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의 이행 첫 시험대는 이산가족 상봉… 진전되면 전향적 경협 논의 가능

북한이 얼마나 신뢰 보여주며 5·24 조치 해제 명분 제공하느냐에 경협 달려

북한 호응하면 남·북·중, 남·북·러 다자 간 경협도 가능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硏 수석연구위원
[데일리한국=조봉현 IBK기업은행 수석연구위원 칼럼] 극단적인 위기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고위급 합의 도출로 해빙 기류를 타고 있다. 나흘 간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남북 양측은 극적으로 합의한 6개항의 공동 보도문을 발표했다. 원칙을 갖고 강력하게 대응하되 대화의 문을 열어 놓은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남북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 같아 다행이다. 북한은 과거처럼 내부 체제 결속과 남남 갈등 유발 등을 위한 대남 도발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까지 나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남북 고위급 합의 이행의 첫 시험대는 이산가족 상봉

앞으로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변화가 예고된다. 특히 북한이 합의 약속을 지키는 진정성 있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남북 경제 협력에서 급물살을 탈 개연성이 많다. 이번 합의문 이행의 첫 시험대는 곧 이뤄질 이산가족 상봉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서 성의를 보이고 정례화의 길로 간다면 향후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서 전향적인 경제 협력이 논의되고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 보도문 6개 항에 담겨있는 의미를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남북은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경제 협력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핵심이다. 북한이 예전과 다른 태도로 접촉에 임하고 합의문 도출에 이른 것은 대북 확성기 방송의 공포 외에도 이번 기회에 남쪽과의 경제 협력 물꼬를 트려는 의도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4년차가 지나가고 있다. 경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내세울 만한 것이 그다지 없다.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위축되고, 러시아 등과 협력을 모색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은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내부적인 노력만으로 경제 회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남쪽과의 경제 협력이 절박하다.

북한은 남북 합의문 체결을 계기로 경제적 실익을 챙기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 보도문 제1항에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개최하고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한 것은 주된 논의 사항이 경제 협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 당국 회담이 개최될 경우 테이블에 오를 주요 의제는 5·24 조치, 금강산 관광, 경제 협력 등 다양한 남북 경협 방안 등이 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와 정례화도 궁극적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노린 것으로 판단된다. 이산가족 상봉을 금강산에서 개최하고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공동 보도문 6번째에 다양한 분야의 민간 교류 활성화를 담았다. 인도적 지원과 체육 및 문화 교류도 있겠지만, 민간 기업의 경제 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5·24 조치로 오랫동안 멈춰선 남북 교역 및 투자 협력 사업이 다시 가동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남북관계 개선 상황에 따라 남북 경제 협력에서 돌파구가 마련돼 새로운 경제 협력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꽉 막힌 남북 경제 협력이 한꺼번에 뻥 뚫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가장 큰 걸림돌이 5·24 조치이다.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서 5·24 조치를 논의하겠지만, 다른 사항과 달리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북한으로 하여금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최소한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야 하는데, 북한은 자기들 소행이 아니라고 끝까지 억지 부릴 것이 뻔하다. 이번 공동 보도문처럼 주체를 명확하게 하고 북한의 유감 표명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 국민들의 공감 분위기가 형성돼야 가능하다.

북한 호응한다면 남·북·중, 남·북·러 다자간 경제협력도 가능

5·24 조치와 관계없이 남북 관계 개선 흐름에 맞춰 유일하게 남북을 잇고 있는 개성공단은 다소 활기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임금 5% 인상 합의를 했기 때문에 개성공단공동위원회를 개최하여 3통 문제(통행·통신·통관)와 북한 근로자 출퇴근 도로 및 교량 보수, 개성 주민 식수난 해소 등에서 진전이 기대된다. 상황이 진전되면 기숙사 건설, 개성공단 추가 투자 및 기업 입주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2단계 착수는 논의할 수 있겠지만, 수년 내 추진은 어려울 것이다. 남·북·러 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투자 지분을 인수하게 되면 나진항 및 철도 추가 투자 등으로 이어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것이다. 경원선 연결 사업에서 북측 구간 공사도 이루어질 수 있다.

민간 기업의 임가공을 비롯한 남북 교역 사업은 선택적으로 조금씩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고 북한 민생 관련 투자 협력 사업도 1~2개 기업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대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 이어진다면 금강산 관광은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관광 재개의 요구 조건인 관광객 신변 안전 보장과 재발 방지 약속에 대해 북한이 수용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본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가 최종 목표가 아니다. 김정은 정권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마식령 스키장 등 원산 종합 개발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금강산 관광 개개가 필수불가결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시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 지대 개발에 외자를 유치하려는 의도이다.

북한이 호응만 한다면 우리 정부가 제의한 복합농촌단지 조성과 민생 인프라 구축에서 시범적인 사업들이 추진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남·북·중 경제 협력 사업도 적극 모색될 것이다. 신압록강 대교 개통과 신의주 공동 개발 등이 검토될 수 있다. 북한의 19개 경제개발구 가운데 1~2 개 정도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 및 착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신뢰 보여주며 5.24 조치 해제 명분 제공하느냐에 달려

남북 고위급 타결로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은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지, 갑자기 순탄하게 풀려나갈 것은 아니다. 남북 간에 논의되는 경제 협력 사업 하나하나가 추진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남북이 신뢰 관계를 구축해서 전향적으로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경제 협력 사업이 다시 정상적으로 굴러가는데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복합농촌단지 조성과 북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중 및 남·북·러 다자간 경제 협력 사업은 북한의 협력 여하에 따라 선별적으로 착수 가능하지만, 새로운 대규모 경제 협력 사업들은 5·24 조치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밋빛에 그칠 수도 있다. 남북 경제 협력 활성화는 북한이 얼마나 신뢰를 보여주면서 5·24 조치 해제의 명분을 제공해주느냐에 달렸다. 5·24의 벽을 넘지 못하면 추진할 수 있는 경제 협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남북 당국이 이번처럼 인내심을 갖고 머리를 맞대면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경제 협력은 남북 모두 절실한 상황이므로 서로 한발씩 물러나 유연성을 보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과거와는 다른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경제 협력을 통해 남북이 상생하고 경제의 도약을 이루어내야 한다. 통일 경제 시대를 준비하는 큰 틀에서 남북 경제 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향후 1~2개월이 중요하다.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을 앞두고 자기들의 목적과 의도대로 안 될 경우 또 다시 트집 잡아 도발하고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는 벼랑끝 전술을 쓸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무모한 행동으로 모처럼 형성된 남북 경제 협력 분위기가 일거에 날아갈 수 있다. 그것은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의 고립을 자초하고 경제난 극복의 기회를 망칠 뿐이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지나 미래 통일 30년을 향해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경제 협력의 통로를 활짝 열어 '통일대박'의 큰 꿈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조봉현 수석연구위원 프로필
동아대 경제학박사-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현)ㅡ 민주평통 상임위원(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현) 북한 연구학회 부회장(현) 개성공단기업협회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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