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안심시키고, 중국을 설득할 수 있도록 '중견국' 위치에서 노력해야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흡수통일… 신뢰 통한 대북 포용 메시지 전해야"

"한반도 통일이 동아시아 모든 나라의 국익에 도움된다는 점 적극 알려야"

전재성 서울대 교수가 13일 오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협력' 컨퍼런스에서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통일 준비'에 대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편집자 주=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3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협력' 컨퍼런스에서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 속에서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발제를 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전 교수의 발제 요지를 칼럼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전 교수는 이날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부가 공동 주최하고 동아시아연구원이 주관한 국제회의에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이라며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토대로 남한이 북한을 포용할 의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북한의 공조 의지 역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전 교수는 미국을 안심시키고, 중국을 설득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만의 '중견국'(middle power) 위치에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데일리한국=전재성 서울대 교수 발제 요지/ 정리=김소희 기자] 한반도 통일은 남북한 모두가 오래도록 염원해온 것이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많은 분단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게 되면 인구가 8,000만 명이 되고, 국토가 훨씬 넓어지게 되어 남북한 주민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현재 남한에서는 여러 세대 간의 변화가 있었고, 여러 경제적인 문제도 발생했기 때문에 통일 정책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남한은 다양한 통일 전략을 구상해야만 한다. 적극적으로 통일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사람들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은 제대로 된 통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국은 통일 준비 과정에서 통합 절차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현재 통일을 위한 여러 단계들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 속에서 한국인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 그리고 국제사회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대북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다층적인 노력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에 대한 억지력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신뢰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북한은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에 다양한 방식의 안보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한의 경우 자체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장기적인 대북 정책을 이행해야만 한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경우, 여러 반대 당파를 숙청함으로써 본인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내부적으로 힘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밑에서부터 개혁을 진행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이 상황 속에서 김정은 제1비서는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잘못될 경우를 두려워해서 적극적으로 개혁을 제언하지 못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협력' 컨퍼런스가 열렸다.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통일 준비'라는 주제로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사회를,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발제를 맡았다. 프랑수아 고드몽 유럽외교협회 선임연구위원·션 딩리 중국 푸단대 교수·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토론을 펼쳤다. 사진=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또 많은 사람들은 북한의 핵·경제 병진정책이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계속 지금처럼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면 경제적 지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전달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의 리더십은 결국 화해의 길을 택하기를 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비핵화 협상을 통해 이러한 정책을 취해야만 한다.

북한은 스스로 병진정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깨닫고, 새로운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물론, 안보도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핵무기 없이도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다른 정책을 구상해야만 하는데, 김정은 제1비서는 본인 스스로의 사고를 바꾸고 다른 노력을 취해야만 흡수통일과 멀어질 수 있다. 즉,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현재의 병진정책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통일은 상당히 많은 역설(paradox)을 갖고 있어 간과할 수 없다. 남북 간 통일이라는 주제가 자주 언급될수록 김정은 제1비서는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평화적 공존에 대한 새로운 대안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직 북한은 평화 조약과 관련해 여러 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군사력 축소 등의 제안들이 남한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남한은 자체적으로 평화 구조와 관련한 대안책을 마련한 후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남한이 한반도의 평화 체계와 관련한 여러 대안책을 낼 수 있는 건 북한의 비핵화와 군사력 축소와 같은 분야이므로 이는 평화 통일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이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남한은 북한을 포용할 의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북한 역시 공조할 만한 진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오디언스 코스트'(audience cost)를 점점 더 높여야 한다. 불가침 의도와 관련해서 침략할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고 북한을 계속 안심시켜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진정한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 북한이 무언가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면, 그것에 대해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다층적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의도를 신뢰라는 틀로 담아 북한에 전달해야 한다.

다음은 한국의 대(對)중국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중국의 경우 미국과 한국에 대해 협력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느끼는 안보 위협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너무 많은 압력과 제재들을 강조하게 되면, 중국은 북한과의 외교 정상화를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부분들을 감안해야 하고, 미중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게 볼수록 한반도 통일이 중국 입장에서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계속 통일 문제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직면하면 중국만의 기조를 드러낸다. 중국의 한 관리는 "북한에 대한 기조는 변한 것이 없다"고 비공식적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몇몇 학자들의 의견과는 달리 중국의 정책이 무조건 한반도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북한과 평화적인 공조를 원하고 있으며,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중국에 전달해야 한다. 남북한 관계 정상화가 중국에게도 분명히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중국도 북한에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다. 비핵화 자체는 공동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러한 분위기에 북한이 함께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중국도 그 부분에서 북한에 대해 압력을 함께 가할 것이다. 그렇게 한중관계를 강화하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조가 달라지게 된다.

한국이 한미관계, 한중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중국 역시도 관심이 많다. 동북아 문제에서 우리의 방향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역내 정책과 통일 정책을 구상할 때 미·중과의 이해관계 역시 따져야 할 것이다.

한미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계속 북한을 참여시켜서 경제사회의 물꼬를 트면 더 이상 북한의 비핵화를 저지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할 수도 있다. 즉, 남북 관계가 계속될수록 경제적 제재 효과가 상실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은 또 한국이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한미동맹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워싱턴은 전략적으로 인내심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압박(pressure)·제재(sanction)·외교(diplomacy)라는 세 가지 카드를 꺼내게 될 것이다. 우리 역시 포괄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북한에 비핵화와 같은 제재를 하면서도 평화적 공존과 중국과의 파트너십 구축 등을 공식화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견국 외교 정책'(middle power diplomacy)을 고수해야 한다. 이를 두고 워싱턴과 베이징은 한국의 외교는 '기회주의적 외교'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근거는 없으나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의 위험 회피 전략 등을 보면서 이렇게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의 통일 정책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한국은 한반도 통일이 동아시아 모두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적극 알려야 한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미·중 양국의 태도도 결정된다. 이론적으로 봤을 때, 지혜를 갖고 현실주의·자유주의·건설주의를 모두 활용한 균형 유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경제적인 상호의존관계뿐 아니라 정치적 균형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라이벌 관계도 인지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공동의 비전을 찾아 아시아의 공동 비전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강대국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견국으로서의 외교 역시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중견국이라는 것에 대해 실효성과 관련해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책은 역내 안보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이 갈 수밖에 없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중견국으로서의 파워를 통해 궁극적으로 동북아의 다자적 안보 협력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 전재성 서울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동아시아연구원 아시아안보연구센터 소장과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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