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현 "아베, 미국의 물밑 압박·한중 역사문제 공동 대응 우려에 어느 정도 양보"

박한규 "회담 자체 큰 의의…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어젠다'라 단기간 해결 어려워"

남기정 " '위안부 조속한 해결' 합의로 일본에 공 넘어가… 협의채널 차관급 격상을"

전옥현(왼쪽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한규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겸 국제대학장,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위안부 문제 조기 해결은 어렵겠지만 위안부 문제 등을 논의한 한일 정상회담 개최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2일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총론적 평가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일 첫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관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북핵 문제에 대해선 한·일 및 한·미·일 3국 협력을 계속해서 강화하고, 다자 차원에서도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한 양국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미국과 일본 주도로 지난달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이 참여 결정을 내릴 경우 협력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견해차를 부각시켜 각을 세우기보다는 어느 정도 해결 의지를 보이며, 우리 정부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한일 정상 간 이 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12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간의 회담 이후 3년 5개월여 만에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 개최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 그동안 양국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양국 간의 경제 교류나 우호 증진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바라보는 것에는 인식을 같이했다.

국정원 제1차장을 지낸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일 간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잘된 일"이라며 개최 자체를 높이 평가한 뒤 "예정된 회담 시간을 넘겨 1시간 40분 동안 회담을 가진 것은 양국 정상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 담백하게 애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그러나 "박 대통령의 '위안부 문제 연내 타결' 압박에 대해 아베 총리가 이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조기 타결을 위한 협의 가속화' 수준에서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서 일본이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믿기에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이 같이 합의한 배경에 대해서 전 교수는 "이번에 한국에 직접 와서 보니 그동안 일본 내에서 보고 받았던 것에 비해 우리 국민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갖는 인식의 심각성을 더 느꼈을 수도 있다"면서도 "그것보다 더 큰 배경은 아베가 미국에 외교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강하게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일본을 향해 전향적 입장을 내놓으라며 물밑에서 외교적인 압박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본은 군사력 강화 등과 관련해서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어서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전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한중일 3국의 다자주의적 측면에서도 분석했다. 그는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역사 문제에 대해 강한 어조로 일본을 비판했다"면서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중 양국의 공동 전선을 완화하고 와해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의 위안부 문제에서 전향적 입장을 내놓을 필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한일중 정상회의 의장국이 일본인데, 이번에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3국 간 진전된 모습이 나오지 않을 경우 '회의 무용론'마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내년에 좀 더 나아진 여건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해야만 아베 총리가 결과물을 도출해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국제사회에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의에서 어느 정도 양보한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겸 국제대학장인 박한규 교수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아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했지만, 한일 간에는 그 문제 외에도 경제 협력, 북핵 공동 대응 등 중요한 현안들이 적지 않다"면서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처음 개최된 이번 한일 정상회담 자체를 높이 평가했다.

박 교수는 "특히 양국의 경제 교류가 감소되는 추세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일 양국의 성장 기술 분야 관련 협력 등은 앞으로 중요한 문제"라면서 "이 같은 양자 차원의 경제 문제뿐 아니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은 양국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현안"이라며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해 협력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합의한 점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영토·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일중 동북아 3국 간에 긴장감이 조성돼 왔다"면서 "이번 한중일 3국 정상회의와 더불어 양자 간 정상회담도 정례화돼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양국의 지도자에겐 '정치적 어젠다'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타협해서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 "박근혜정부와 아베정권 하에서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문제점에 대한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한일관계의 지속성과 영속성 속에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라면서 "아베 총리의 진정성 여부도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애초부터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기대를 접고 시작했던 회담이라는 전제로 봐야 한다"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서로 인식을 공유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성과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남 교수는 "애초에 일본 내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주장을 해왔고, 이번 방한에 위안부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부(副)장관이 아베 총리를 밀착 수행하면서 '양보는 없다'는 제스처를 취해왔다"면서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존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는 점을 받아들였고 그에 대한 조속한 해결에 합의했다는 점으로 봐서 일단 공은 일본으로 넘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만약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 없이 지나갔을 경우 한국 외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상당했을 것"이라며 "일본의 대응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우리 정부 측에서는 그 부담을 어느 정도 넘겼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남 교수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은 문구 하나에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 회복 속에서 평가받는 문제이기 때문에 적당히 극적으로 이 문제를 봉합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덧붙엿다. 남 교수는 "현재 위안부 관련 양국의 국장급 협의를 차관급 정도로 격상시켜 이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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