 평생을 업무에 미쳐서 살았다. 여론과 여권의 출마 압력이 그의 건강한 성취욕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반 총장은 퇴임 후 그냥 조용히 지내지는 않을 분”이라며 “워낙 신중하고 치밀한 성격이어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명분과 현실이 뒷받침된다면 결단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정치와 선거는 불가피하게 적을 만들고 그들을 이겨야 하는 게임이다. 특히 대선은 당내 후보 경선에서부터 내부 적들을 쓰러뜨려야 하고, 본선에선 상대 정당과 후보는 물론이고 그 후보를 지지하는 절반 가까운 국민과 마주서야 한다. 대선이 혹독한 것은 쟁취할 권력의 크기만큼 적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선거 판의 적은 보통의 경쟁자와 다르다. 훨씬 노골적이고 독하다. 대선의 후보 검증은 사실만 갖고 하는 게 아니다. 반 총장이 이런 미증유의 상황을 감내하고 돌파할 수 있을까. 부인 유순택 여사는 출마에 매우 부정적이라고 한다.

청와대·친박, '반기문 카드' 선택할까?…현재 '후보군 다변화' 선호

반 총장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외부 변수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청와대와 친박의 움직임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이 차기 후보로 반 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다닌 것은 오래 전부터다.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의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현재까지는 다수설이다. 청와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의 방북이 청와대의 디자인에 따라 입안되고 추진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국민적 지지가 높아도 정치권의 내응(內應)이 없으면 무위가 돼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점검 포인트다. 현직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지원이 현실화된다면, 반 총장으로서는 마음이 끌릴 수 있다. 선거 공학적으로 박 대통령의 절대 기반인 TK(대구·경북)와 자신의 출신지인 충청권의 지지가 쏠린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말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이다. 청와대와 친박이 반 총장에게 우호적이기는 하나 그것을 믿고 출사표를 던질 수는 없다. 친박은 지난해부터 당내 국회의장 후보 경선, 서울시장 후보 경선, 대표 경선, 원내대표 경선에서 밀었던 후보가 모두 지는 낭패를 봤다. 한 친박 인사는 “지금은 우리가 어떤 액션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현 단계에서 반기문 카드는 여권의 대선후보군을 다변화함으로써 권력의 조기 누수를 막는 방편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국면까지 시간이 많은 만큼 느슨한 연대감을 유지하며 여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 총장 본인의 의중이나 청와대와 친박의 선택, 어느 하나도 손에 잡히는 것은 아직 없다. 그렇다고 실체가 전혀 없는 신기루도 아니다. ‘반기문 대망론’은 결말을 알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이다.

■유성식 시대정신 이사 프로필
서울대 동양사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한국일보 정치부장- 대통령실 시민사회비서관,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시대정신 이사(현),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객원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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