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문재인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여론조사 공천' 놓고 파장 확산

오히려 조직 선거 조장해 현역 의원에게 유리… 역선택 막을 방법도 없어

공천 개혁은 표의 등가성 확보와 정당정치 근간 유지를 전제로 추진해야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
[데일리한국=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 기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여론조사 공천제'를 둘러싼 여당 내부의 파열음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주는 신뢰성이 적은, 이 어려운 시기에 이러한 파열음 자체가 정치발전보다는 정파의 이득을 위한 파장으로 인식되는 세태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김무성 대표가 10월 1일 당내 회의를 비롯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청와대의 '안심번호 공천제' 비판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여야 대표 합의한 '안심번호 여론조사 공천제' 파장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형태를 일부 흉내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여 여야 정당의 공천권을 전화경선을 위한 안심번호를 부여 받은 국민선거인단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일견 대의민주주의 논리에 부합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정치학 전공한 필자는 안심번호 공천제의 오류와 문제점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필자가 현실 정치에 참여했던 과거의 경험들을 되돌아보면 우리 정치 현장의 조건들이 우리의 경제 수준에 걸맞을 정도로 풀뿌리민주주의 토대가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는 쓰라린 추억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고의 지출도 이중으로 되면서 고비용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지탄도 클 것이다.

일례로 일반 국민 여론조사 결과와 당원들의 현장투표나 여론조사, 그리고 당 공천심사위원회의 면접 결과 등을 모두 고려해 각종 선거 후보자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과 여론조사 참여 저조 현상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을 정치 현장에서 자주 경험했다.

현역 의원에게 유리… 역선택 막을 방법 없어

정치 무관심이 극에 달한 한국의 현실에서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도입을 추진하는 안심번호 공천제는 지금 정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현역 의원들에게 매우 유리한 것으로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가 될 확률이 농후하다. 선거를 앞두고 행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응답률이 2-3%대로 매우 저조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과연 국민 공천이란 명분이 잘 살려질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또 다른 정당 지지층의 역선택 차단 등 민심의 왜곡을 막는 대책이 없는 제도이다.

안심번호 부여를 통해 유권자의 신분을 감추기 때문에 조직 선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조직력이 강한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당의 공조직과 후보의 사조직을 중심으로 여론 조작을 위한 갖가지 동원 탈법 사례가 평소의 애경사 문화, 각종 지역·학교 모임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우리 정치 현실이다. 이같은 정치문화의 후진성이 극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시되는 여론조사 경선은 더 광범위한 조직 동원, 정치 선전·선동, 흑색선전을 조장해 지금 양당 대표가 이야기하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이 드러낼 것이다.

여론조사로 후보 선출은 '정당정치' 포기

또 근원적으로는 민주 정치의 핵심인 '정당 정치'를 포기하는 잘못된 접근법이다. 당내의 논의 절차보다는 여론조사를 거쳐 후보를 선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당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왜소화하는 행위이다. 당의 색깔과 철학을 담은 후보를 선출하는 전제조건으로 당이 투명하고 객관적인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후보를 객관적으로 선정하는 과정이야 말로 정당정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정치권에서는 "휴대폰이 없는 고령층이 투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고, 한 사람이 두세 개의 휴대폰을 소지할 수 있는 등 많은 착오와 오류 가능성이 있어서 근원적으로 표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안심번호 여론조사 경선 아이디어는 당파의 근시안적인 정치 셈법에 의한 잘못된 접근법에서 파생됐다고 볼 수 있다.

요즘 한국의 정당 정치는 구호와 명분에서는 선진국 이상의 논리로 포장돼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정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정실 정치, 당파 정치, 지역주의 정치, 소인배 정치 등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들이다. 거기에다 구태 정치의 음산한 모습이 수면 밑에서 아직도 독버섯처럼 버티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것이다.

공천 개혁 전제는 표의 등가성 확보·정당정치 근간 유지

현재 국민 여론 흐름도 안심번호 공천제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10월 1일 오후 5시 현재 데일리한국이나 조선닷컴 등의 약식 설문조사 결과 여야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공천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천 개혁은 기본적으로 표의 등가성이 지켜지는 것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모든 유권자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대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동원된 유권자나 젊은층의 뜻이 다른 계층의 뜻보다 과다하게 반영되면 투표가치의 등가성과 평등 선거가 지켜지지 않게 된다. 또 정당 정치의 근간이 지켜지는 틀 내에서 제도 개혁이 진행돼야 한다.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 프로필
영국 헐대학(The Univ. of HULL) 정치학박사- 통상산업부·외교통상부 외무관 근무- 대만국립정치대학 국제대학 방문학자(현)-주한동티모르명예영사(현)-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현)- 방송 정치평론가(현)- 푸른정치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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