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 대중문화, 인의예지(仁義禮智) 순수함으로 일류(日流) 제쳐

일류, 장기 불황 속 폭력·섹스 등 포스트 트렌디드라마로 흘러서 실패

"인(仁)으로 하나 되는 마음의 통일을 이뤄야 한류토피아가 다가온다"

박장순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
[데일리한국= 박장순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 칼럼] 드라마와 K-pop 같은 대중문화의 전지구적 확산에서 비롯된 한류는 최근 들어 전통과 고급문화, 관광, 스포츠, 경제, 산업 등 모든 분야로 그 영역을 급속히 확장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류 관련 기관과 단체, 민간 기업들은 그들이 세운 전공과 실적을 앞 다퉈 쏟아내고 있다. 마치 한류라는 언어기호의 홍수 속으로 전 국민을 빠져들게 하는 것 같다. 이런 한류 시장의 다이내믹스를 지켜보면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움직임은 있지만 움직임의 방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있지만 움직임의 목적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혼란스러울 정도로 뛰고 있는 것일까? 한류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시아인들은 ‘한류’하면 제일 먼저 '가족 간의 화목·순수·순애보·선량함·아름다움·노인 공경·도덕·교육· 진실·정직' 등 유교의 사단칠정론적 가치를 이미지로 떠올린다. 이는 아시아인들의 기질지성이 ‘순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豕眼見惟豕,佛眼見惟佛矣)라고나 할까? 유가의 네 가지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기초로 한 한류의 순수함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아시아인들이 순수 기질지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한류의 절대선, 본연지성은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왜곡됐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한국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인,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선한 것을 선한 것으로 바라봐주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류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류(日流), '잃어버린 10년' 에 폭력·섹스로 흐르면서 도태

여기서 우리는 한류가 나아갈 방향의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한류는 아시아인들의 순수 기질지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장은 언제든지 한류를 버리고, 한류를 대체하는 제3국의 문화를 자연선택하는 엄중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는 199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가 구세력인 일류(日流)를 제치고, 아시아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시장 변화 과정을 되돌아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일류는 트렌디드라마 시대를 넘어 포스트 트렌디드라마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잃어버린 10년’의 시기와 겹치는 이때, 피폐해진 일본 경제는 많은 사람들을 집안에 가둬 놓았다. 문화 생활의 여유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 그들이 소구한 것이 극단적인 폭력과 섹스의 노출이다.

그에 반해 같은 시기 한국의 드라마는 일본의 포스트 트렌디드라마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트렌디드라마의 형식에 부모와 형제, 가족들이 등장하는 홈드라마 형태의 포스트 트렌디드라마를 완성한다. 아시아인들은 이런 한국 드라마의 건전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한류를 아시아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연선택한다. 그들의 순수 기질지성이 문화의 건전성을 소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류는 한국의 대중문화에게 시장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혼란스런 한류 다이내믹스의 목적성은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조선시대 우리의 선조들은 성리학의 이론적 체계를 완성하는 높은 학문적 성과를 거둔다. 그러면서 측은지심의 단서인 인(仁), 수오지심의 단서인 의(義), 사양지심의 단서인 예(禮), 시비지심의 단서인 지(智)가 구현되는 대동사회를 꿈꿨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그 후손인 우리가 한류 대동사회를 염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한류 대동사회는 마음의 전덕(全德)인 인이 구현되는 사회다. 인은 사랑이다. 사랑의 실천적 문화 코드는 이타와 공존을 위한 노력이다. 진화생물학에서의 이타는 타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이며, 동시에 이데올로기다. 한류 유전자의 이타는 타자인 세계인 특히, 아시아인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유전자 패러다임이다. 동시에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가치이기도 하고,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한 유전자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이타는 한류 대동사회의 핵심 이데올로기이다. 타자의 입장에서 대자(對自)와 즉자(卽自)를 바라보는 아웃사이드-인 뷰(outside-in view)의 자세다.

한류 대동사회는 하늘과 땅, 너와 나, 우리와 세계인이 우리 문화로 하나가 되는 세상이다. 한류 다이내믹스의 목적성이 한류 대동사회의 구현이라면, 이는 우리 문화의 뿌리에서 한류의 길을 찾는 최적의 자연선택이 될 것이다. 이제 한류 대동사회의 문이 열릴 날이 머지않았다. ‘이게 얼마나 간다고’ 하면서 한류를 경시했던 일부 시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도 될 때가 되었다. 우리의 삶과 역사, 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가 믿음을 가져도 될 만큼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류 대동사회의 문이 열리기 전 우리의 마음이 인(仁)으로 하나 되는 마음의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세계 인류를 향한 진정한 의미의 한류 대동사회, 한류토피아가 자랑스럽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박장순 홍익대 교수 프로필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미국 알리안트 국제대 연출 석사, 서강대 영상학 박사-EBS 편성기획 차장·PD, KBS미디어 국제사업부장, 위성방송 스카이 겜TV 대표이사, 부산콘텐츠마켓 공동집행위원장-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현) 국제미래학회 미래한류문화위원장(현) 한국방송비평학회 학술담당 부회장(현) /<한류학 개론> <전환기의 한류> <한국 인형극의 재조명> 등 저서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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